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몸의 근육이 퇴행해 결국 사망에 이르는 희소 질환인 듀센 근이영양증(DMD) 환자의 놀라운 사연이 전해졌다. 그의 이름은 매츠 스틴으로, 2014년 사망한 노르웨이의 장애인 청년이었다.
DMD 때문에 휠체어, 산소 호흡기 등에 의지한 채 독방에서 쓸쓸히 죽어간 청년이었지만, 부모는 스틴의 유품을 정리하던 중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스틴은 온라인 게임에서 '탐정'으로 일하며 유명 인사로 활약했던 것이다. 그의 일화는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져 넷플릭스에 방영될 만큼 화제를 끌고 있다.
평생 집 밖으로 못 나간 아들…게임 통해 이중 인생 살았다
BBC는 지난 26일(현지시간) 스틴의 삶을 조명했다. 스틴은 2014년 25세라는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 그는 DMD라는 희소 유전 질환을 앓는 환자였는데, 말기에는 팔·다리는 물론 호흡에 필요한 근육까지 퇴행해 기계의 도움으로 숨을 쉬어야만 했다.
그의 부모인 로버트, 트루드씨는 아들이 평생 친구도 제대로 사귀지 못하고, 사회에 공헌할 기회도 없이 허망하게 떠난 게 가장 큰 아쉬움으로 남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평소 즐겨 쓰던 온라인 블로그에 부고를 전하면서 그들은 그동안 미처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됐다. 스틴은 한 온라인 게임의 유명 인사였으며, 그곳에서 이미 수많은 사람의 인생을 바꿔놨다는 것이다.
탐정으로 일하며 주변 인물 도움 줘
스틴이 즐겨 플레이한 게임은 미국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가 개발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W)다. 2002년 출시 이후 현재까지 다중접속(MMO) 온라인 게임 1위를 차지한 인기 게임이다. 이 게임 속 세상에서 스틴은 '이벨린 레드무어'라는 캐릭터로 제2의 삶을 살았다. 이벨린은 현실의 스틴과 달리 외향적이고 활동적인 인물이었으며, 탐정으로 일하며 주변 사람의 고충을 들어줬다고 한다.
수많은 사람이 이벨린의 도움을 받았다. 심리적 부담감 때문에 등교를 거부하는 아들은 이벨린 덕분에 어머니와 재결합할 수 있었다. 사춘기 이후 우울증을 앓던 여성도 이벨린의 응원을 받고 세상으로 나아갔다. 스틴의 부고가 전해진 뒤, 노르웨이는 물론 인근 국가인 스웨덴·덴마크·영국 등 수많은 나라에서 이메일로 추모 소식이 날아왔다고 한다.
"게임 둘러싼 우리 세대 이야기 전해"스틴의 은밀한 '이중생활'은 노르웨이 다큐멘터리 감독 벤자민 리의 이목을 끌었다. 35세의 젊은 감독인 리는 스틴의 삶에 큰 영감을 받았으며, 그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만드는 작업에 착수했다. 해당 다큐멘터리는 지난 25일 OTT 플랫폼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게 송출되고 있다.
리 감독은 "스틴의 이야기는 우리 시대에 몇 가지 질문을 던진다"라며 "만난 적 없는 사람과 친구가 되고, 사랑이나 우정을 경험하는 게 가능할까. 저는 스틴의 삶이 세대 간 차이, 특히 게임을 둘러싼 우리 세대의 이야기를 전한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저도 30대이기 때문에 (게임 같은) 가상세계에 친숙"하다며 "매츠 스틴은 정말로 이 게임 안에서 성장했다"라고 강조했다.
게이머들 사이의 작은 전통 만들기도
게임 안에서 이벨린과 친하게 지냈던 사람들은 실제 스틴의 장례식에 참석했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스틴이 참여했던 게임 내 길드(커뮤니티)는 지금도 매년 스틴의 기일에 함께 모여 추모식을 연다고 한다. 이 추모식은 이제 길드의 연례 행사이자 전통으로 거듭났다.
리 감독은 BBC에 "이 모임이야말로 디지털 세상 속에도 진정한 우정이 존재한다는 증거"라며 "게이머들이 함께 보내는 시간은 현실에서 친구들끼리 보내는 시간보다 훨씬 더 많다"고 설명했다.
스틴의 삶을 다룬 리 감독의 다큐멘터리 '이벨린의 비범한 인생'은 미국의 세계적인 영화제 '선댄스 영화제'에서 감독상, 관객상을 수상했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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