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 지난 대선 때의 허위 발언으로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 혐의로 기소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1심에서 의원직 상실형에 해당하는 징역형의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앞서 검찰은 이 대표에 대해 징역 2년을 구형했다.
이번 판결이 대법원에서 그대로 확정될 경우 이 대표는 2027년 3월 치러지는 다음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수 없게 된다. 이 대표는 즉각 항소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15일 오후 2시38분부터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4부(부장판사 한성진) 심리로 진행된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사건 선고공판에서 재판부는 이 대표의 혐의 중 김문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과 해외에서 골프를 치지 않았다는 발언과 백현동 부지 용도변경에 국토교통부의 압박이 있었다는 발언을 허위로 인정, 이 대표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해외 출장 일행 중 공식 일정에서 벗어나 골프를 친 건 유동규, 김문기뿐"이라며 "김문기와 해외에서 골프를 치지 않았다는 취지의 발언은 진실이라고 믿기 어렵다"고 밝혔다.
또 재판부는 "백현동 부지에 대한 용도 변경은 성남시 자체적 판단에 의한 것으로 피고인 스스로 검토해 변경한 것으로 평가된다"며 "국토교통부가 직무유기 협박을 했다는 발언은 허위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김 전 처장을 모른다는 취지의 이 대표 발언들 중 "제가 그리고 국민의힘에서 4명 사진을 찍어가지고 마치 제가 골프를 친 것처럼 사진을 공개했던데, 제가 확인을 해보니까 전체 우리 일행, 단체사진 중의 일부를 떼 내 가지고 이렇게 보여줬더군요. 조작한 거죠"라며 김 전 처장과 해외 출장 중에 골프를 친 적이 없다는 취지로 발언한 부분을 유죄로 판단했다.
먼저 재판부는 "해외골프 동반행위를 했지만, '하급직원'이기 때문에 몰랐다고 발언하는 것은 일반 선거인의 입장에서 진실이라고 믿기 어렵다"며 "'김 전 처장을 몰랐다'는 맥락에서 골프 발언을 듣는 일반 선거인의 입장에서는 이 대표가 김 전 처장과 해외골프를 함께 치지 않았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기 쉽다"고 밝혔다.
이어 "김 전 처장은 대장동 도시개발사업과 관련해 성남도개공 내 핵심 실무책임자였고, 이 대표의 발언과 같이 경기도지사이던 이 대표에게 재판과 관련된 도움을 주었을 뿐 아니라 대장동 도시개발사업 특혜 의혹에 대한 이 대표의 대응에 관여하고 사망 전까지 관련 수사를 받아왔다"며 "이 대표가 골프 발언을 하기까지 기억을 환기할 기회나 시간은 충분했다고 보이는 점 등을 종합하면 고의가 인정된다"고 밝혔다.
다만 재판부는 '성남시장 재직 시절 김문기의 존재를 몰랐다'는 부분과 '도지사가 되고,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된 다음에 김 전 처장을 알게 됐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이유무죄로 판단했다.
이유무죄는 유죄 부분과 법률상 하나의 죄로 취급되는 포괄일죄의 관계에 있는 공소사실에 대해 무죄라고 판단하는 경우 판결 이유에서 그런 취지라는 판단을 내놓기는 하지만, 따로 무죄를 선고하지 않는 경우를 말한다.
재판부는 "성남시장 재직 시절 김 전 처장을 몰랐다"는 발언에 대해 이 대표가 김 전 처장과의 개인적·업무적 교유(交遊·서로 사귀어 놀거나 왕래함)행위 일체를 부인하는 것이라는 검사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백현동 관련 발언에 대해 재판부는 식품연구원의 입안제안 검토 과정에서 이 대표가 여러 차례 보고를 받았고, 백현동 부지에 대한 의혹 제기가 계속된 이후 이 대표 측의 대응도 이어졌을 뿐 아니라 발언 당시 미리 패널 등을 준비하기도 했으므로 고의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해외골프 동반 행위를 제외하고 보면 이 대표는 전체적으로 '성남시장 재직시 김 전 처장을 몰랐다'는 취지의 발언을 유지하면서 해외출장 동행 의혹 등에 대해선 인정하거나 인정하는 전제에서 발언했고, 김 전 처장을 '하위 직원' 등으로 지칭했다"며 "그 외에 별개의 구체적인 교유행위에 대해 발언한 것은 없다"고 했다.
재판부는 해외출장 관련 사진 등에 대해 검찰이 성남시 공보담당관실로부터 임의제출을 받았더라도 압수조서가 작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위법수집 증거라는 이 대표 측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양형과 관련 재판부는 "선거 과정에서 유권자에게 허위사실이 공표되는 경우 유권자가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없게 돼 민의가 왜곡되고 선거제도의 기능과 대의민주주의의 본질이 훼손될 염려가 있다"며 "방송을 매체로 이용해 파급력과 전파력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어 "선거 과정에서의 표현의 자유를 고려해야 한다"면서도 "허위사실 공표로 인해 일반 선거인들이 잘못된 정보를 취득해 민의가 왜곡될 수 있는 위험성 역시 고려해야 한다"고 양형이유를 밝혔다.
또 재판부는 이 대표가 동종 범행으로 벌금형을 선고받은 전력이 있다는 점도 양형에 고려했다고 덧붙였다.
이날 선고공판이 끝난 뒤 이 대표는 "도저히 수긍하기 어려운 결론"이라며 즉각 항소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대표는 입장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오늘의 이 장면도 대한민국 현대사의 한 장면이 될 것이다"며 "현실의 법정은 아직 두 번 더 남아 있고, 그리고 민심과 역사의 법정은 영원하다"고 말했다.
그는 "항소하게 될 것이다"며 "기본적인 사실 인정부터 도저히 수긍하기 어려운 그런 결론"이라고 말했다. 또 이 대표는 "우리 국민 여러분께서도 상식과 정의에 입각해서 판단해 보시면 충분히 결론에 이르실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후 이 대표는 이어지는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지 않고 법원종합청사를 빠져나갔다. 이날 검찰 규탄대회에 참석할 예정이었던 이 대표는 일정을 취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검찰은 "서울중앙지검은 대장동 사업 실무책임자인 고(故) 김문기와의 관계(해외골프 등)와 백현동 사업 부지 용도지역 변경 경위에 대해 허위사실을 공표한 이재명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증거와 법리에 따라 수사했고, 그 결과 혐의가 인정된다고 판단돼 지난 2022년 9월 8일 기소한 바 있다"고 말했다.
검찰은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오늘 이러한 피고인의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하면서 피고인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며 "서울중앙지검은 판결문을 면밀히 검토해 항소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대표는 지난 대선 당시 '고(故) 김문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 1처장을 성남시장 시절에는 몰랐다' '국토교통부가 협박해 백현동 부지 용도를 변경했다'는 2개의 허위사실을 공표한 혐의로 지난 재판에 넘겨졌다. 이번 1심 선고는 기소한지 2년 2개월 만에 이뤄졌다.
김 전 처장 관련 발언에 대해 이 대표는 당시 직원이 워낙 많아 하위직인 김 전 처장을 기억하지 못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논란이 불거진 이후 이 대표가 성남 시장 시절 유동규 전 성남도개공 기획본부장, 김 전 처장과 해외여행을 가 함께 골프 라운딩을 한 사실과 김 전 처장으로부터 여러 차례 직접 보고를 받은 정황 등이 드러났다. 유 전 본부장은 해외 출장 당시 김 전 처장이 이 대표와 함께 2인용 카트를 타고 운전을 했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이 같은 증거들과 관련자 진술 등을 토대로 검찰은 대장동 비리에 자신이 연루된 사실을 감추기 위해 실무 담당자였던 김 전 처장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다음 날 방송 인터뷰에서 이 대표가 의도적으로 김 전 처장과의 관계를 부인한 것으로 결론 내렸다.
백현동 용도 변경 배경에 대한 발언의 경우 '주거용도 개발 불가' 입장을 선거 공약으로까지 내세웠던 이 대표가 갑자기 태도를 바꿔 자연녹지지역이었던 부지를 준주거지역으로 무려 4단계나 수직 상향해 용도 변경해주고, 성남도개공을 사업에서 배제해 민간 개발업자인 정바울이 단독으로 사업을 추진할 수 있게 해준 건 자신의 선대본부장 출신 브로커 김인섭의 청탁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당시 국토부의 입장이나 국토부 직원, 성남시 직원 등의 진술이 모두 이 대표의 주장과 상치된다는 점에서 이 대표가 실제 존재하지 않았던 국토부의 협박 내지 압박을 구실로 내세웠다고 본 것이다.
지난해 9월 한동훈 당시 법무부 장관은 국회에서 이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 요청 이유를 밝히면서 "이 의원은 전례 없는 4단계 용도지역 변경이 '국토부 협박' 때문이었다고 합니다만, '용도지역 변경은 지자체 임의 판단할 사항'이라는 2014년 12월 국토부의 회신과 그 회신 결과를 이 시장에게 직접 보고했다는 성남시 담당 과장의 진술, '국토부 협박이나 그런 분위기 자체가 없었다'는 성남시·국토부·식품연구원 관계자들의 진술 등 관련자들 대부분이 이 의원의 주장이 사실과 전혀 다르다고 위 물증들에 부합하게 진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반 범죄의 경우 금고 이상의 형을 확정받아야 피선거권이 상실되지만 공직선거법 위반죄의 경우 100만원 이상의 벌금형만 확정돼도 5년간 피선거권이 제한된다. 만약 이번 사건에서 100만원 이상 벌금형이 확정될 경우 이 대표가 다음 대선에 출마할 수 없는 건 물론, 민주당은 지난 대선에서 보전받은 선거비용 434억원까지 반납해야 한다.
이 대표에게 의원직 상실형이 선고되면서 민주당의 검찰과 사법부를 향한 공격은 더욱 거세지겠지만,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현실화됨에 따른 당내 혼란과 분열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법원은 이날 일반차량의 서울법원종합청사 경내 출입을 전면 금지했고, 출입구 등 일부 진출입로를 폐쇄하고 법원 청사 출입 시 보안 검색을 대폭 강화했다.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사건 1심 선고공판을 앞두고 서울중앙지법 인근은 이 대표 지지 단체와 반대 측이 각각 집결하며 아수라장이 됐다. 서울중앙지법 앞 교대역 사거리와 법원 내에는 경찰 버스들이 줄지어 서 있었고, 시위 현장 곳곳에 설치된 바리게이트도 눈에 띄었다.
더민주전국혁신회의 등으로 구성된 이 대표 지지 단체들은 서울중앙지검 앞 차로 2개 차선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이 대표의 지지자들은 '정치검찰 탄핵하라', '이재명은 무죄다'라고 적힌 플래카드와 파란색 풍선을 들고 '이재명 무죄'를 연호했다.
반면 신자유연대 등 보수단체들은 민주당 집회 장소와 도보로 약 500m 떨어진 서초구 정곡빌딩 남관 앞에 집결했다. 이들은 '이재명 구속', '재명아 감방가자' 등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와 성조기, 태극기를 흔들며 '이재명을 구속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물리적으로 공간이 분리돼 있어 큰 충돌은 없었지만, 중간 중간 서로를 향해 고성을 지르는 모습이 포착됐다.
오후 2시18분께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 모습을 드러낸 이 대표가 법원 청사로 들어가는 도중 한 남성이 신발을 이 대표를 향해 투척하는 일도 발생했다. 이 대표가 신발에 맞지는 않았지만 경찰은 폭행 혐의 현행범으로 이 남성을 체포했다.
한편 공직선거법 제270조(선거범의 재판 기간에 관한 강행규정)는 선거범의 판결 선고는 공소가 제기된 날부터 6월 이내에, 2심과 3심은 전심의 판결 선고일로부터 각각 3월 이내에 반드시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법원은 법조문의 표제에도 불구하고 이 조항을 '훈시규정'으로 해석하고 있지만 다른 범죄에 비해 상대적으로 재판 기간이 짧을 수밖에 없는 건 사실이다. 그 때문에 2027년 3월 치러질 다음 대통령 선거 전에 대법원의 최종 판단이 나올 가능성이 큰 사건이다.
오는 25일에는 이 대표의 위증교사 혐의 사건 1심 선고공판이 예정돼 있다. 이 대표로부터 위증을 교사받고 실제 법정에서 위증했다는 김진성씨의 진술 외에도 자신에게 유리한 증언을 부탁하는 이 대표의 육성 녹음파일 증거가 있어 지난해 9월 유창훈 부장판사가 이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도 '혐의가 소명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던 사건이다.
이를 의식한 듯 이 대표는 지난 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실패한 교사인데 어떻게 위증교사죄가 되나?'라는 글을 올린 데 이어 이날 오전 다시 자신의 페이스북에 위증교사 사건 관련 통화녹음 편집 영상을 공유하며 '진실은 잠시 가려질지라도, 사라지지 않고 결국 드러납니다'라고 적은 글을 올리는 등 선고를 앞두고 무죄 주장에 전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곽민재 기자 mjkwak@asiae.co.kr
최신순
추천순
답글순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