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관가 in]높아진 재취업 문턱…"로펌도 안돼" 연구소로 우회하기도
    입력 2024.11.01 06:10
#보험사로 이직하기로 한 금융감독원 퇴직자 A씨는 최근 공직자윤리위원회 취업심사를 통과하지 못했다. 5년간 보험 관련 부서에 속한 적 없기 때문에 무난한 취업승인을 예상했지만, 보험감독원 출신으로 금감원 근무 초기 보험권 업무를 맡았다는 이유로 재취업 계획이 어그러졌다.
공무원 또는 감독기관 출신 인사들이 퇴직 후 재취업 심사를 통과하지 못한 사례가 점점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고위직은 과거 재취업이 수월했던 민간기업 감사직은 물론 로펌(법무법인)행조차 어려워져 연구소에 재취업하는 방법으로 경력을 이어가거나, 스타트업 등 소규모 사업장에서 비상근 자문역으로 3년의 취업금지 기간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공직자의 퇴직 후 재취업을 제한하는 제도가 갈수록 엄격해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공직자 재취업 심사, 제한·불승인 사례 증가 추세1일 아시아경제가 최근 4년간 인사혁신처 공직자윤리위원회(공윤위) 퇴직공직자 취업심사 결과를 전수 조사한 결과 올해 제한·불승인을 받은 퇴직자는 지난 9월까지 60명에 달했다. 제한·불승인을 받는 사례는 증가 추세다. 2021·2022년 각각 82명과 91명이 제한·불승인 통보를 받았고 지난해는 총 109명이 취업심사를 통과하지 못했다.


공직자윤리법에 따라 공직자는 퇴직 후 3년간 민간기업 등에 취업할 수 없다. 다만 퇴직 전 5년간 소속한 부서·기관의 업무와 취업심사 대상기관 간 밀접한 관련성이 없다는 확인을 공윤위로부터 받으면 재취업이 가능하다.
공윤위 취업심사는 과거 공무 관련성을 판단해 업무유착 등 폐해를 근절하겠다는 취지에서 국민적 공감대가 높다. 지난 4월 헌법재판소도 일반 공무직에 대한 공직자윤리법 적용이 합헌이라고 판단했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 퇴직 공직자들이 체감하는 재취업 문턱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공윤위는 최근 과장급 공무원 A씨가 로펌으로 자리를 옮기지 못하도록 재취업을 제한했다. 소속 부서가 해당 로펌과 공문을 주고받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A씨는 문제가 된 공문을 본 적도 없었지만 실무자급 직원들이 소통하는 과정에서 A씨도 수신 명단에 포함됐다고 한다.
공정거래위원회 사무관 B씨 역시 최근 로펌으로의 재취업에 실패했다. 공정위 재직 당시 타 부서의 조사반에 참가한 것이 문제 됐다. 인력이 부족하다는 옆 부서의 요청으로 사건 조사에 함께 나갔는데, 취업심사 대상기관인 로펌이 같은 사건을 대리한 것이다. B씨는 조사만 참여했고 이후 사건 처리는 담당 부서에서 진행했는데도 취업심사 통과는 불가능했다.
공정위 전직 고위 관계자는 “원래도 공정위 고위직 출신은 로펌으로 자리를 옮기기 어려웠다. 그런데 최근엔 (고위직이 아닌 경우도) 공윤위가 재량적으로 판단하거나 확대해석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연구소·대학으로 우회하기도금융 관료들은 퇴직 직후 업무관련성이 애매하다면 금융 관련 연구소로 우회하기도 한다. 이들은 금융연구원, 보험연구원, 자본시장연구원, 삼성글로벌리서치 등 공공·민간 연구소로 재취업하고 있다.
최근 공인회계사회 산하 회계정책연구원에서 객원연구위원으로 근무를 시작한 최훈 전 금융위 상임위원이 대표적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회계정책연구원은 지난해 발족한 연구소로 힘 있는 곳이라고 보긴 어렵다”며 “최 전 상임위원은 주싱가포르 대사를 마친 후 갈 곳이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해당 연구소를 택한 것으로 추측된다”고 전했다.
고승범 전 금융위원장 역시 퇴임 3개월 만인 2022년 10월 자본시장연구원 초빙연구위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후 지난해 10월 청소년금융교육협의회장으로 선임된 바 있다.
‘전문경력인사 초빙활용지원사업’을 활용하는 경우도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한국연구재단의 사업으로, 고위직 공무원이 3년의 취업제한 동안 지방 대학이나 공공기관 연구소에서 공직 중 경험과 지적재산을 공유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이 사업에 참여한 전직 1급 공무원은 “3년간 지방 학생들을 가르친 후 최근 로펌으로 재취업에 성공했다. 출근한 지 한달차”라며 “지방 근무가 필수인 탓에 충남 천안, 세종 조치원, 강원 원주 등 수도권과 인접한 지역은 경쟁률이 높다”고 말했다.


"제한·불승인 사유 불명확" vs "명확한 기준 있다"이같이 체감 재취업 난이도가 대폭 높아진 것은 윤석열 정부 초대 인사혁신처장인 김승호 전 처장의 임명 이후로 시작됐다는 평가다. 금융당국 전직 고위 관계자는 “전임 인사혁신처장 때부터 공윤위가 법적 근거를 뛰어넘는 재량 판단으로 제한·불승인 통보를 하니 힘들다는 이야기가 자주 들린다”며 “제한·불승인 사유가 명쾌하거나 객관적이지 않아 보인다. 취업심사 신청은 퇴직한 뒤 가능하기 때문에 신청자들은 취업승인을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을 때 신청한다”고 귀띔했다.
김 전 처장은 21세에 행정고시(28회)에 합격한 ‘소년급제’의 주인공으로 행정안전부 인력개발관, 대통령실 인사혁신비서관, 소청심사위원장을 맡는 등 인사 분야에 정통한다. 지시에 따른 업무추진 현황을 꼼꼼히 확인하며 업무장악력을 키워 온 리더로 알려졌다. 김 전 처장은 지난 7월, 2022년 5월부터 시작한 2년3개월간의 임기를 마무리했다.
일각에선 퇴직공직자 취업제한제도에 세부 보완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전직 정부 고위 관계자는 “한국처럼 퇴직자 재취업에 대한 사전규제와 사후규제가 모두 있는 나라는 드물다”며 “사전규제를 완화하는 대신 사후규제를 강하게 적용하고, 문제가 생기면 형사처벌로 엄단하면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다만 인사혁신처는 “취업심사 기준은 명확하다”는 입장이다. 인사혁신처 관계자는 “공직자윤리법에 취업심사자와 관련성 있는 업무가 명시돼 있다”며 “퇴직 전 직급이나 근무해 온 부서, 취업하고자 하는 사기업과 관계 등 취업심사자별 사정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다”고 밝혔다.




임철영 기자 cylim@asiae.co.kr
전영주 기자 ang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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