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옥포조선소 방문…당선 통화에 '한국 조선' 언급
중국에 위협받는 미국 해군력…군함 수 이미 밀려
미국, 한국 조선에 러브콜…군함 수리ㆍ건조 협력 추진
(서울=연합뉴스) 심재훈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대선 승리 직후 미국 조선업에 한국의 도움과 협력이 필요하다고 발언하자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는 "갑자기 왜 한국 조선이 나오지", "한국 조선에 대해 정말 아는 게 있나"라는 게시글이 많이 올라왔다.
트럼프 당선인이 미국 대통령 당선 후 윤석열 대통령과 첫 통화에서 언급한 내용이라는 점에서 예전부터 한국 조선업의 능력을 눈여겨봤던 게 아니냐는 말도 있지만 트럼프 당선인 특유의 '중국 견제용' 발언이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동안 트럼프 당선인의 행적을 돌아보면 한국 조선에 대해 20여년 전부터 알고 있었고 미국과 패권 경쟁을 벌이는 중국을 의식해 한미간에 조선업 협력이 필요하다는 점도 인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1998년 옥포조선소 방문했던 트럼프…당선 통화에 '한국 조선' 언급
트럼프 당선인은 윤석열 대통령과 지난 7일 전화 통화에서 미국의 조선업에 한국의 도움과 협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대통령 당선 후 윤 대통령과 첫 통화에서 '조선업'을 꼭 집어 말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트럼프 당선인은 이날 통화에서 "한국의 세계적인 군함과 선박 건조 능력을 잘 알고 있으며, 우리 선박 수출뿐만 아니라 보수·수리·정비 분야에서도 긴밀하게 한국과 협력을 할 필요가 있다"며 "이 분야에 대해 앞으로 구체적으로 윤 대통령과 이야기를 이어가길 원한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용산 대통령실에서 한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당선인이 '미국의 조선업이 많이 퇴조했는데 한국과의 협력이 중요하다'고 말씀했다"며 "그래서 '우리도 미국의 경제와 안보를 위한 일이기 때문에 적극 참여하려고 한다'고 이야기했다"고 전했다.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지난 8일 연합뉴스TV에 출연해 트럼프 당선인과 윤석열 대통령의 통화가 이뤄졌다면서 조선업 분야에서 한국의 도움과 협력이 필요하다는 매우 구체적인 언급이 나왔다"고 강조했다.
안호영 전 주미 한국 대사는 지난 8일(현지시간) 싱크탱크인 윌슨센터가 주최한 온라인 세미나에서 트럼프 2기 미국 정부에서의 한미 관계와 관련해 "미국의 인플레이션과 싸움이나 경제 성장 문제에서 한미 간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많이 있다"면서 "한국은 반도체, 양자컴퓨팅, 인공지능(AI) 등과 함께 제조업 측면에서 검증된 능력이 있기 때문에 (미국에) 제공할 것이 많다"고 밝힌 뒤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윤석열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한국 조선업과의 협력을 거론한 것을 언급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대선 운동 기간에도 한국 조선업에 대해 발언한 적이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지난 5월 뉴저지주 와일드우드 유세에서 "한국은 엄청난 돈을 벌고 있다. 그들은 우리의 조선산업과 컴퓨터 산업을 가져가고, 다른 많은 산업을 장악하면서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의 조선업이 잘 나가고 있음을 알고 발언한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앞서 트럼프 당선인의 측근인 로버트 오브라이언 전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은 9월 13일 조태열 외교부 장관과 만나 방산 분야 한국의 역량과 기여를 높이 평가하고 조선 및 선박 유지·보수·정비(MRO) 분야 협력이 지속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과연 트럼프 당선인은 한국 조선업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트럼프 당선인은 26년 전에 거제도의 한국 조선소를 직접 방문해 선박 발주까지 검토했을 정도니 한국 조선업에 대한 관심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세계적인 부동산 투자가로 이름을 날렸던 트럼프 당선인이 트럼프사 회장이던 1998년 6월 4일에 나흘 체류 일정으로 방한해 대우그룹 계열사였던 대우중공업(현 한화오션)의 거제 옥포조선소를 방문했다. 당시 트럼프 당선인은 개인 요트로 사용하기 위해 구축함 1척을 발주하겠다는 의향을 내비쳐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당시 트럼프 당선인의 옥포조선소 방한 모습은 사진으로 남아있는데, 사진을 보면 조선소 야드를 걸어 다니며 건조 중인 선박을 둘러보고 있으며 일행들과 함께 본관 건물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기도 했다.
방한 당시 옥포조선소 내에 건조 중인 구축함을 둘러보면서 즉석에서 발주 의사를 피력하고 본체를 인수한 후 미국에서 내·외장 인테리어 작업을 거쳐 요트로 개조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계약까지는 성사되지는 않았다.
◇ 중국에 위협받는 미국 해군력…군함 수에선 이미 밀려
트럼프 당선인이 한국과 조선업 협력을 피력하고 나선 것은 글로벌 경쟁력 저하로 군함 건조 능력 유지마저 힘들어진 미국 조선업의 처참한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미중 패권 전쟁이 가열되는 상황에서 대양 해군력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는데 전 세계 조선산업을 좌지우지하는 중국은 대형 군함을 물건 찍어내듯이 생산하고 있지만 미국은 해군 함정 수리조차 제대로 하기 힘든 상황이기 때문이다.
트럼프 당선인이 대통령이던 2018년 미 해군력 확충의 필요성을 느꼈던 적이 있다.
2018년 9월 30일 미 해군 구축함 디케이터함이 '항행의 자유' 작전의 하나로 스프래틀리 군도(중국명 난사<南沙>군도)의 게이븐 암초(중국명 난쉰자오<南薰礁>) 인근 해역을 항해하던 중 중국의 뤼양(旅洋)급 구축함이 45야드(41m)까지 접근해 양측간 무력 충돌 직전까지 간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군사전문가인 싱가포르 난양이공대의 콜린 코 교수는 "중국 구축함의 기동이 정상적인 항해 규칙을 벗어난 것으로 중국 해군 함정의 고의적인 행위로밖에 볼 수 없다"면서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지속해서 해군력을 키워왔으며 그 힘을 과시하려 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실제 중국 해군력은 최근 미국이 위협을 느낄 정도로 급격히 성장했다. 미 해군에 따르면 중국이 보유한 전함이 미국을 훨씬 앞지르며 해군력 부문에서는 역전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트럼프 정부 시절이던 2020년 9월에 미국 국방부는 '2020 중국 군사력 보고서'에서 중국이 130척의 수상 전투함정을 비롯해 모두 350척의 군함과 잠수함을 보유해 세계 최대 규모 해군력이라면서 미 해군은 293척 보유에 그쳤다고 분석했다. 이어 '2023 보고서'에서는 중국 해군 군함과 잠수함이 모두 370척까지 늘어난 것으로 평가했다.
2025~2029년 미 해군의 함정 계획표에 따르면 2030년에 미국은 290척을 보유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중국은 425척을 갖게 될 것으로 전망돼 양국 함정의 격차는 계속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질적으로도 미 해군력은 중국을 압도한다고 보기 어렵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의 집권기인 2010년부터 2024년 사이에 건조된 중국의 신형 군함은 전체 군함의 70%를 차지하지만 이 기간 미국의 신형 군함은 전체의 25%에 불과하며, 중국 함정의 평균 선체 연령은 14.9년이지만 미국 함정은 24.2년이나 되기 때문이다.
물론 패권 전쟁을 좌우하는 항공모함 전력만 보면 아직 미국이 우세인 건 맞다.
항공모함 수에서 미국이 앞서고 있고 운영 능력 면에서도 한 수 위라는 평가다. 다만 중국이 항공모함을 급격히 늘리고 있어 전력 격차는 향후 급격히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미국 해군은 현재 11척의 항공모함을 보유하고 있다. 미국의 니미츠급 항공모함은 1975년부터 운영되고 있으며 제럴드 R. 포드는 미 해군의 차세대 항공모함으로 신형 핵발전 플랜트와 통합 전쟁 시스템, 이중 대역 레이더 등 최첨단 기술이 적용돼 '슈퍼 핵 항모'로 불린다.
중국은 2척의 항공모함을 보유하고 있다. 첫 번째 항공모함은 랴오닝(遼寧)함이며 두 번째 항공모함은 산둥(山東)함이다. 현재 계류 테스트 중인 세 번째 항공모함이 푸젠(福建)함이다. 중국은 푸젠함에 이어 4번째 항공모함을 건조하고 있다. 아직 항모의 명칭이 명명되지 않아 현재는 004형 항모라고 불린다. 랴오닝함, 산둥함, 푸젠함과 달리 004형 항모는 핵 추진 항모다. 중국은 2030년까지 5~6척의 항공모함을 보유할 계획이다.
미 해군전쟁대학 샘 탠그레디 교수는 해군연구소가 발간하는 잡지 '프로시딩' 기고문에서 "해상 전쟁의 경우 질적으로 우위인 소규모 함대는 승리의 방법이 아니다"라며 "거의 항상 큰 함대가 이긴다"고 지적했다. 이미 세계적으로 가장 큰 해군 전력을 보유한 중국이 빠르게 몸집 불리기를 이어 나가는 상황에 대한 경고인 셈이다.
◇ 미국, 한국 조선에 러브콜…군함 수리ㆍ건조 협력 추진
해군력 강화에 고심하는 미국 정부는 조선업 강국인 한국과 일본을 협력 대상으로 여기고 있다.
미국 조선업이 세계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도 안 되며 중국과 한국, 일본의 점유율이 90%를 넘기 때문이다.
유엔무역회의(UNCTAD) 자료에 따르면 상업용 선박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중국이 3천285만t으로 전체의 51%를 장악하고 있으며 한국이 1천831만t으로 28%, 일본이 996만t으로 15%를 차지하고 있다.
이어 필리핀이 80만t, 이탈리아가 40만t, 프랑스가 32만t, 독일이 28만t, 핀란드가 26만t, 대만이 18만t, 러시아가 17만t, 네덜란드가 9만t, 튀르키예가 7만9천t, 인도네시아가 7만5천t, 미국이 6만4천800t, 이란이 6만4천700t 순이었다. 미국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0.1%에 불과했다.
지난 6월 글로벌 컨설팅사인 맥킨지는 '새로운 항로 개척 : 미국 조선소의 미 개발 잠재력'이란 보고서에서 미국 조선업이 글로벌 경쟁력에서 밀리면서 대형 선박을 건조할 수 있는 조선소가 과거보다 80% 이상 줄었고 한중일 3국이 글로벌 상선 건조량 90% 이상을 독식하게 됐다고 분석했다.
맥킨지는 건조와 유지 및 수리 산업 기반의 역량과 보안, 투명성에 대한 투자가 핵잠수함 파트너십에서 매우 중요하다면서 믿고 맡길 수 있는 양호한 공급업체가 오커스(AUKUS·미국·호주·영국 안보동맹) 핵잠수함 파트너십의 핵심 우선순위라고 평가했다.
1,2차 세계대전 당시 대형 군함을 대량으로 찍어냈던 미국의 조선업 인프라가 현재 위기 상황인 이유는 무엇일까.
그 원인은 1920년 만들어진 '존스법'에 있다. 이 법의 핵심은 미국에서 만든 선박만이 미국의 항구에서 다른 항구로 물품과 승객을 운송할 수 있다는 강제 규정이다.
존스법은 당시에는 미국 조선업의 부흥에 단기적으로 도움이 됐다. 미국 내에서 만들어 소유해야 하니 미국인들의 일자리를 보호하고 미국 조선소는 글로벌 경쟁 없이 자국 내 선박 건조를 독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법의 보호를 받는 미국 조선소들이 생산능력 개발보다 적은 비용을 투자해 선박을 만드는 것에 집중했고 1980년대 미국 조선업에 대한 로널드 레이건 정부의 보조금 축소 등으로 쇠퇴하면서 미국은 일본에 이어 한국, 중국에도 조선 경쟁력이 밀리게 됐다.
미국 조선업의 쇠퇴로 미 해군은 큰 타격을 받은 상황이다. 미국 조선소가 군함 제작에 오랜 시일이 걸리고 생산 기술력도 한국, 중국, 일본을 따라잡지 못한데다 인건비 때문에 건조 비용 또한 비싸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반영하듯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외교ㆍ국방장관 회의의 공동 성명을 보면 미국의 한국 조선업에 대한 협력 강화 내용이 들어있다.
'제6차 한미 외교·국방 장관회의 공동성명'에는 "양국 장관들은 유지·보수·정비 프로젝트 협력을 위한 최근 조치들을 논의했으며, 미 선박의 MRO 서비스 수행을 위해 미 해군이 대한민국 조선소에게 인증을 부여한 것을 환영하였다."고 명기했다.
헨리 해거드 전 주한미국대사관 정무공사는 지난 7일(현지시간) 미국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미국이 한국과 관계 강화를 통해 되살릴 수 있는 산업으로 조선업을 꼽았다.
해거드 전 공사는 차기 미국 대통령과 의회가 미국의 조선업을 구하고, 미래에 군사 및 화물용으로 필요한 선박을 공급할 역량을 보존하려면 선박을 미국 밖에서도 만들 수 있도록 존스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혁신적인 한국 기업들이 미국에 중대한 투자를 하도록 허용해 미국의 선박 건조 역량을 보존하고 새로운 일자리 수천개를 창출할 뿐만 아니라 미국이 우리 군대와 산업에 필요한 최첨단 선박 건조에서 세계를 선도하는 역할을 하는 데 도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가운데 최근 한화오션은 미 해군 7함대에 배속된 급유함 '유콘(USNS YUKON)'함의 정기 수리 사업을 수주했다. 1994년 3월에 취역한 '유콘'함은 배수량이 3만1천t에 이른다. 한화오션은 내년 4월까지 수리해 미 해군 측에 인도할 계획이다.
이는 올해 들어 미 해군 함정에 대한 두 번째 MRO 수주로, 한화오션은 지난 8월 국내 조선소 최초로 미 해군 군수지원함인 '월리 쉬라(Wally Schirra)'함의 MRO 사업을 따낸 바 있다.
president21@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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