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반환점 맞는 尹]③"지지율 하락 핵심은 인사 실패…과감한 쇄신 필요"
    입력 2024.11.08 07:20

[ 아시아경제 ]

윤석열 대통령이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실에서 '대국민담화 및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 전반기 최대 패착 중 하나로는 '인사 실패'가 꼽힌다. 윤 대통령은 지난 2년 6개월간 대통령실 규모 확대와 개각을 통해 국정 운영 동력을 확보하려 했으나 성과보다는 역효과가 더 컸다는 분석이 많다. 임기 초 인사 철학으로 '능력주의'를 내세웠음에도 검사 출신, 극우 인사 중용, 김건희 여사 라인, 회전문 인사 등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지지율 하락의 가장 큰 원인은 인사 참사"라며 "대통령이 변했다는 걸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게 바로 인사인 만큼 과감한 인적 쇄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지지율 하락, 인사 참사에서 시작

윤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을 두고는 전반적으로 평가가 박하다. 지난 2년 반 국회 인사청문경과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았는데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한 인사청문 대상자는 29명에 달한다. 문재인 정부(23명), 박근혜 정부(10명), 이명박 정부(17명), 노무현 정부(3명)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 '여소야대' 영향이 있지만 대통령 인사 시스템이 미흡했다는 지적도 많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윤 대통령 집권 후 처음 지지율이 떨어지기 시작했을 때 가장 쟁점이 됐던 게 인사"라며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과 철학이 다 인사에 반영된 것이기 때문에 지금 낮은 지지율의 모든 원인도 사실 여기서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을 뜯어보면 대통령과의 관계, 이념, 경륜이 중요한 요소로 분석된다. 1기 내각 때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출신 인사들이 약진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이명박(MB) 정부에서 주미대사를 지냈고, 추경호 당시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으로 일했다. 한화진 전 환경부 장관(환경비서관)과 김대기 전 대통령실 비서실장(통계청장) 등도 MB와 인연이 있다. 박근혜 정부 출신으로는 권영세 전 통일부 장관(주중대사),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농축산식품비서관) 등이 있다. 경륜을 갖춘 '올드보이'의 약진에 한 때 관가에선 "꺼진 불도 다시 봐야 한다"라는 말이 유행했다. 다만 '서울대, 50대, 남성' 비중이 과도하게 높아 참신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나왔다.

지난해 말 이뤄진 2기 개각에선 여성과 전문가 비중 확대에 신경 쓰는 모습을 보였다. 당시 6명의 신임 장관 중 절반인 국가보훈부(강정애), 농림축산식품부(송미령), 중소벤처기업부(오영주) 장관이 모두 여성이었다. 또 강도형 해양수산부 장관은 1970년생으로 젊은 인재를 충원했다. 다만 이 과정에서도 인사 검증 미흡 논란으로 아쉬움을 남겼다. 강 장관은 음주운전과 폭력, 오 장관은 보은 인사, 송 장관은 증여세 탈루 및 표절 의혹 등으로 야당의 집중 공격을 맞았다. 특히 총선 직전에는 채상병 순직사건 수사 외압 의혹을 받던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을 주호주대사로 임명해 여론이 악화했다. 국민의힘은 총선백서를 통해 이 전 장관 논란 등이 참패에 큰 영향을 줬다고 분석했다.

총선 이후로는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안창호 국가인권위원장,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등 극우·강성 인사를 중용해 논란이 더 확산했다. 국가인권위원장이나 고용부 장관 자리는 중도 성향 인사를 기용해 균형을 맞추는 관례에도 강성 우파를 내세우며 야권 반발과 민심 이반을 야기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국민의힘 비전전략실장을 지낸 김근식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총선에서 그렇게 지고도 인적 쇄신이나 인사 스타일의 변화가 없는 건 이번 정부가 유일한 것 같다"며 "인사가 바뀌지 않았다는 건 대통령이 바뀔 생각이 없다는 시그널로 읽힐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인사에 원칙이 없었다"며 "대탕평, 인재 등용 부분에서 미흡했다"고 평가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7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실에서 열린 '대국민담화 및 기자회견'에서 고개 숙여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몸집 커진 대통령실…'용와대' 지적도

대통령실의 경우 지난 2년 6개월 동안 규모가 대폭 확대됐다. 당초 대통령실은 2실장(비서실·국가안보실) 5수석(정무·홍보·경제·사회·시민사회) 체제로 출범했다. 조직 슬림화를 통해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벗어나겠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정부 출범 3개월 만에 정책기획수석(국정기획수석)을 신설하더니 이듬해 정책실장, 올해 과학기술수석, 민정수석, 저출생수석까지 만들며 '3실장 8수석' 체제로 몸집을 키웠다. 윤 대통령이 '비대하다'고 지적했던 문재인 정부 청와대 때와 동일한 규모다. 김건희 여사를 보좌하는 제2부속실도 조만간 출범한다. 용산 청사가 크지 않다 보니 공간을 쪼개 사무실을 마련할 정도다.

정책실과 과기수석실, 저출생수석실 등은 국정 운영에 필요한 부서라는 평가가 많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조직 규모가 커지면서 관가 안팎에선 '용와대(용산+청와대)'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이전 정부와 차별화하기 위해 '청와대' 명칭도 없애고 용산으로 왔지만 취지가 무색해졌다. 대통령실이 각종 태스크포스(TF)를 통해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를 통솔하고, 포항 영일만 앞바다 석유 매장 추정치 등 호재가 될 수 있는 사안은 주무 부처 대신 대통령실이 직접 발표하면서 '만기친람'이라는 목소리도 나왔다. 세종에 근무하는 한 부처 관계자는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용산의 눈치를 더 볼 수밖에 없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실 비서관이 부처 차관으로 승진하는 일도 부쩍 늘었다. 올여름에만 김수경 대변인(통일부 차관), 김종문 국정과제비서관(국무조정실 제1차장), 김범석 경제금융비서관(기획재정부 제1차관) 등 무려 9명이 차관급으로 승진했다. 자연스레 대통령실 출신 '실세 차관' 논란이 일었다. 청문회가 필요한 장관 대신 실세 차관을 통해 국정 장악력을 강화하겠다는 취지였으나, 성과는 크지 않았다는 분석이다. 윤석열 정부 핵심 과제인 4대 개혁(연금·노동·의료·교육)은 거대 여당에 막혀 여전히 지지부진하고, 국정 지지율은 임기 초 52%에서 최근 19%로 수직 낙하(한국갤럽 기준)했다. 후보 시절 청와대로 집중된 권한을 부처로 분산해 '책임장관제'를 도입하겠다는 약속은 의미가 퇴색했다.

與 자중지란…용산 내부 인사 잡음

윤 대통령은 국회와 소통을 강화해 개혁에 속도를 내고자 지난 5월 5선 중진 정진석 비서실장과 재선 홍철호 정무수석(4월)을 기용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과의 관계 개선은커녕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의 내부 갈등만 더 커졌다. 당시 윤 대통령은 관료 출신인 전임 실장(김대기·이관섭)과 달리 정치인인 정 실장에 대해 "내각, 여당, 야당 등과 원만히 소통하며 직무를 잘 수행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여권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온건한 성품의 정 실장을 선택한 것은 한 대표와 잘 지내보겠다는 취지였다"며 "지금은 대통령실과 한 대표가 사실상 갈라섰고 관계 회복을 기대하긴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실 내부 인사 잡음도 윤 대통령 이미지에 부정적으로 작용했다는 평가다. 한 대표가 공개적으로 지적한 대통령실 내 김건희 여사 라인 문제가 대표적이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대통령실엔 대통령 라인만 있을 뿐"이라고 일축했으나, 김 여사와 명태균씨와의 공천개입 의혹이 불거지며 논란에 불을 지폈다. 김여사 라인으로 거론된 강기훈 선임행정관이 음주운전 적발 뒤에도 한 달이나 출근하다 뒤늦게 징계를 받은 일과, '김여사 라인'이라는 강훈 전 정책홍보비서관이 전문성 없는 한국관광공사 사장으로 내정된 것도 논란에 힘을 보탰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9월2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 분수정원에서 열린 국민의힘 지도부 초청 만찬 뒤 한동훈 대표, 추경호 원내대표 등 국민의힘 지도부, 대통령실 참모진과 함께 산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尹 "인재 풀 검증 중"…전문가 "쓴소리할 사람 필요"

지지율 하락과 야당의 공세로 국정 운영이 힘들어진 만큼 윤 대통령은 개각 작업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6일 기자회견에서 "임기 반환점을 맞는 시점에 제가 적절한 시기 인사를 통한 쇄신의 면모를 보여드리기 위해서 벌써부터 인재 풀에 대한 물색과 검증에 들어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시기에 대해선 "인재를 발굴·물색·검증하고, 검증 과정에 별문제가 없어도 이런 인사안을 내놨을 때 국민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고민도 해야 해서 빠른 시일 내 하기가 근본적으로 어려운 면은 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인적 쇄신 방향은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으나 "일하는 방식이나 국민과의 소통에 있어서는 늘 바뀌어야 한다고, 일신우일신(날로 새롭고 또, 날로 새로워짐)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변화가 있을 것임을 시사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등 장수한 장관, 기관장들이 교체 대상으로 거론된다. 한덕수 국무총리의 경우 이미 사의를 밝혔음에도 후임이 마땅치 않아 유임됐는데, 이번 기회에 교체될 가능성이 있다. 대통령실도 비서실장, 정무라인 등의 교체 목소리가 나온다.

한 대표가 요구한 일명 '한남동 라인' 등 대통령실 인적 쇄신의 경우 당장 이뤄지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전날 김 여사 라인 의혹에 대해 "굉장히 부정적인 소리로 들린다"고 일축했다. 강기훈 선임행정관도 음주운전으로 받은 2개월간의 징계가 끝나 지난 6일 복귀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은 구체적인 비위 혐의 등이 확인되지 않는 한 김 여사 라인이나 측근이라는 이유만으로 교체할 순 없다는 입장이다. 다만 이같은 기조가 유지될 경우 한 대표나 야당이 원하는 수준의 인적 쇄신은 힘들 전망이다.

남은 임기에 정상적으로 국정을 운영하기 위해선 과감한 인적 쇄신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준한 교수는 "국무총리나 장관을 야당에서 추천을 받아 바꿀 필요가 있다"며 "최대한 좋은 사람을 뽑기 위해 널리 추천을 받겠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종훈 평론가는 "기본적으로 대통령실 내부 여사 라인이나 검찰 출신 측근 등을 먼저 정리해야 한다"며 "그다음 분위기 전환 차원에서 전면적인 개각 또는 거국내각까지도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근식 교수 역시 "대통령에게 쓴소리할 수 있는 사람들로 주변을 채워야 대통령이 바뀌었다는 생각이 들 것"이라며 "총리 교체는 물론, 야당과 협의해 중도 지향적인 인물을 뽑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제원 기자 nest2639@asiae.co.kr<ⓒ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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