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박물관, '한국 최초의 구석기 유적' 석장리 발굴 60주년 전시
발굴 일지·유물 카드 등 한자리에…60년 전 조사 과정 '생생'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 1059에 첫 삽이 표토(表土·유적에 퇴적한 토층의 가장 윗부분)를 헤치면서 발굴이 시작되었다." (김상헌 '발굴일지' 중에서)
1964년 11월 13일 금요일 오전 10시 59분.
충남 공주 석장리 일대에는 설렘과 긴장감이 교차했다. 문화재관리국(국가유산청의 전신)과 문화재위원회의 오랜 논의를 거쳐 역사적인 첫 삽을 뜬 순간이었다.
나흘 뒤인 11월 17일 우리나라의 첫 주먹도끼가 나오자 발굴 현장의 열기는 뜨거워졌다. 우리나라 최초의 구석기 유적에서 찾은 옛사람의 흔적이었다.
한국 고고학의 새 지평을 연 것으로 평가받는 석장리 유적 발굴 조사 60주년을 맞아 여러 기록을 통해 유적의 가치와 의의를 되새기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연세대 박물관에서 최근 개막한 '석장리, 기록을 만들다' 특별전은 1964년부터 1974년까지 10년에 걸친 발굴 조사 과정에서 남긴 기록과 유물 300여 점을 한자리에 모은 전시다.
하일식 연세대 사학과 교수 겸 박물관장은 "구석기 유적을 최초 발굴해 기록 없는 시대의 역사를 만들었다는 뜻과 발굴 과정을 꼼꼼히 기록으로 남겼다는 의미를 함께 담아 전시를 꾸몄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석장리 유적에서 '기록'이 만들어진 전 과정을 짚는다.
석장리 일대는 1962년 당시 방문학자 자격으로 한국에 왔던 앨버트 모어(Albert Mohr)와 샘플(L.L. Sample) 부부가 뗀석기를 처음 발견하면서 주목받았다.
이들 부부는 1964년 연세대 사학과에 재직 중이던 고(故) 손보기 교수에게 연락했고, 석장리 주변에서 또 다른 석기를 찾아냈다. 인류가 돌을 깨뜨려 도구로 사용한 흔적이었다.
3차례에 걸친 발굴 신청 서류와 허가 공문, 당시 석장리 유적 조사를 보도한 신문 기사, 손보기 교수가 모어 교수에게 보낸 편지 등을 전시장에서 만날 수 있다.
60년 전 발굴 현장 모습도 곳곳에서 생생하게 느껴진다.
당시 현장을 기록한 발굴 일지와 유물 카드 등에는 흑요석 좀돌날, 주먹도끼 등을 발굴했던 상황이 빠짐없이 적혀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수많은 '꼬리표'다.
조사단은 작은 조각부터 뛰어난 석기까지 석장리 유적에서 찾은 유물을 현장에서 일일이 보관했는데, 수거한 유물은 비닐봉지에 담아 꼬리표가 붙어 있는 철삿줄로 봉했다.
박물관 관계자는 "각 꼬리표에는 일자, 구역, 좌표, 크기, 무게, 명칭, 지층 등 유물을 출토한 정황에 대한 기초적인 정보가 기록돼 있었다"고 설명했다.
꼬리표 정보를 토대로 유물 카드를 만들고, 석기 도면을 정밀하게 그린 그림을 살펴볼 수 있다.
중요한 유물을 여러 번에 걸쳐 가까이서 촬영하고 기록한 '접사 기록 대장', 1970년 연세대 총장이 방문한 순간을 담은 사진 필름 등도 주목할 만하다.
전시는 석장리 유적에서 이뤄진 다양한 연구 방법의 의미도 짚는다.
조사단은 암석 분류, 토양 분석,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등 여러 분석법을 거쳤는데, 집터에서 발견된 재를 분석한 결과 약 2만8천년 전의 흔적임이 확인되기도 했다.
발굴 현장과 박물관 연구실에서 기록물을 작성하는 모습을 재현한 체험 공간도 마련돼 60년 전 옛사람의 흔적을 남기기 위한 조사단의 노력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하 관장은 "석장리 유적 발굴 조사를 통해 구석기 시대가 존재함을 확인한 점은 식민사학이 폄훼·왜곡한 우리 역사를 온전히 회복하는 것이었다"고 의미를 부연했다.
전시는 내년 3월 31일까지 열린다.
ye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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