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 가야 문화권 유적에서 처음으로 토성 내외부를 연결하는 배수 체계가 확인됐다. 국립가야문화유산연구소는 함안 가야리 유적 발굴조사에서 이 같은 사실을 밝혀냈다고 11일 전했다.
함안 가야리 유적은 아라가야 왕성으로 추정된다. '함주지(咸州誌·1587)',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1656)' 등 조선 시대 문헌자료에 옛 나라 터로 기록돼 있다. 역사적 가치와 중요성을 인정받아 2019년 국가지정문화유산 사적으로 지정됐다.
연구소는 지난해부터 북서편 곡간지에서 발굴조사를 진행했다. 곡간지는 좁게 움푹 패어 들어간 지형으로, 주변의 물이 모여 자연 배수되는 곳이다.
가야인들은 곡간지 좁은 입구 부분을 막아 성벽을 쌓았다. 판축 기법으로 중심 토루를 쌓고, 기저부(바닥 부분)에 부엽공법을 적용해 성 내부 지형을 평탄하게 만들었다.
토루는 흙으로 쌓아 둔덕지게 만든 방어용 시설이다. 판축은 나무 기둥을 세우고 기둥과 기둥 사이에 판재를 이어 붙여 네모꼴 구조 틀을 만든 뒤 흙을 켜켜이 다지는 고대 토목 기술이다. 제방이나 성벽을 쌓을 때 사용한다. 부엽공법은 저습한 곳이나 연약지반에서 제방, 성벽, 대지 성토 등 토목공사를 할 때 쓰인 토목 기술이다. 배수, 필터, 토사 유실 방지 등을 위해 초본류, 나뭇가지 등 유기물을 기저부에 깔아 지반을 강화한다.
가야인들은 판축 토루 내외부에 경사지게 흙을 켜켜이 다져 쌓은 내벽과 외벽을 조성해 성벽을 보강했다. 판축 토루 너비는 5.5m, 내·외벽 기저부 너비는 각각 12m, 판축 토루와 내·외벽을 포함한 기저부 너비는 29.5m로 각각 확인됐다.
연구소 관계자는 "내부 배수 문제와 습하고 연약한 지형 특성을 고려해 성벽과 배수 체계를 조성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지 성토층 내에서 짧은 목 항아리(단경호)와 솥 모양 토기(부형토기)가 발견됐다"며 "대지 조성 과정에서 일련의 제사 의례 행위가 있었다고 짐작된다"고 덧붙였다.
연구소는 성 내부 곡간지로 모이는 물을 밖으로 배수하기 위한 배수시설이 성벽을 통과해 밖으로 이어진 양상도 확인했다. 배수시설 크기는 너비 1.0~3.5m, 잔존 길이 16.5m다. 성벽을 통과하는 부분은 뚜껑 돌을 덮을 수 있게 암거(暗渠·땅속에 매설한 수로) 너비를 1m 내외로 좁게 만들었다.
성벽 밖으로 이어지는 부분은 너비가 최대 3.5m까지 벌어지는 나팔 모양이다. 뚜껑 돌이 없는 개거(開渠·위를 덮지 않고 터놓은 수로)로 파악된다. 연구소 관계자는 "물이 흐르는 속도를 늦추기 위해 수로가 나팔 모양으로 벌어진 것"이라며 "가야 지역에서 처음 발견된 사례"라고 부연했다.
연구소는 13일 현장 설명회를 열고 발굴 성과를 일반에 공개한다. 20일 함안박물관에서 최신 조사·연구 성과를 지역 주민들에게 설명하는 학술토론회도 진행한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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