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0
5
0
문화
조선 후기 한중일 지식의 생산·축적 도구는 사신들의 기행문이었다
    유용하 전문기자
    입력 2025.02.19 00:20
    0

정훈식 울산대 인문과학연구소 연구교수가 쓴 ‘17~19세기 사행록의 지식 생산과 사상 전환’(왼쪽). 조선 후기 실학자 담헌 홍대용이 1765~1766년(영조 41~42년) 청나라에 다녀오면서 견문한 내용을 기록한 한글 기행문인 ‘을병연행록’(가운데). 단원 김홍도가 그린 ‘연행도’(燕行圖)의 일부(오른쪽). 연행도는 조선 사신단의 중국 사행길 풍경을 파노라마처럼 그린 것이다.산지니·한국학중앙연구원·서울신문 DB
정훈식 울산대 인문과학연구소 연구교수가 쓴 ‘17~19세기 사행록의 지식 생산과 사상 전환’(왼쪽). 조선 후기 실학자 담헌 홍대용이 1765~1766년(영조 41~42년) 청나라에 다녀오면서 견문한 내용을 기록한 한글 기행문인 ‘을병연행록’(가운데). 단원 김홍도가 그린 ‘연행도’(燕行圖)의 일부(오른쪽). 연행도는 조선 사신단의 중국 사행길 풍경을 파노라마처럼 그린 것이다.산지니·한국학중앙연구원·서울신문 DB

조선시대 한중일 관계사를 연구하기 위한 제1차 사료로 주목받는 것이 바로 통신사 일행의 ‘사행록’이다. 사행록은 중국이나 일본을 방문한 조선 통신사들이 쓴 일종의 기행문학이다. 조선 500년 동안 쌓인 수많은 사행록엔 동아시아의 역동적 모습과 찬란한 문화 교류 현장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기 때문에 당대 식자들은 물론 현대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관심을 끈다.

그런데 정훈식 울산대 인문과학연구소 연구교수는 사행록을 정보와 지식이 생산되고 축적되는 도구로 바라봤다. 학술서 ‘17~19세기 사행록의 지식 생산과 사상 전환’(산지니)은 조선 후기 사신들의 중국, 일본 방문을 기록한 사행록에서 지식이 생산되고 유통되는 경로를 꼼꼼히 살핀다.

두 차례 왜란과 사대의 대상이었던 명 왕조 붕괴, 두 차례의 호란을 겪은 17~19세기 조선은 외국과의 접촉이 사행을 통해서만 제한적으로 허용됐을 정도로 폐쇄적이었다. 사행록에는 유교 문헌에서 확인할 수 없는 정보와 지식을 정리하고 축적해 새롭게 만든 지식이 담겼다.

조선 후기 대표적 실학자인 담헌 홍대용이 1765~1766년 베이징을 다녀와 쓴 ‘을병연행록’은 상쾌하다, 하릴없다, 통분하다, 부끄럽다 등 감정 표출이 하나의 특징이라고 할 정도로 다른 사행록들보다 풍부하다. 특히 부끄럽다는 표현이 많이 등장한다. 담헌이 마주쳐야 했던 부끄러움의 진원지는 다름 아닌 오랑캐라고 멸시하던 청나라의 번화함과 그에 맞춰 작동하는 예라는 시스템, 이에 대비되는 조선의 낙후한 실상, 간사함, 편협함에 있었다.

정 교수는 “담헌은 연행을 통해 조선이 얼마나 초라하고 보잘것없는지 그리고 중국을 무시하는 것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일인지를 깨달았다”며 “조선의 진정한 부끄러움을 자각하는 과정에서 북학이 출발하게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실 왕명을 수행하고 외교적 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공무 여행이었던 연행은 규율에 따라 수행됐기에 여행 중 생기는 갖가지 감정을 직접적으로 자유롭게 발산할 여지는 많지 않았다. 그래서 대부분의 연행록은 건조한 문장으로 이뤄져 있다. 그런데도 ‘을병연행록’이나 박지원의 ‘열하일기’ 등에는 감각과 감정이 많이 드러나 있는데 이것은 조선 후기 지식 형성과 밀접한 연관이 있고 조선 후기 사상 전환의 바탕이 됐다고 정 교수는 설명했다.

오래된 문헌인 사행록을 읽어야 할 또 하나의 이유는 당시 예물을 주고받은 ‘예물수증’ 과정의 갈등, 독도와 대마도 영토 분쟁 등 동아시아의 역사적 관계와 문화 교류의 흐름을 입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정 교수는 “과거를 통해 현재의 교훈을 얻는 것처럼 사행록을 통해 현대 외교적 소통 방식과 문화적 다양성을 이해할 수 있는 통찰력을 제공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지식
    #중국
    #축적
    #후기
    #기행문
    #조선
    #생산
    #사신
    #교수
    #도구
포인트 뉴스 모아보기
트렌드 뉴스 모아보기
이 기사, 어떠셨나요?
  • 기뻐요
  • 기뻐요
  • 0
  • 응원해요
  • 응원해요
  • 0
  • 실망이에요
  • 실망이에요
  • 0
  • 슬퍼요
  • 슬퍼요
  • 0
댓글
정보작성하신 댓글이 타인의 명예훼손, 모욕, 성희롱, 허위사실 유포 등에 해당할 경우 법적 책임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최신순
    추천순
    답글순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문화 주요뉴스
  • 1
  • ‘현대사의 강렬한 순간을 포착하다’…퓰리처상 사진전 슈팅 더 퓰리처
    서울신문
    0
  • ‘현대사의 강렬한 순간을 포착하다’…퓰리처상 사진전 슈팅 더 퓰리처
  • 2
  • 대상포진 증상, 감기와 비슷해…신속한 대처 필요
    스타데일리뉴스
    0
  • 대상포진 증상, 감기와 비슷해…신속한 대처 필요
  • 3
  • ‘정 주고 내가 우네’…60년대 그룹사운드 보컬 ‘히파이브’ 한웅 별세
    서울신문
    0
  • ‘정 주고 내가 우네’…60년대 그룹사운드 보컬 ‘히파이브’ 한웅 별세
  • 4
  • 라멘창업 전문 브랜드, 핵밥 부산 BEXCO 프랜차이즈 창업박람회 방문 상담 활기
    스타데일리뉴스
    0
  • 라멘창업 전문 브랜드, 핵밥 부산 BEXCO 프랜차이즈 창업박람회 방문 상담 활기
  • 5
  • 제3회 이영만연극상에 연극 ‘유원’의 강윤민지 선정
    서울신문
    0
  • 제3회 이영만연극상에 연극 ‘유원’의 강윤민지 선정
  • 6
  • 점점 희미해져도… 끝끝내 붙잡아야 할 기억
    서울신문
    0
  • 점점 희미해져도… 끝끝내 붙잡아야 할 기억
  • 7
  • 만민중앙교회 미용인 선교회, 만민복지타운 어르신들을 위한 미용 봉사 진행
    스타데일리뉴스
    0
  • 만민중앙교회 미용인 선교회, 만민복지타운 어르신들을 위한 미용 봉사 진행
  • 8
  • 악한 전쟁 뒤엔 더 사악한 인간의 권력
    서울신문
    0
  • 악한 전쟁 뒤엔 더 사악한 인간의 권력
  • 9
  • 김준호·김지민, 이번엔 진짜…‘7월 결혼’ 공식 발표
    서울신문
    0
  • 김준호·김지민, 이번엔 진짜…‘7월 결혼’ 공식 발표
  • 10
  • [책꽂이]
    서울신문
    0
  • [책꽂이]
트렌드 뉴스
    최신뉴스
    인기뉴스
닫기
  • 뉴스
  • 투표
  • 게임
  • 이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