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 국내 조선업계가 미국 시장을 놓고 긴장을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우방국인 한국과 협력해 과거 세계 조선업을 이끌었던 미국 위상을 재건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치고 있지만, 관세전쟁을 시작하면서 판세를 장담할 수 없다는 평가다.
3일 국내 조선업계에 따르면 한화오션은 지난해 미 해군 함정 2척의 MRO 사업을 따냈다. 군수지원함 월리 쉬라(Wally Schirra)함에 이어 7함대에 배속된 급유함 유콘(USNS YUKON)함의 수리 사업을 맡았다. 한화오션이 4년 만에 흑자로 전환하는 터닝포인트가 됐다. 매출액은 10조7760억원으로 45.5% 늘었다. 영업이익이 2379억원으로 4분기에만 연간 영업이익의 절반 이상인 1690억원을 벌어들였다. HD한국조선해양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408% 증가한 1조4341억원이다. 매출은 25조5386억원으로 19.9% 늘었다. HD현대중공업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294.8% 증가한 7052억 원이다. 조선 3사가 동시에 흑자를 기록한 것은 2011년 이후 13년 만이다.
올해 국내 조선업계 매출은 더 늘어날 것이란 분석이 대체적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 이후 두 차례나 한국 조선업계에 협약 의지를 밝히는 등 긍정적인 영향 탓이다. 미 해군의 함정 MRO(유지·보수·정비) 시장 규모는 연간 20조 원으로 추정된다. 잠수함이나 함정의 운영 기한은 최대 40년으로 주기적인 유지·보수·정비를 받아야 한다. 잠수함 한 척이 인도되면 수십년간의 MRO 수요가 발생하는 구조다. 국내 조선업계는 미 해군 MRO 시장에서 신뢰를 구축하고 영역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시장정보 분석 기관 비즈윗에 따르면 세계 함정 MRO 시장 규모는 2020년 약 566억 달러에서 2030년 705억 달러까지 커진다.
한화오션은 올해 MRO 사업 5∼6척을 충분히 소화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추가로 수주가 늘어나면 중소 조선소와 협업을 검토할 수 있다고 했다. 지난해 한화시스템과 약 1억 달러를 투자해 미국 필리 조선소(Philly Shipyard)의 지분 100%를 인수하고 현지 사업 확대 가능성까지 열어놨다. 중형 조선사인 HJ중공업도 사업 진출을 준비 중이다. 지난해 말 방사청으로 해군의 유도탄고속함 18척의 성능개량 체계개발 사업을 수주하는 등 함정 MRO 역량을 키우고 있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행정부의 호재를 아직 장담할 수 없다고 평가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캐나다와 멕시코, 중국 수입품에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근거는 국제비상경제법(IEEPA)다. 1977년에 제정된 이 법은 전쟁 등 국가비상사태가 발생했을 때 기존 협정 등을 모두 뛰어넘는 경제 통제가 필요하다고 보고 대통령에게 주는 특권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법을 관세전쟁에 활용했다. 통상 적대국에 제재 가할 때 사용하는 법을 동맹국 관세부과에 사용한 것은 이례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내 법령을 내세워 태도가 돌변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미국은 해군 함정의 건조나 MRO를 외국에 맡기지 않기 위한 법령이 있다. 자국 내 선박 건조를 독점할 수 있는 일명 ‘존스법’(Jones Act)으로 알려진 ‘상선법’(The Merchant Marine Act)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반스-톨레슨 법안, 국방 연방획득 규정, 국방수권법(NDAA), 미국산구매법(BAA)도 있다. 국내 조선업계가 2028~2030년 사이에 355척에 달하는 함정을 보유하기 위해서는 이 법안들을 폐기하거나 수정해야 가능해진다. 한국, 일본 등 조선업체들이 미국 조선업체를 인수해 함정 건조 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해도 수주는 사실상 어려울 수 있다.
김종하 한남대 국방전략대학원 교수는 “미국의 건조 능력으로는 2030년까지 380척 함정 유지가 어려워 국내 조선업계의 도움이 절실하다”면서 “한국 내에서 미국함정을 건조할 수 있도록 트럼프 행정부가 존스법 등 법령을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원준 전북대 교수는 “한국은 하루빨리 미국 정부와 조선 함정산업 협력을 위한 협의체를 신설해 중장기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양낙규 군사 및 방산 스페셜리스트 if@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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