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미술로 보는 세상] 남자, 아버지 이름으로
    도광환 기자
    입력 2024.10.05 08:00

(서울=연합뉴스) 도광환 기자 =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구스타브 카유보트(1848~1894)를 흔히 '남성을 그린 화가'로 부른다.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인 '창가의 남자'(1876)에서 한 남자의 당당한 고독에 동참할 수 있다.

'창가의 남자'
게티 센터 소장

최초로 도시 노동을 그린 작품으로 알려진 '대패질하는 남자들'(1875)에선 작업하는 남성들 건강한 땀 냄새를 맡을 수 있다.

'대패질하는 남자들'
오르세 미술관 소장

'뱃놀이'(1877)에선 파리 근교를 찾아 자연을 만끽하는 한 근육질 남자의 여유로운 여행에 동행할 수 있다.

'뱃놀이'
오르세 미술관 소장

당시 파리 풍속을 대변하는 대작, '비 오는 날, 파리'(1877)에서도 가장 오래 눈길을 잡는 건 부르주아 남자의 복장과 표정이다.

'비 오는 날, 파리'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소장

카유보트는 화가임과 동시에 '작품 수집가(컬렉터)'로도 유명하다. 상류층 자제로 태어나 부유한 환경에서 성장했으며, 아버지가 사망한 후엔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아 친분 있던 인상주의 화가들 작품을 대거 수집했다.

인상주의 전시회를 여러 차례 기획하는 등 가난했던 동료 화가들에게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은 '구세주' 같은 존재였다.

더욱이 사망할 때는 그동안 수집했던 대부분 작품을 국가에 기증했다. 오늘날 파리 여러 미술관에서 인상주의 화가들 작품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는 건 카유보트에 빚진 것이다. 그는 많은 유산을 헛되이 쓰지 않은 인간미 넘치는 19세기 모범 부르주아였다.

카유보트는 법관이 되기를 희망한 아버지 바람대로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지만, 화가의 길을 가기 위해 법률 사무소 대신 당대 유명 화가였던 레옹 보나(1833~1922) 화실을 찾았다. 아버지는 반대하지 않았다.

남자를 주인공으로 삼으면서 부녀 그림을 다수 남겼다는 점도 주목된다. 남자는 그의 아버지이며 곁에 동행하는 여자는 성(性)을 바꾼 카유보트 자기 모습이었을 것으로 짐작해 본다. 그는 평생 독신이어서 부인과 자녀를 두지 않았다.

아래 그림들처럼 아버지와 산책하고, 낚시하며, 공원을 찾았던 지난 시절 추억을 상기한 것이다.

'오르막길' (1881)
개인 소장
'낚시' (1878)
개인 소장
'카유보트 소유지 공원' (1875)
개인 소장
'오렌지 나무 아래' (1878)
휴스턴 미술관 소장

모성(母性)에 비해 부성(父性)은 일상에서나 예술에서나 훨씬 덜 언급되는 소재다. 오히려 여러 신화나 역사 이야기에서 주요 줄기를 이루는 건 '아버지 부재(不在)'다.

신탁 탓에 버려진 뒤 자기도 모르게 친아버지를 죽이는 오이디푸스, 홀어머니 슬하에서 자란 뒤 아버지를 찾아 나선 테세우스,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태어났지만, 인간이 아닌 성령에 의해 잉태된 예수 그리스도 등이 대표적인 예다. 우리 신화에서도 고구려 유리왕과 신라 시조 박혁거세 역시 아버지 부재 인물이다.

이를 바탕으로 지크문트 프로이트(1856~1939)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즉 '아버지 저항 본성'이라는 무의식 세계를 피력했다. 이는 엄격하고 권위적인 아버지 상을 학문적으로 반영한 결과다.

'작업복 입은 남자' (1884)
개인 소장

오늘날에도 아버지들은 대체로 엄격한 권위주의에 얽매여 있지만, 점차 변하고 있다. 변화의 바탕은 결국 '사랑'이다. 친근함이 부족한 아버지여도 사랑을 잃지 않으면 자녀들은 안다. 위 그림처럼 침묵과 뒷짐 속에 스며 있는 사랑을.

그래서 카유보트가 그린 남자들을 보며 이렇게 생각한다. '그는 아버지 사랑을 받았고, 아버지 사랑을 그리워했으며, 아버지에게 사랑을 주고 싶었다'

사실 예나 지금이나 많은 자녀들이 조용히 읊조리는 말일 것이다. 적어도 읊조리고 '싶은' 말일 것이다.

doh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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