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필리핀 정상 '공조' 합의 이후 대응 방식 변화 필요성 제기
한정애 의원 "협조 의견 교환서 끝나선 안 돼…배상 노력도 필요"
(서울=연합뉴스) 성도현 기자 = 필리핀 현직 경찰관이 연루된 고(故) 지익주(당시 53세) 씨 피살 사건과 관련해 우리 정부가 "영사 조력을 제공하겠다"는 입장만 유지하고 있어 배상 문제 등에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24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한정애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외교부로부터 제출받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한국 정부는 이 사건의 국가배상과 관련해 "유족 측에 필요한 영사 조력을 지속해서 제공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또 한국 정부의 추가 노력 여부에 대해서는 "필리핀 사법 시스템을 존중하며 필리핀 측에 신속한 사법절차 집행을 지속 요청할 것"이라는 방침만 밝혔다.
이에 양국 정상이 최근 정상회담에서 종신형을 선고받고 도주한 주범의 형 집행 등을 위해 공조하기로 합의한 상황에서 가시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는 "윤석열 대통령은 필리핀을 방문하는 한국인 여행객과 필리핀에 장기 체류 중인 우리 국민들의 안전한 방문과 체류를 위해 각별히 노력해 달라고 요청했다"며 "필리핀 대통령도 적극적인 협조 의사를 밝혔다"고 확인했다.
다만 "정상회담에서 논의한 상세 내용에 대해 밝히는 것은 외교 관례상 적절하지 않다"며 "회담 후 양국 정상은 공동선언을 통해 양 국민의 안전과 권익을 강화해나가기로 했다고 발표했다"고 설명했다.
대통령실도 "양국 정상이 합의한 내용인 만큼 유족 등의 요청사항에 관해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이 있는지 검토하고 있다"는 입장이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정해지지 않았다.
후속 조치로는 윗선 개입 확인 및 진실규명을 위한 재수사를 포함해 배상, 양 국민 안전 보장 협약 체결, 사건 발생 장소인 경찰청 본부 추모비 설치 등이 거론된다.
동포사회의 한 관계자는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피해자에게 적절한 배상을 하겠다고 여러 차례 약속했지만, 구체적인 방식 등을 언급하진 않았다"며 "공무원인 경찰의 범죄라는 측면도 중요하지만 이외에 경찰이 제도적으로 사건을 방지하지 못한 부분 등도 짚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2010년 8월 마닐라에서 발생한 '홍콩 관광객 인질극 참사' 당시 홍콩 정부는 필리핀에 대한 흑색 여행경보를 발령하고, 필리핀 외교관과 공무원 여권 소지자에 대한 비자 면제 조치를 중단하는 등 신속한 사건 해결을 위해 강력한 조치에 나섰다.
당시 리커창 중국 총리는 이 사건을 제대로 해결하지 않으면 외교 문제로 가져가겠다고 엄중히 경고하기도 했다.
결국 필리핀 정부는 이런 압박에 한발 물러서며 홍콩·중국 정부에 정식 사과하고 관광객 안전 조치를 마련했으며, 유족에게도 총 258만 달러(약 35억원)를 배상했다.
한정애 의원은 "비공개 정상회담에서 재외국민 안전을 위해 협조하자는 의견을 교환하는 데서만 끝나서는 안 된다"며 "주범 신병 확보와 범인 단죄 뿐만 아니라 유족에 대한 배상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raphae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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