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 '오징어 게임' 시즌 2가 다음 달 26일 공개된다. 관련 정보는 지난 11일부터 언론을 통해 보도됐다. 황동혁 감독 인터뷰, 세트장 구성 등이다. 하나같이 취재는 근래 진행되지 않았다. 심지어 세트장은 지난해 12월 7일 언론에 공개했다. 인터뷰 시기는 지난 8월 1일이었다. 모든 보도를 통제했다.
전자의 경우 기사로 나오기까지 무려 11개월이 걸렸다. 엠바고(보도 유예)가 걸려서다. 넷플릭스에서 사전에 비밀 유지를 강력히 요구했다. 세트장에서 보고 들은 내용을 발설하지 않겠다는 서약서까지 받았다. 거부하면 입장을 불허. 휴대전화 카메라에 촬영 방지용 스티커를 붙이고, 세트장 위치도 알려주지 않았다. 서울 광화문에서 대형버스를 타고 간 기자들만 입장할 수 있었다.
세트장인 대전광역시 유성구의 스튜디오 큐브는 '오징어 게임' 촬영이 없어도 경비가 삼엄했다. 지난 4월 방문했을 때 입구 주변을 둘러보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스튜디오 큐브를 운영하는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조현래 당시 원장조차 들어가지 못했다. 보안 관계자는 "제작진이 야외 촬영을 위해 창원으로 내려간 상황"이라며 "세트장이 조금이라도 공개되면 안 된다는 특명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제작 과정 일체가 비공개로 진행된 건 '오징어 게임' 시즌 1이 세계적으로 큰 성공을 거둬서다. 넷플릭스에서 역대 가장 많이 시청된 콘텐츠다. 9억 달러(1조2669억 원) 이상의 경제효과를 창출했다고 추정된다. 그만큼 후속편에도 관심이 높아져 사전 유출을 철저하게 차단했다. 특히 세트는 황동혁 감독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가늠할 수 있을 만큼 상징성이 큰 장소다. 황 감독은 지난해 12월 세트장 공개 당시 "시즌 2에서 전달하려는 이야기를 세트 비주얼로 표현했다"고 말했다.
새로운 세트장의 가장 큰 특징은 참가자 숙소 바닥에 큼지막하게 그려진 O와 X 표시다. 채경선 미술감독은 "'너와 나는 다르다', '내가 맞고 네가 틀리다'와 같은 대립의 시작"이라고 설명했다. 황동혁 감독도 지난 8월 인터뷰에서 "O와 X로 나뉜 집단들이 어떻게 갈라지고, 어떻게 서로를 증오하고, 대립하고, 갈등하는지를 묘사했다"고 말했다.
"서로를 반대로 규정하고, 반대자로 낙인을 찍고, 끝없는 혐오를 표현하는 행위가 인터넷 공간을 넘어 일상으로 확장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O 또는 X로 서로의 가슴에 라벨을 붙이고, 좌표를 찍고, 서로를 적대시하는 모습을 그렸다. 이 작은 사회, 이 작은 게임장 안의 사람들을 통해 전체 사회의 모습이 ‘지금 이렇지 않은가’라는, ‘우리가 이런 모습으로 살고 있지 않은가’라는 이야기를 마치 남의 이야기인 것처럼 꾸며 보여드리고 싶었다."
넷플릭스는 이를 본편 공개 한두 달 전에 보여줄 수 없었다. 세트를 6월 초까지만 빌려서다. 침대 숙소, 미로 계단과 같은 세트를 해체해 다른 촬영도 진행해야 했다. 관계자는 "세트를 디자인한 채경선 감독이 에미상을 수상하는 등 세트장 자체에 대한 관심이 컸기에 엠바고 기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출연 배우들도 사진 촬영은 물론 내용을 발설해선 안 된다는 서약서에 사인해야 세트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고 전했다. 주연이 아닌 배우들은 전체 대본을 받지도 못했다. 자기가 연기해야 하는 장면 내용을 미리 암기하고 연기해야 했다. 만약 대사가 생각이 안 난다면 대본을 꺼내 보는 것이 아니라 관계자들에게 '내 대사가 뭐냐'고 물어봐야 했다. 미국 할리우드에서 블록버스터, 대작을 만들 때는 내용 사전 유출을 막기 위해 비슷한 방법을 쓴다는 후문이다.
제작자인 김지연 싸이런픽쳐스 대표는 "그마저도 유출 방지를 위해 독특한 방식으로 전달했다"고 밝혔다. "무슨 게임이 나오는지, 어떤 게임이 진행되는지 등 모든 내용이 관심사라서 워터마크 등 기존 방식으로 대본을 전달할 수 없었다"며 '프린트를 할 수 없고 메일로 보낼 수도 없는 프로그램을 이용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다 보니 촬영장에서는 이따금 촌극이 벌어졌다. 대사를 숙지하지 못한 배우들이 대본을 확인할 수 없어 애를 태웠다. 김 대표는 "불평을 많이 들었지만 욕을 먹더라도 감수해야 했다"고 했다. 배우 대다수는 극 중 누가 죽고 누가 사는지 알지도 못했다. 그래서 제작진 몰래 배역의 생사를 교류하곤 했다. 김 대표는 "'나는 죽는데, 너도 죽어?'라는 말을 몇 번 엿들은 적이 있다. 다들 눈치를 보고 연기한 것 같다"며 미안하다는 말을 전해달라고 했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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