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 4시간만 자고 공부하면 대학에 붙고 5시간 자면 떨어진다는 사당오락(四當五落)이란 말이 있다. 원하는 대학에 가기 위해서는 경쟁자들보다 덜 자고 더 공부해야 한다는 간단한 논리로 만들어진 말이다. 잠을 줄여가며 공부한 수험생에게 주어지는 가장 달콤한 보상은 원하는 대학에 붙는 것이다. 원하는 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잠 좀 줄여서 공부하겠다는 학생을 혼낼 이유는 없다.
산업군의 특성을 반영하지 못한 획일적인 주52시간 노동상한제(주52시간제)는 조금 비틀어보면 목표를 위해 좀 더 일하고 싶어하는 노동자의 권리를 묵살한 제도다. 주 최대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산정하면서 유연성을 가져가는 데에는 실패했다. 장시간 노동으로 삶의 질이 떨어진 노동자들을 강제적인 근로시간 제한으로 구해보겠다는 좋은 취지가 유연성 부족으로 산업계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요인으로 전락했다. 어떤 산업군에는, 그리고 개인의 역량과 가치관에 따라 주 52시간은 목표 달성에 턱없이 부족한 시간일 수 있다는 점을 간과했다.
현재 반도체특별법의 2월 임시국회 처리에 공감대를 형성한 여야는 주52시간제 예외 적용을 놓고 접전 찾기에 나서고 있다. 정부와 국민의힘은 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주52시간제 특례도입을 내용으로 담고 있는 반도체법 처리가 시급하다고 호소한다. 반면 야당은 반도체산업 지원 필요성에는 공감하나 노동시간 적용 제외부문에 대해서는 시간을 더 갖고 논의하자는 입장이다.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이 큰 대한민국의 반도체 경쟁력이 저 멀리 달아나고 있는 미국·대만과 빠르게 쫓아오는 중국 사이에서 멈춰 있게 하지 않으려면 앞서 나갈 수 있는 기술개발은 필수적이다. 혁신적인 개발을 위해 연구자들의 시간을 들인 노력이 필요한 것은 당연한 논리다. 글로벌 연구개발(R&D) 인력들이 몰입 연구를 통해 혁신을 만들어가는 상황에서, 주 52시간 근로제가 반도체 업계의 성장을 저해한다는게 업계의 판단이라면 정부는 개선에 힘을 보태는 노력을 해야한다. 더 많이 일하고 성과를 낸 근로자들에게 기업이 충분한 보상을 하면 될 일이다. 그건 기업의 몫이다.
기업의 성장이 근로기준법 위반에 기반한 성장으로 이어지는 환경 조성은 더 이상 안된다. 점진적으로 고액연봉자에게 근로시간 상한을 적용하지 않는 예외 제도(화이트칼라 이그젬션)나 업종 특성상 특정 기간에 업무가 몰리는 경우 다른 근로일에 근로시간을 배분하는 선택적 근로시간제 등을 좀 더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 마련도 필요하다.
노동조건의 최저 기준을 법정화한 근로기준법이 산업군의 특성을 반영하지 않는 획일적인 주52시간이라는 숫자에 너무 매몰돼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볼만하다. 당장 특별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근로기준법 조항 재논의로 미루는 방식은 시간만 지체할 뿐이다.
주52시간제를 고집하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3일에 열린 반도체특별법 정책토론회에서 주52시간제 예외조항에 대한 전향적 입장을 내비치며 우측 깜빡이를 켰다. 이 대표는 이번에 진짜 우회전을 할 수 있을까. 중도층 민심 확보를 위한 일시적인 우측 깜빡이로 그치는 게 아니길 기대해본다.
박선미 기획취재부장 psm8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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