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 "폭력은 히틀러와 같은 독재자 탄생으로 이어졌다"(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독일 나치 돌격대 등 역사 속 폭도가 하던 짓"(김선민 조국혁신당 대표 권한대행)
제2차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를 일으킨 나치 지도자 아돌프 히틀러가 정치권에서 연이어 언급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선포와 서울서부지법에서 발생한 폭력 사태 등이 내란 시도 혐의로 재판을 받다 지지층의 결집을 통해 풀려난 히틀러를 연상시킨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100여년 전, 독일은 현재 한국과 얼마나 닮아 있을까.
1923년 히틀러는 무장한 나치 돌격대와 함께 뮌헨에 위치한 뷔르거브로이켈러(B?rgerbr?ukeller)라는 맥주홀에서 폭동을 일으켰다. 이들은 독일 정치 지도자들을 맥주홀에 가둬놓고 히틀러를 내각 수반으로 하는 새로운 정부 출범을 선언했다.
엉성한 조직으로 시도한 폭동은 하루 만에 제압됐다. 히틀러는 내란 시도 혐의로 법원에 넘겨졌다. 하지만 그는 재판을 선전의 장으로 활용했다. 재판정에서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흔들리고 있는 독일 경제와 이를 방치하고 정쟁만 반복하는 정치권을 비난했다. 아울러 국민 저항권 행사 차원에서 맥주홀을 점거하는 난동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고 선동했다. 발언이 소개되자 극단적 지지층은 결집했다. 뮌헨 법원에 히틀러를 옹호하는 방청객이 들어찰 정도였다. 내란을 일으킨 히틀러는 여론에 힘입어 1년1개월 만에 가석방된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돌아가는 국내 상황이 유사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시도는 약 2시간 만에 국회의 해제 요구 결의안 의결로 인해 무위로 돌아갔다. 하지만 투쟁을 암시하는 발언으로 지지층을 한곳에 모으고 있다. 지지자의 극단적 행동에 불을 붙인 건 윤 대통령의 편지였다. 그는 새해가 되자 탄핵 반대 집회를 벌이는 지지자에게 "나라 안팎의 주권 침탈 세력과 반국가세력의 준동으로 대한민국이 위험하다"며 "여러분과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등 수사기관의 수사는 피하면서, 구속영장실질심사나 헌법재판소 탄핵 심판에는 참여하고 있다. 자신의 발언이 공개될 수 있는 곳만 찾아가는 등 사실상 지지자를 상대로 선전·선동하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지난 21일 헌법재판소 탄핵 심판에서 "저는 공직 생활을 하면서 자유민주주의라는 신념 하나를 확고히 살아온 사람"이라며 "계엄 선포 이전에 선거 공정성의 신뢰에 의문이 드는 게 많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국회와 언론이 대한민국에서 훨씬 갑(甲)"이라며 입법부, 언론에 대한 불신도 드러냈다.
히틀러의 사상은 옥중에서 완성된다. 그는 1년1개월의 옥살이 동안 자서전 '나의 투쟁'을 작성했다. 자서전에는 인종차별 등 이후에 히틀러가 저지를 범죄가 낱낱이 예고돼 있었다. 그는 독일인에 대해 "어떠한 시대에도 천재의 신성한 불꽃을 번쩍인다"고 평한 반면, 유대인을 '기생충'으로 표현하며 "유대인만 있다면 증오에 가득 찬 투쟁 속에서 서로 속이기만 할 것"이라고 비난했다. 독재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내놓았다. 히틀러는 "현대 서유럽의 개념인 민주주의는 개인을 간섭만 한다"며 "위대한 것을 창조한 주체는 지도적 정치가"라고 주장했다.
히틀러의 사상은 1929년 대공황 이후 대중적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나치당은 1928년 총선에서 득표율이 2.6%에 불과했지만 1932년 총선에서는 37.4%로 치솟아 원내 1당에 오른다. 중도를 중심으로 한 정치가 성과를 못 내자 지친 독일 국민들이 극단적 정치 세력에 표를 몰아준 셈이다. 중도 보수정당은 일단 인기를 확보하고자 히틀러와 연합하고 그에게 총리 자리를 내줬다. 1933년 독일 베를린에 위치한 국회의사당이 공산주의자에 의해 불에 타는 사건이 벌어지자 히틀러는 국가 비상사태를 선언했다. 이어 수권법을 통과시키면서 본격적인 독재를 시작한다. 수권법은 의회 입법권을 행정부에 넘기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윤 대통령을 지지하는 극우 지지층은 '자유민주주의 수호'라는 기치 아래에서 혐오, 폭력을 보여주고 있다. 단적인 예가 지난 19일 서울서부지법 폭력 사태다. 시위대는 서울서부지법에 난입하고 집기를 부수는 과정에서 "이재명 구속" "간첩을 척결하자" "경찰이 아닌 중국 공안이다"고 소리 질렀다. 야당과 중국, 북한을 향해 혐오를 서슴지 않고 보여주는 모습이다. 혐오 대상은 윤 대통령이 사실상 점지해줬다. 그는 지난달 12일 대국민 담화를 통해 "40대 중국인이 드론으로 국정원을 촬영하다 붙잡혔다"고 말하거나 "비상계엄 발동은 거대야당의 반국가적 패악을 알리고 자유민주주의 헌정 질서 붕괴를 막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내 여론은 극단적인 분위기가 잠식하는 흐름이다. 여론조사기관 한국여론평판연구소(KOPRA)가 아시아투데이의 의뢰로 지난 3~4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 무선 RDD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윤 대통령의 지지도는 40%로 집계됐다. 이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을 '매우 지지한다'고 답변한 비율은 31%, '전혀 지지하지 않는다'는 56%로 집계됐다. KOPRA가 이달 17~18일 진행한 여론조사에서도 '매우 지지한다'와 '전혀 지지하지 않는다'의 응답률은 각각 42%에 달했다. 응답자 가운데 80% 이상이 여론조사에서극단적인 답변을 내놓은 셈이다.
보수 진영에 대한 지지도 역시 함께 오르는 추세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의 의뢰로 지난 16~17일 만 18세 이상 남녀 1004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국민의힘 지지율은 46.5%로 일주일 전 조사 대비 5.7%포인트 상승했다.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은 극단적 발언을 내놓는 보수 유튜버 10명에게 설 명절 선물을 보냈다. 극우 정치 성향을 지닌 유튜버들은 윤 대통령에 대한 맹목적 지지, 집단행동을 부추겨 서울서부지법 폭력 사태를 일으킨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지만 권 비대위원장은 "해당 유튜버는 선동한 게 아니라 단지 상황을 알린 것"이라고 감쌌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 역시 지난 21일 극우 세력과 선을 그어야 한다는 의견에 "우리 당은 지지하는 모든 분을 포용하는 정당"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시민들은 공포감을 호소하고 있다. 서울서부지법 주변에 거주하는 나모씨(30·남)는 폭력 사태가 일어난 날, 잠들지 못하고 창문 너머로 현장을 지켜봤다. 그는 "소란스러운 건 느꼈지만 법원 창문과 사무실이 부서질 정도로 폭력이 난무했다는 소식에 충격을 받았다"며 "극단적인 지지자 때문에 나의 일상이 무너질까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으로 인해 한국 민주주의가 갈림길에 들어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와 친윤석열계가 극우 세력을 국내 정치의 중심으로 불러냈다"며 "서울서부지법 폭력 사태 가담자의 엄벌과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 등 민주주의 복원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공병선 기자 mydill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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