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
마사이 다카코(政井貴子) 일본 SBI경제연구소 대표는 12·3 비상계엄 사태에 대해 "한국은 정치적 혼란으로 경제에 부정적 영향이 예상됐지만 비교적 잘 수습하고 있다"며 "한국 특유의 위기극복 능력은 국가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큰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은행(BOJ) 심의위원(금통위원)을 지낸 마사이 대표는 5일 아시아경제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한국 민주주의와 법질서에 대한 외국인 투자가를 비롯한 세계의 불안한 시각이 어느 정도 완화된 것으로 본다"며 이같이 말했다. 정치적 혼란으로 위기감이 고조되면서 원·달러 환율이 1500원을 넘어설 것 같았지만 점차 안정을 찾았으며 우려했던 환율 급등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마사이 대표는 2016년 일본은행 최고의사결정기관 정책위원회에서 유일한 여성 위원으로 참여했다. 정책위는 총재와 부총재 2명, 심의위원 6명 등 총 9명으로 구성되는데 9명 모두 국회의 중의원과 참의원의 동의를 얻어 내각이 임명한다. 시장전문가였던 그는 스코샤은행과 크레디아그리콜은행을 거쳐 2007년 신세이은행에 입행했다. 2013년 신세이은행 최초로 여성 임원 타이틀을 달았으며 20년 넘게 금융 시장 전문가로 활동해왔다. 현재는 SBI경제연구소 대표로 신흥 금융 기술과 미래에 대한 연구를 담당하고 있다.
마사이 대표는 최근 한국의 상황에 대해 "한국은 2000년대 초반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국가적 노력을 통해 매우 짧은 기간에 경제 성장을 되살린 전력이 있지 않으냐"면서 "이러한 경험은 경제관리가 어려울 때 강력한 힘이 되어줄 자산이며, 이 같은 경험을 가진 국가가 일본과 비슷한 ‘잃어버린 30년’을 겪을 가능성은 낮다"고 예상했다. 한국 경제가 1%대 저성장 고착화로 일본의 전철을 밟을 것을 우려하고 있지만 일본 사례를 타산지석 삼아 위기를 헤쳐나갈 수 있다는 전망이다.
1990년대 이후 장기 불황에 빠졌던 일본 경제가 최근 부활하면서 ‘잃어버린 30년’ 종식에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마사이 대표는 "일본 경제는 디플레이션 극복을 향해 진전을 보이고 있지만 ‘잃어버린 30년’이 끝났다고 단정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며 "디플레이션 극복을 위해서는 지속적인 임금인상, 지속 가능한 투자, 소비 증가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내수에 의한 인플레이션 징후가 나타나고 있지만 디플레이션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위해서는 물가 수준과 물가 결정 메커니즘을 면밀히 모니터링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마사이 대표는 일본의 경제 회복과 미래 전망에도 불구하고 실질 임금 성장이 부족한 이유에 대해 "코로나19 이후 경제성장은 엔화 약세와 인바운드 소비로 인한 수출기업의 실적 호조가 뒷받침됐다"면서 "그러나 정부정책과 심각한 노동력 부족에도 불구하고 임금인상은 제한적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기업 이익은 증가했지만 임금보다는 내부 유보금과 주주환원에 초점을 맞춘 경우가 많았다"면서 "그러나 최근 대기업을 중심으로 임금 인상 등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으며, 이는 결국 중소기업으로 확산돼 실질 임금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2024년도 주요 기업 평균 초임은 약 24만800엔으로 2021년도보다 8.8% 올라 근로자 평균 임금 증가율(7.4%)을 앞질렀다. 올해는 일부 대기업 초봉이 처음 30만엔대에 진입하면서 임금 인상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마사이 대표는 일본 기업들의 경쟁력 회복에 대해서도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그는 "소니나 도요타 등 주요 기업들이 경쟁력을 회복했지만 일본 기업 전체가 경쟁력을 회복했는지는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있다"면서 "현재 이런 이해를 바탕으로 정부가 다양한 정책을 개발하고 있는데 기업 경쟁력 강화가 중요하다는 인식을 공유하는 것이 국가적으로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디플레이션 탈출을 위해 일본 총리 아베 신조가 2012년부터 시행한 경제정책인 ‘아베노믹스’에 대한 평가가 분분한 가운데 마사이 대표는 "통화 완화로 인한 엔화 가치 하락과 그에 따른 주가 상승을 통해 일정한 성과를 거뒀다"고 했다.
일본이 밸류업 정책을 지속하면서 일본 주가가 35년 만에 최고치를 찍은 데 대해서는 "일본 주식의 상승은 주가순자산비율(PBR) 1 미만인 기업에 대한 대응 등 정책 중심의 기업지배구조 개혁에 의해 크게 뒷받침되고 있다"며 "다른 요인으로는 엔화 약세로 인한 수출기업의 이익증가와 해외투자자의 자금유입 등이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올해 일본은행의 기준금리 전망과 관련해서는 "일본은행이 정책변경을 신중하게 진행할 것이기 때문에 급격한 금리인상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며 "그러나 물가상승률이 2%를 계속 초과할 경우 연내 추가금리 인상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마사이 대표는 중앙은행의 독립성 논란에 대해서는 "일본은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국회에서 존중하고 있다"면서 "중앙은행 독립성에 대한 저만의 관점은 국민의 안녕을 고려할 때 경제성장과 지속적인 임금인상을 보장하는 메커니즘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필수적이라는것"이라고 강조했다.
마사이 대표는 엔화 환율 전망을 묻자 "단기적으로는 엔화가 약세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지만 일본은행이 금리를 인상하거나 미국이 인하하면 엔화가 강세를 보일 수 있다"며 "다만 일본의 경상수지 흑자를 고려할 때 장기적으로 엔화가 크게 하락할 가능성은 낮다"고 내다봤다.
서소정 기자 ss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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