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9일 “우리는 원래 진보 정당이 아니다”라며 민주당이 ‘중도 보수’ 정당의 노선으로 방향을 틀었음을 공식화했다. 당 안팎에서 지적되는 ‘우클릭’ 논란이 불거지자 이 대표가 여당이 아니라 민주당이 보수 정당이 맞다며 반박에 나선 것이다. 당 일각에서는 이 대표가 대선만을 보고 당의 노선을 논의 없이 바꿨다는 불만도 터져 나왔다.
이 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은 원래 성장을 중시하는 중도 보수 정당”이라며 “우리는 원래 진보 정당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 대표는 전날 한 유튜브 채널에서 “앞으로 민주당이 중도 보수 정권, 오른쪽을 맡아야 한다”며 “우리가 진보 정권이 아니다”라고 말했는데 이러한 생각을 재차 강조한 것이다.
이 대표는 이날 서울 마포구 한국방위산업진흥회에서 열린 조선·방산 산업 간담회에서도 “우리는 우클릭을 한 바 없다”며 “원래 민주당이 서 있던 자리에서 실사구시적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했다.
이 대표가 중도 보수 정당으로 방향을 트는 움직임은 지난해 말부터 일찌감치 드러나 있었다.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 한미동맹 강조, 상속세 완화 등을 주장하는 등 그때그때 필요한 정책을 쓰겠다며 실용주의를 강조했다. 이 대표는 전날 페이스북에 “초부자들은 감세해 주면서 월급쟁이는 사실상 증세해 온 건데, 이거 고칠 문제 아닌가 싶다”며 근로소득세 개편 등 세제 개편 논의를 연이어 띄우기도 했다.
이 대표가 이처럼 민주당을 중도 보수 정당이라고 못박으며 관련 정책을 쏟아내는 데는 조기 대선 가능성이 언급되면서 자신의 최대 약점인 중도층 지지를 확보하기 위한 의도가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민주당 지도부 관계자는 “그 어느 때보다도 양 지지층이 분명하게 나뉜 상황이라, 조기 대선이 열리면 민주당도 국민의힘도 지지하지 않는 중도층을 어느 쪽이 확보하느냐에 승패가 갈릴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당내 일각에서는 이 대표의 중도 실용주의 노선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민주당의 오랜 지지층인 노동계와 배치될 수 있는 데다 민주화 운동으로 뿌리 내린 정당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 될 수 있어서다.
김부겸 전 총리는 페이스북에 “유구한 역사를 가진 민주당의 정체성을 혼자 규정하는 것은 월권”이라고 비판했다. 김경수 전 경남지사도 “당 내외의 폭넓은 합의가 있어야 한다”며 “한 번의 선언으로 민주당의 정체성을 바꿀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한 중진 의원은 “민주당은 중도 진보를 지향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했고, 다른 재선 의원은 “민주당 정체성이나 색깔에 대해선 온건 진보”라며 우려했다.
중도 보수 노선을 분명히 한 이 대표는 당내 통합에도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이 대표는 21일 비명(비이재명)계 박용진 전 의원과 오찬을 함께하며 지난 총선 때의 공천 갈등 해소에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