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파란색 그림 하면 떠오르는 프랑스 작가 이브 클랭(1928∼1962)처럼 화가 김춘수(67)도 1980년대 이후 30여년간 푸른색을 이용한 단색조 그림을 그려 왔다. 이브 클랭이 이른바 '이브 클랭 블루'로 알려진 '인터내셔널 클랭 블루'(IBK) 안료를 사용했다면 김춘수는 2000년대 들어 여러 청색 중에서도 울트라 마린(Ultra Marine)에 천착하고 있다.
서울 창성동 리안갤러리 서울점에서 29일 시작한 김춘수의 개인전 역시 울트라 마린 그림으로 가득 찼다.
한 가지 색으로만 오랜 세월을 작업하기는 얼핏 쉬운 일 같지만, 오히려 그 반대다. 늘 같은 그림을 그린다는 오해를 받기 쉽고 변화를 두드러지게 보여주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이날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당연히 앞으로 30년 넘게 청색만 쓰겠다고 (청색을 쓰기) 시작한 것은 아니다"라면서 "내가 당시 꽂힌 것은 색이 아니라 투명함"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아크릴 물감을 썼는데 물감의 '맑음', '투명함'에 꽂혔죠. 여러 색을 다 실험한 것은 아니지만 제가 경험한 색 중에 청색 물감이 유난히 더 맑았어요. 당시 현대 회화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가 평면성이었는데도 저는 화면의 깊이를 버릴 수가 없었어요. 고민하다가 깊이를 계속 표현하기로 했는데 청색 물감이 저와 맞았던 거죠."
여러 청색 중에서도 울트라 마린을 쓰는 이유는 형광과 보랏빛을 모두 담은 푸른색이기 때문이다.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얌전한 청색이 아니라 약간 광기 같은 게 있는 청색'이다. 울트라 마린 안료의 오묘한 색과 레이어(층)가 결합하면서 같은 안료인데도 다른 색을 사용한 것처럼 다양한 깊이가 있는 그림이 탄생한다.
작가는 붓 대신 손에 물감을 묻혀 작업한다. 그는 "1990년대 붓을 쓰다 보니 드러내고 싶지 않은 부분까지 너무 내가 드러나는 것 같아 손을 쓰기 시작했다"면서 "되도록 엷게 레이어를 쌓고 기름을 많이 써서 어느 지점에 이르면 그만두는 식으로 작업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전시장에 걸린 작품들의 제목은 모두 '울트라-마린'이다. 그림에서는 때론 다양한 형태로 일렁이는 바다의 푸른색 윤슬이 느껴진다. '바다 저편에'를 뜻하는 영어 표현 '울트라 마린'과 안료의 이름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작가는 이를 두고 "내 그림의 정체는 울트라 마린 물감이 발라진 것일 뿐 사실 바다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다만 색도 파랗고 제목도 울트라 마린이니까 (관람객들이 그림에서) 바다 물결을 보는 것이죠. 하지만 사실은 그건 제가 만든 속임수(fake), 게임 같은 것이죠. 그림이란 도대체 무엇인지 한번 같이 생각해보자고 유도하는 겁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200호 크기 대형 작품 6점을 비롯해 올해 작업한 신작 20점을 볼 수 있다. 전시는 12월 31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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