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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시시비비] 2024년 12월, 당신은 어디에 있었는가
    입력 2024.12.12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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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시아경제 ]

"시민이 정치인에게 투표를 독려해야 하는 나라가 세상천지에 어디 있습니까."

지난 8일 부산 서면의 대통령 탄핵촉구 집회장. 연단에 오른 18세 여고생은 자신을 ‘부산의 딸’이라고 소개했다. 여고생은 떨리는 목소리로 10여분간 연설을 이어갔다. 학교에서 배운 민주주의 내용을 언급하며 탄핵 표결에 불참한 국회의원들을 비판했다.

해당 영상은 ‘K-딸, 부산의 딸 기성세대를 반성하게 만든 감동연설’이라는 제목으로 유튜브에 노출됐다. ‘눈물이 난다’ ‘유관순은 동네 곳곳에 있다’ ‘대한민국 미래는 밝다’…. 1만개가 넘게 달린 댓글은 찬사와 감동이 주를 이뤘다.

여고생은 어떤 연유로 연단에 서게 됐을까.

"걸음마를 뗀 사촌 동생과 집에 있을 남동생이 먼 훗날 역사책에 쓰일 지금, 이 순간을 배우며 제게 물었을 때, 부끄럽지 않게 당당하게 여기 나와 말했다고 하고 싶어서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부끄러운 사람으로 남고 싶지 않다는 얘기. 현직 대통령 내란 연루 의혹이라는 사상 초유의 상황에서도 좌고우면하는 어른들의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내용이 아닌가. 훗날 누군가가 당신은 2024년 12월,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고 묻는다면 어떻게 답할 것인가. 이는 이 땅을 살아가는 정치인과 공무원은 물론이고, 시민 모두에게 해당하는 물음이다.

정치는 나와 상관없는 일이기에 방관했다고 할 텐가. 어떤 게 나의 이익일지 주판알을 튕기고 있었다고 말할 생각인가. 아니면 우리 아이들에게 부끄러움 없는 삶을 살고자 노력했다고 전할 것인가.

계엄령이 선포됐던 지난 3일 밤, 여의도를 향해 달려간 시민이 있었다. 고향도, 세대도 달랐던 그들은 맨몸으로 장갑차를 막아섰다. 말을 듣지 않으면 ‘처단하겠다’는 살벌한 계엄 포고령에도 주저함 없이 자기 몸을 던졌다.

첫 번째 탄핵 표결이 이뤄진 지난 7일 밤, 서울 여의도공원 왕복 12차선 대로의 횡단보도 위에도 시민이 있었다. 탄핵 집회에 참석하려는 이들과 그곳에서 나와 집으로 향하는 이들이 교차하는 공간이다.

"추운데 고생했습니다. 이제부터는 우리가 자리를 지킬게요."

어떤 남성의 한마디에, 횡단보도를 오가던 이들은 응원의 박수를 주고받았다. 낮부터 국회 앞을 지키던 이들은 훈훈한 마음으로 귀가했고, 국회 쪽에 새롭게 합류하던 이들 역시 흐뭇한 심정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여의도에는 매일 밤, 또 다른 시민들이 모여든다. 아이돌 응원봉을 손에 쥐고 탄핵 노래를 합창한다. 부끄럽지 않게 살겠다는 다짐의 실천은 광장의 메아리가 돼서 울려 퍼진다. 국회의원은 그 모습을 보며 무엇을 느끼는가. 자기 가슴에 달린 국회의원 배지는 권력의 소품이 아니라 민의를 대변하겠다는 다짐의 징표라는 것을 알고는 있는가.

그래서 다시 묻고자 한다. 대통령 탄핵 2차 표결이 이뤄질 오는 14일, 어디에서 무엇을 할 생각인가. 엄중한 국면에서 국회의원 말과 행동은 텍스트와 영상으로 남아 역사에 영원히 기록된다. 누가 시민의 편에서 국회의원 본분을 지켰는지, 욕심과 망상에 취해 잔꾀를 부리려 했는지가 그 안에 고스란히 담긴다. 혹시 적당한 눈속임으로 상황을 모면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한 줌도 안 되는 권력의 모래성으로는 민의(民意)라는 거대한 물결에 맞설 수 없다는 것을 이제는 알 때도 되지 않았는가.

류정민 사회부장 jmryu@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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