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작들처럼 ‘반자본주의’ 메시지
생체 프린팅·눈 덮인 행성 등 매혹
코믹·기괴·강렬… 다채로움 ‘감탄’
부푼 꿈을 안고 친구와 함께 마카롱 가게를 열었지만 청년에게 돌아온 것은 빚뿐이었다. 사채업자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 그는 매일 죽어야 하는 임무에 뛰어든다. 그렇게 소모품으로 쓰이던 그는 사회체제의 모순을 깨닫고 행동에 나선다.
오는 28일 개봉하는 봉준호 감독 신작 ‘미키 17’은 자본주의에 대한 우화이자 밑바닥 청년의 성장기를 SF 형식으로 펼쳐내는 작품이다. 영화는 미국 작가 에드워드 애슈턴의 소설 ‘미키 7’을 원작으로 한다. ‘기생충’(2019)으로 오스카 4관왕을 차지했던 봉 감독의 6년 만의 복귀작이자 8번째 장편이다.
영화는 마카롱 사업 실패로 사채업자에게 시달리던 미키(로버트 패틴슨)와 티모(스티븐 연)가 지구를 떠나 다른 행성으로 가는 원정대에 합류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렸다. 미키가 부여받은 임무는 ‘익스펜더블’이다. 방사성 물질 노출, 바이러스 흡입 같은 위험한 임무에 투입됐다가 죽으면 ‘생체 프린팅’으로 되살아난다. 죽음을 반복하던 중 17번째 미키가 죽지 않은 상태에서 18번째 미키가 복제된다.
1억 2000만 달러(약 1729억원)에 달하는 할리우드 자본이 들어간 만큼 봉 감독이 그려낸 미래의 모습을 보는 재미가 제법이다. 영화의 뼈대가 되는 생체 프린팅 기술을 비롯해 우주선 내외부, 눈 덮인 행성, 독특한 외형의 외계 괴물 등 눈길을 사로잡는 장면이 이어진다.
그러나 여느 SF와 달리 화려함보다는 ‘짠함’이 강하게 다가온다. 봉 감독이 “발 냄새가 나는 SF 영화”라고 밝혔듯 ‘설국열차’(2013)나 ‘기생충’처럼 밑바닥 인생의 향취로 가득하다. 전작들에서 보여 준 ‘반자본주의’ 메시지가 영화에 그대로 밀착돼 있다.
봉 감독은 최근 ‘미키 17’이 최초 공개된 베를린 영화제의 기자회견에서 “이야기가 우주를 배경으로 전개되지만, 현실 속 인간 군상을 그리고 싶었다. 우주선이나 광선검 같은 것보다는 오히려 구멍 난 양말을 신은 캐릭터들의 향연이 되길 바랐다”면서 “판타지 같지만 우리 얘기라는 게 SF 영화를 만드는 매력이자 이유”라고 소개했다.
우주 식민지 개척에 투입된 미키는 인간임에도 결국 소모품이다. ‘인류는 평등하다’고 외치지만 지금 우리 사회에 엄연히 계급이 있다는 사실을 영화는 비꼰다. 영화에서 이를 대변하는 인물이 정치인 마셜(마크 러팔로)이다. “익스펜더블은 괜찮지만, 멀티플(둘 이상)은 자연의 섭리를 위반하기 때문에 안 된다”는 모순된 이야기를 서슴없이 외치는 모습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풍자하는 듯하다. 지구에서 탈출해 외계를 정복하자는 주장 또한 화성 이주를 꿈꾸는 일론 머스크를 떠올리게 한다.
16차례나 죽음을 겪었지만 여전히 죽음이 두려운 미키는 우주선에서 여자친구 나샤(나오미 애키)를 만나 성장하고, ‘체제 전복’이라는 희망의 한 발을 내디딘다. SF로 책장을 펼친 뒤 시간 가는 줄 모른 채 넋 놓고 따라가다가 ‘반자본주의 우화’로 책장을 덮게 된다. 코믹하고, 기괴하며, 화려하면서도 짠하고, 강렬하다. ‘역시 봉 감독’이라는 감탄사가 나올 법하다. 137분. 15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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