미국 대통령 선거에 뛰어든 양대 후보는 외교·안보 분야에서 매우 다른 접근법을 갖고 있다.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동맹'을 중시한다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안보마저 '비즈니스'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재집권할 경우 북핵 문제를 비롯한 역내 지형에 격변이 예상되는 이유다. 극단으로 엇갈린 두 후보에 대한 시나리오별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관계' 중시하는 해리스, 외교 성과는 '글쎄'
표면적으로 누가 한국에 우호적인지를 따진다면 답은 해리스 부통령이다. 하지만 그가 외교·안보 분야에서 어떤 성과를 보여줬는지 묻는다면 한국 입장에서 시원한 답이 어려울 수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 7월 그가 민주당의 새로운 대선 후보로 거론되던 시점부터 이 문제를 꼬집었다. 오랜 기간 외교·안보 분야에서 경험과 실적을 쌓아온 조 바이든 대통령과 달리 해리스 부통령은 외교 측면에서 이렇다 할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단순한 '현상 유지'가 아니라 차별성을 보여줘야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는 게 그에게 따라붙는 꼬리표다.
해리스 부통령은 샌프란시스코 지방 검사 출신으로, 캘리포니아 법무부 장관을 지냈다. 2017년 상원의원에 당선된 뒤로도 중앙 무대에서 외교·안보 사안을 다룬 경험이 없다시피 하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것도 이 지점이다. 백악관에서 남부 국경 문제를 다룬 해리스 부통령을 '국경 차르'라 비난하며 불법 이민자 관리에 실패한 책임을 부각하고 있다.
자기만의 '외교 색깔'이 없는 해리스 부통령은 바이든 행정부의 기조를 대부분 계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처럼 동맹과 우방국을 중시하면서 인도·태평양 지역에 초점을 맞출 가능성이 크다. 북핵 문제에 대한 접근법도 바이든 대통령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 선언'을 기반으로 한·미·일 안보 협력을 강화하고, 확장억제 실행력을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민주당은 이번 대선을 앞두고 발표한 새 정강에서 "북한의 불법적인 미사일 역량 구축을 포함한 도발에 맞서 동맹국, 특히 한국의 곁을 지켜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라고 명시했다.
'비용' 중시하는 트럼프, 韓 안보 흔들 태세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한 해리스 부통령과 달리 트럼프 전 대통령은 '불확실성' 그 자체다. 외교·안보 사안까지 거래 대상으로 여기는 그의 태도는 한국 입장에서 우려가 큰 지점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동맹마저 비용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그는 지난 16일(현지시간) 방송에서 "한국에 4만2000명의 미군이 있지만, 한국은 돈을 내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사실과 다르다. 주한미군 규모는 약 2만8000명으로 3만명이 채 되지 않지만, 규모를 계속 부풀리고 있다.
한국이 방위비 분담금을 아예 내지 않는다는 식의 주장도 여러 차례 했지만, 모두 거짓말이다. 최근 타결된 방위비 분담금 협정에서 한국은 2026년 방위비 분담금을 전년 대비 8.3% 올린 1조5192억원으로 설정했다. 2030년까지 소비자물가지수(CPI)를 반영해 매년 인상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런 거짓말을 하기 전날에도 한국을 '머니 머신'에 비유하며 "내가 백악관에 있었으면 한국은 연간 100억달러(약 13조8000억원)를 낼 것"이라고 했다. 문제는 '미국의 이익 극대화'에 초점을 맞춘 행보가 유권자에게 설득력 있게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그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상대로 연일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재집권할 경우 과거 직접 협상했던 김 위원장과 마주 앉으려 할 가능성이 크다. 북한의 도발을 일시적으로 억제해놓고, 이를 위기관리 능력으로 부각해 한국과의 '안보 거래'에서 지렛대로 삼을 수 있다.
비핵화 회의론…北, 핵보유국 인정 노릴 듯
대선 결과와 무관하게 미국의 대북 셈법이 아예 달라질 가능성도 열려 있다. 변수는 '비핵화 회의론'이다. 조현동 주미대사는 지난 11일(현지시간)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북한의 핵 역량이 높아지면서 비핵화 가능성에 대한 회의론이 커진 게 사실"이라고 했다. 민주당과 공화당의 정강·정책에서 '한반도 비핵화'가 삭제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우려를 키운다.
바이든 행정부는 한·미·일 협력을 바탕으로 강력한 대북 억제력 확보에 방점을 찍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북핵 문제가 미국의 우선순위에서 벗어났다는 지적이 나온 지 오래다. 이미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지역에 국방비 지출을 집중하는 미국 입장에서 비핵화 실현 가능성이 낮은 북한을 상대로 새로운 에너지를 소모하는 건 부담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외교가에선 미 대선 이후 북한에 대한 '핵보유국 인정' 문제가 뜨거운 이슈로 떠오를 거란 전망도 나온다. 문일현 중국 정법대 교수는 최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포럼에서 "장담컨대 북한을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할지가 미 대선 이후 가장 핫한 이슈가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대북 협상을 자신하고 있지만, 북한이 그 손을 잡을지는 미지수다. 북한이 강경 노선으로 돌아선 기점은 2019년 2월 결렬된 북·미 회담, 즉 '하노이 노 딜' 때다. 특수부대까지 파병하며 러시아에 밀착한 북한을 테이블에 앉히는 건 당시와 차원이 다른 문제다.
어느 쪽이든 북한은 '7차 핵실험' 카드로 우위를 점하려 할 수 있다. 국가정보원은 최근 국회 정보위원회에 북한의 추가 핵실험 예상 시점을 대선 이전보다 '대선 이후'로 평가한다고 보고했다. 핵실험으로 북한이 원하는 테이블이 마련된다면 '핵보유국 인정'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누가 되든 강력한 對中 정책, 한중관계 시험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중국에 대해서는 두 후보 모두 강경한 정책을 제시하고 있다. 누가 집권하든지 보호무역 장벽은 높아지고 그에 따른 미·중 갈등은 더 심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에게 중국은 경제부터 안보까지 놓칠 수 없는 파트너다. 북한에 직접 관여할 수 있는 카드다. 북·중·러 3각 구도에 거리를 두는 중국을 더 끌어당겨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민정훈 국립외교원 북미유럽연구부 교수는 민주당의 정강·정책을 분석한 보고서에서 바이든표 정책을 이어받을 해리스 부통령이 '중국 견제'와 '동맹 중시'라는 기조를 바탕으로 한국에 더 큰 역할을 요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의 불공정 무역 관행에 대응하면서 반도체·배터리·철강 등에 차등적 관세를 부과했다. 첨단기술의 수출도 제한했다.
민정훈 교수는 "해리스 행정부는 한미동맹을 공고히 하고 한국과의 협력을 제반 분야에 걸쳐 심화하고자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한국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 견제'라는 미국의 이해관계에 보다 광범위하게 포함될 가능성이 커진다"며 "이 때문에 외교·안보, 첨단기술 분야 등을 중심으로 한중관계를 관리하는 게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윤석열 정부는 한미동맹을 강화하되, 중국과도 우호적 관계를 지향한다는 방침이다. 올해 들어 고위급 교류를 확대해 나가는 우호적 흐름이 정상회담이라는 결실까지 볼지가 관건이다. 하반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삼는 것에는 교감이 이뤄진 상태다.
정부, '불확실성' 대비…다양한 시나리오 검토
외교가에선 해리스 부통령이 당선될 경우 우리 외교·안보 전략은 큰 틀에서 현상 유지,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다시 집권하면 미국의 안보 우산이 약해질 거란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미국의 필요가 반영된 '캠프 데이비드' 합의 등 성과는 유지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불확실성이 큰 '트럼프 2기'에 대비해선 다양한 대응 전략이 거론되고 있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지난달 제1차 세종열린포럼에서 "(트럼프가 당선되면) 위기·기회 요인이 극단적으로 병존하기에 과감하고 정교한 전략이 필요하다"며 '기회 요인'으로 방산 수출을 꼽았다.
대중 경쟁, 우크라이나 전쟁, 중동 상황 등 미국 국방비 지출이 늘어날수록 한국 방산기업의 미국 시장 진출 가능성이 커진다는 분석이다. 그는 "특히 선박 수리·정비는 한국이 월등하게 잘하기 때문에 미국이 우리 도움을 강하게 원하고 있다"고 했다. 이런 전략이 북한의 러시아 파병과 맞물려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수출이나 군사 지원으로 발전할지도 주목된다.
미 대선 결과에 따라 북한이 어떻게 나올지도 대비해야 할 숙제다. 북한은 올해 들어 남한을 무시하고 미국을 직접 상대하겠다는 '통미봉남' 정책으로 철저한 갈라치기를 시도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이후 미 본토를 겨냥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도발이 없다는 게 대표적 지표다. 최근 '요새화' 공사 사실도 북한이 '미국'으로 규정하는 유엔군사령부에만 통보했다.
정부 관계자는 "트럼프가 다시 집권한다 해도 이미 '하노이 노 딜'을 경험한 만큼 양쪽 모두 과거와 같은 방식의 협상에 나서진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방위비 분담금 협상도 조기에 타결한 만큼 불확실성에 대한 대비도 충분히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장희준 기자 jun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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