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 민주화 이래 첫 비상계엄 사태로 외교적 위상에도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한국이 미국의 강력한 동맹이자, 서방 국가들의 환영을 받는 배경은 권위주의에 맞선 민주주의였다. 그러나 군부 독재를 연상케 하는 계엄령으로 회복하기 어려운 악수를 뒀다는 평가다.
4일 외교 당국에 따르면 전날 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영국·중국·러시아 등 한국에 주재하는 주요 외국 공관들은 자국민을 대상으로 '긴급공지'를 잇따라 발령했다. 불필요한 외출이나 정치적 시위에 참여하는 행위를 자제하라는 권고가 담겼다.
극비리에 진행된 계엄령이 선포되자,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자정을 앞둔 시각 실·국장급 간부들을 정부서울청사로 불러 긴급회의를 진행했다. 주한 공관들과 소통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외교부 당국자는 "외교부가 밝힐 입장도, 취할 조치도 없다"고 말을 아꼈다.
이번 비상계엄 선포는 한국에 머무는 외국인은 물론, 국제사회에도 상당한 충격을 안긴 것으로 평가된다. 주요 외신들은 한국의 계엄령 소식을 긴급 타전하며 윤 대통령의 정치적 위기를 조명했다. 그가 지금껏 활발한 정상외교를 펼친 명분이자, 미국 바이든 행정부의 강력한 파트너로 나선 근간이 '민주주의 수호'였기 때문이다. '캠프 데이비드' 선언 등 한미동맹 강화에 이어 올해 3월 미국 밖에서 처음으로 열린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서울에서 단독 주최하기도 했다.
정작 미국과도 계엄령에 대해 사전 교감을 나누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며, 한미동맹 균열 우려도 나온다.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대변인은 "(계엄령을) 사전에 통지받지 못했다"며 "우리가 목도하는 상황을 심각하게 우려한다"고 밝혔다. 민주주의에 방점을 둔 바이든 행정부는 물론, 내년 1월 '트럼프 2기' 출범을 앞두고 대미 외교 리스크를 키웠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제니 타운 미 스팀슨센터 선임연구원은 "이번 사건은 윤 대통령의 임기 종료를 의미할 수 있다"며 "이미 인기가 없었지만, (계엄령은) 탄핵을 추진하는 실마리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익명을 요구한 외교 전문가는 "계엄 사태가 6시간 만에 끝나긴 했지만, 한국의 민주주의 시스템과 외교적 신뢰도에 타격을 입혔다"며 "다자 외교에서 셈법이 복잡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장희준 기자 jun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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