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성·평가하는 축제는 28개뿐…"자생력 있는 축제 육성해야"
도민 참여형 절실…"도민이 즐겨야 관광객도 즐겁게 여기고 찾는다"
(제주=연합뉴스) 변지철 기자 = 빼어난 자연환경과 독특한 생활풍습, 탐나는 특산물로 무장한 제주의 축제가 위기를 맞고 있다.
지역의 역사성과 정체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채 일반적인 공연과 먹거리 마당 위주로 진행되면서 관광객은 물론 도민으로부터도 외면받고 있다.
일부 주요 축제는 일회성 행사로 사라지거나 환경 파괴 등 각종 논란에 휩싸이며 존폐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제주가 한국의 관광일번지 명성을 되찾기 위해서라도 기존의 관행을 탈피해 지역 축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 우여곡절 제주 축제의 흑역사
연간 1천50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는 제주.
'축제'는 제주의 자연경관과 문화를 한데 엮어 제주 관광이 한단계 성장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잊고 싶은 흑역사를 써내려가기도 했다.
제주의 축제가 본격적으로 활기를 띠기 시작한 때는 언제일까.
1980년대까지 제주에서 축제라 부를 수 있는 행사는 탐라문화제와 제주감귤축제·유채꽃축제·제주철쭉제 등 4개에 불과했다.
1990년대 들어 지방자치제가 실시되면서 지역축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더니 제주의 다양한 관광자원과 특산품·신화·자연물 등을 활용해 축제를 개발하려는 시도가 이뤄졌다.
억새꽃축제와 한라산눈꽃축제·탐라국입춘굿놀이·성산일출축제·왕벚꽃잔치 등 새로운 축제가 생겨났고 그 수는 20여개로 늘었다.
2000년대에도 최남단방어축제·삼양검은모래축제·제주마축제·가파도청보리축제 등이 새로 추가돼 축제는 50여개로 증가했다.
제주문화예술재단이 지난 2020년 발간한 제주문예연감에는 코로나19 확산 이전인 2018년, 2019년에 각각 61개, 89개의 축제가 개최됐다고 밝히고 있다.
관광업계에선 축제의 성격을 띠거나 민간 차원에서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크고 작은 축제까지 포함하면 제주에서 연간 100개 안팎의 축제가 열린다고 말하기도 한다.
축제가 난립하면서 흥행에 실패해 사라지거나 논란 속에 존폐의 위기를 맞는 축제가 생겨났다.
대표적 실패사례는 제주 세계섬문화축제다.
지구촌 섬들이 한데 모여 전통문화를 교류하자는 취지의 세계섬문화축제는 1998년 125억원, 3년 후인 2001년 90억원이라는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었지만 두차례 개최를 끝으로 사라졌다.
실패 원인으로 무리한 목표 설정과 관광객 유치 실패, 민속공연(댄스)에 치중한 단순 프로그램, 도민 공감대와 참여 부족 등이 제기됐고 '세계'라는 표현이 무색한 '동네잔치'에 머물렀다는 평가를 받았다.
10년 뒤 제주 고유의 문화를 집대성해 제주 대표 축제로 육성하고자 했던 '2012 탐라대전' 역시 마찬가지였다.
백제문화제와 신라문화제를 벤치마킹해 26억원의 예산을 들여 제주 고대국가 '탐라국'의 역사·문화를 바탕으로 제주의 자긍심을 드높이려 했지만 콘텐츠 부족 등의 비난 여론을 받으며 일회성 행사로 초라하게 막을 내렸다.
최근에는 '지상 최대의 불놀이'라 불리며 명성을 이어온 제주들불축제가 논란의 중심이 됐다.
제주들불축제는 소와 말 등 가축 방목을 위해 해묵은 풀을 없애고 해충을 구제하기 위해 마을별로 불을 놓았던 제주의 옛 목축문화인 '방애'(불놓기를 뜻하는 제주어)를 현대적 감각에 맞게 재현한 문화관광 축제로 1997년 처음 개최됐다.
하지만 개최할 때마다 전국적인 대형 산불 발생과 겹치며 산불 발생 우려가 제기됐고, 기상악화 또는 코로나19 대유행 등으로 취소와 비대면 개최, 약식 개최를 반복했다.
또 새별오름에 불을 놓는 행위가 탄소배출, 대기오염 등 환경 문제를 일으킨다는 비판도 이어졌다.
결국 지난해 숙의형 원탁회의 등을 거쳐 들불축제에 불을 놓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사실상 존폐의 위기를 맞았다.
그러자 들불축제에 '불'이 빠져선 안된다며 폐지하기로 했던 '불놓기' 행사를 복원하는 내용을 담은 주민 청구 조례안이 제주도의회에 제출됐고 가까스로 도의회를 최종 통과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았지만, 여전히 논란은 이어지고 있다.
◇ 선심성·전시성 예산낭비 이벤트 악순환
충분한 준비 없이 매머드급 축제를 기획한 것도 문제지만 공연과 먹거리 마당 위주의 특색 없는 축제의 난립도 문제다.
제주의 많은 축제가 겉으로는 지역의 역사성과 정체성을 내세우지만, 정작 취지를 살리지 못한 채 도민과 관광객으로부터 외면받고 있다는 지적은 끊이지 않고 제기됐다.
제주도는 2007년 지역 축제의 내실화와 적정성을 도모하기 위해 사전 심의제도를 도입해 일부 경쟁력 없는 축제를 퇴출하거나 통합했고, 기존에 축제로 분류됐던 서귀포 겨울바다 펭귄수영대회와 같은 일부 스포츠 행사를 대상에서 제외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지속적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경쟁력 없는 기존 상당수 축제가 박람회 등 다른 형태로 살아남았다.
서귀포 천제연폭포에 깃든 칠선녀 설화를 모티브로 한 칠선녀축제가 기존 칠십리축제와 통합됐다가 지역주민의 요구 끝에 지난 2017년 11년만에 부활하는 등의 사례도 있다.
문제는 축제의 내실화다.
지역 축제의 효율적 관리와 지원·육성을 목적으로 '제주도 축제 육성 및 지원에 관한 조례'가 지난 2015년 제정됐다.
도는 조례에 따라 축제를 평가하는 제주도축제육성위원회를 운영하지만 평가 대상에 포함된 축제는 소수에 불과하다.
제주연구원이 2023년 11월 낸 연구보고서 '제주의 지역축제 활성화를 위한 주민참여 강화 방안'에 따르면 "제주에서 '축제'라는 명칭을 사용해 개최한 축제는 연간 100여개가 넘는 것으로 파악되지만 이 중 제주도 축제육성위원회의 육성·평가 대상 축제는 지난 5년간 30개 내외"라고 밝히고 있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회의가 열리지 않은 2021년과 2022년을 제외하면 2017년 28개, 2018년 28개, 2019년 26개, 2020년 29개, 2023년 28개 등이다.
제주 읍·면사무소 또는 동주민센터 등으로부터 보조금을 지원받는 축제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이에 대한 평가조차 이뤄지지 않는 셈이다.
제주도에 따르면 2023년 기준 평가 대상에 포함된 28개 축제의 전체 예산 규모는 50억4천800만원으로, 이 중 1억원 안팎의 비교적 적은 예산으로 치러지는 지역 축제가 16개로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완성도 높은 축제를 만들기보다 각 지역에 골고루 예산을 배분해주는 '선심성 사업'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 때문에 해마다 경쟁력 없는 축제가 열리고, 행사장에서는 같은 프로그램과 단순 이벤트성 공연이 주가 되는 전시성·선심성 예산낭비 이벤트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문성종 제주한라대학교 교수는 "적어도 지자체의 보조금을 받는 축제는 축제육성위원회의 평가 대상에 오르는 게 맞다"며 "확실한 피드백을 통해 개선할 건 개선하는 방식으로 진행돼야 한다. 자생력 있는 축제를 육성하기 위해서는 지역 축제에 대한 전문가 컨설팅 지원이 필수"라고 설명했다.
이어 "해외에선 지역주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축제의 경우 주민들이 1년 내내 축제를 준비하기 때문에 그 과정 자체가 축제이고 홍보가 된다"고 덧붙이며 주민 참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고선영 제주연구원 책임연구원도 "제주도는 축제를 관광 축제로 접근을 하다보니 '보여주기'에만 급급하고 정작 축제에 주민이 빠지는 우를 범한다"고 지적했다.
고 연구원은 "도민이 즐겨야 관광객도 즐겁게 여기고 찾아온다. 축제의 1차 타깃을 지역사회 주민으로 놓고 '우리가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을 해야 한다"며 "지역주민이 주도적으로 진행하는 축제에 컨설팅 등 다양한 지원을 해야 하고 그 영향이 서서히 파급되도록 꾸준한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bjc@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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