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신간] 노벨문학상 이반 부닌의 '샌프란시스코에서 온 신사'
    황재하 기자
    입력 2024.11.14 08:00

슈테판 츠바이크 '어두울 때에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온 신사'
[문학동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 ▲ 샌프란시스코에서 온 신사 = 이반 부닌 지음. 최진희 옮김.

"샌프란시스코에서 온 신사. 나폴리에서도 카프리에서도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는 아내와 딸과 함께 오로지 유흥을 위해 장장 이 년 일정으로 구세계(유럽) 여행을 떠났다."

러시아 소설가 이반 부닌(1870∼1953)의 중단편을 모은 소설집 '샌프란시스코에서 온 신사' 표제작의 첫 문단이다. 작품이 끝날 때까지도 주인공의 이름은 언급되지 않는다.

쉰여덟의 나이로 막대한 부를 쌓은 주인공은 미국에서 사업에만 몰두했던 젊은 날들을 보상받으려 호화로운 여객선에 몸을 싣고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난다.

그가 탄 여객선은 향락과 사치의 집합체나 다름없다. 승객들은 식사 시간 사이사이 제공되는 핫초코와 샌드위치 등을 쉴 새 없이 먹고, 저녁마다 휘황찬란한 연회를 즐긴다.

이처럼 흥청망청한 부자들의 놀음과 대조적으로 수많은 하인이 주방과 식기 세척실, 포도주 저장고에서 고된 노동에 시달린다. 인부들은 배에 동력을 만들어줄 용광로의 지옥 같은 열기를 견디며 석탄을 퍼 넣는다.

주인공은 즐거운 여행을 꿈꾸며 카프리의 호텔에 도착하지만, 저녁 식사를 앞두고 돌연 발작을 일으키더니 세상을 떠난다. 신사의 시신은 그가 살아서 타고 온 여객선에 실려 미국으로 돌아간다.

작가는 부와 향락에 취한 주인공의 허무한 결말을 보여줌으로써 인간의 어리석음을 낱낱이 드러낸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온 신사'는 1933년 러시아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부닌이 1912년부터 1925년까지 집필한 대표적 중단편 여덟 편을 실었다.

스물두 살의 젊은 장교 옐라긴 소위가 연인을 살해한 사건을 둘러싼 법정극 '옐라긴 소위 사건', 늙은 개의 시선으로 바라본 인간 세상의 모습을 그린 '창의 꿈', 여행 도중 우연히 만난 여성과 하룻밤 인연을 맺고 헤어진 남자가 진정한 사랑에 눈뜨는 '일사병' 등이다.

부닌은 인간의 어두운 일면을 포착하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노벨문학상 선정 기관인 스웨덴 한림원은 노벨문학상 시상 당시 부닌을 "전형적인 러시아적 특성을 산문 속에 부활시킨 위대한 예술적 재능을 지닌 작가"라고 평가했다.

문학동네. 364쪽.

'어두울 때에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다산북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어두울 때에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클라우스 그레브너, 폴커 미헬스 엮음. 배명자 옮김.

오스트리아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슈테판 츠바이크(1881∼1942)가 생전 마지막 2년 동안 쓴 짧은 글 아홉 편을 모은 수필집이다.

수록된 글 가운데 일부는 두 차례 세계대전에서 작가가 느낀 무거운 소회를 담았다. 작가는 1938년 나치의 박해를 피해 영국으로 이주한 뒤 1940년 미국, 1942년 브라질로 잇달아 거처를 옮겼다.

작가는 경어체로 작성한 '이 어두운 시절에'에서 나치 독일의 만행을 강하게 비판하며 "우리가 쓰고 생각하는 언어(독일어)와 똑같은 언어로 이 법령들(나치의 법령들)이 작성되었기 때문"에 "부끄러움을 느낀다"고 고백한다.

그러면서도 작가는 암담한 현실 때문에 정신적인 자유가 얼마나 중요하고 신성한 것인지 더 선명하게 드러나게 됐다고 강조한다.

그는 "우리는 밝은 대낮에 별을 보지 못하듯, 삶의 진정한 가치가 살아 있을 때는 그것을 망각하고, 삶이 평온할 때는 삶의 가치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며 "영원한 별들이 얼마나 찬란하게 하늘에 떠 있는지 알려면, 먼저 어두워져야 한다"고 비유한다.

보다 가벼운 분위기 속에 작가의 일상적인 감상을 담은 글들도 있다. '걱정 없이 사는 기술'은 주위 사람에게 늘 호의를 베풀면서 그 대가로 경제적 도움을 살아가는 청년 안톤에 대한 이야기고, '필요한 건 오직 용기뿐!'은 작가가 어린 시절 집안이 몰락한 친구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지 못했던 데 대한 아쉬움을 담은 글이다.

다산북스. 148쪽.

jae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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