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 "험난한 도전과 혼란의 시기를 벗어나 유리한 성장 위치를 점했다. 미래가 낙관적이다." 밥 아이거 디즈니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15일 4분기(회계연도 기준, 7∼9월) 실적 보고서를 공개하며 한 말이다. 기나긴 암흑기의 종식을 선언했다.
디즈니는 지난 3년간 심각한 침체에 허덕였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사업의 두 축인 엔터테인먼트와 이를 활용한 경험(소비재·테마파크) 부문이 직격탄을 맞았다. 후발주자로 뛰어든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도 적자 폭만 늘리며 대안이 되지 못했다.
디즈니는 이 시기에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PC(Political Correctness)주의'에 휘말려 대외적 입지가 크게 흔들렸다. PC주의는 용어 등 사용에 있어 인종·종교·성 차별 등 편견이 포함되지 않도록 하자는 운동이다. 디즈니는 무리하게 '흑인 인어공주'·'라틴계 백설공주' 등을 내세워 팬들로부터 지탄받았다. 밥 체이펙 전 CEO가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주지사와 동성애 교육 금지를 두고 충돌하는 일도 있었다.
디즈니는 아이거 전 CEO를 데려와 재건을 맡겼다. 디즈니를 지금의 콘텐츠 제국으로 이끈 장본인이다. 2005년부터 약 15년 동안 CEO를 지내며 2006년 픽사 스튜디오, 2009년 마블스튜디오, 2012년 루카스필름, 2019년 20세기폭스를 인수했다. 재직 기간 주가 상승률이 400%에 달할 만큼 황금기를 주도했다.
퇴임 2년도 되지 않아 복귀한 그는 수익성 개선에 방점을 찍었다. 실적이 부진한 임직원들을 해임하고, 세 차례 대규모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마블 스튜디오 등의 속편 제작 편수도 줄였다. 한동안 많은 콘텐츠를 쏟아내느라 작품의 질이 떨어졌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아이거 CEO는 OTT 사업에도 변화를 꾀했다. 디즈니의 또 다른 OTT 훌루를 디즈니+에 통합시키고, 스포츠 중계권을 사들여 고정 시청층을 확보했다. PC주의와도 결별을 선언했다. "창작자들이 자신들의 1순위 목표가 무엇인지 잊은 것 같다"면서 "우리는 메시지보다 즐거움을 전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판이해진 시스템에 사업은 정상궤도를 거의 되찾았다. 디즈니는 4분기에 매출 225억7400만 달러(약 31조6826억 원), 조정 주당순이익(EPS) 1.14달러(약 1600원)를 기록했다. 금융정보업체 LSEG가 집계한 월가 애널리스트들의 평균 예상치(매출 224억5000만 달러, EPS 1.10달러)를 뛰어넘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매출은 6%, EPS는 39% 올랐다.
지난해 10월 약 10년 만의 최저 수준(79달러대)으로 내려갔던 주가도 덩달아 뛰었다. 4분기 실적 발표 당일에 전날보다 7.35% 오른 110.27달러에 거래됐다.
주요 사업 부문에서 흑자를 내 이룬 성과다. 특히 엔터테인먼트 매출은 14% 증가했다. 픽사 스튜디오의 '인사이드 아웃 2'와 마블 스튜디오의 '데드풀과 울버린'이 올해 세계 박스오피스에서 나란히 1위(약 6억5000만 달러)와 2위(약 6억3000만 달러)를 차지한 덕이다. 콘텐츠 판매·라이선싱 부문에서 영업이익 3억1600만 달러를 기록했다.
디즈니+, ESPN+ 등 스트리밍 사업도 영업이익 3억2100만 달러(약 4506억 원)로 반등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의 3억8700만 달러 손실과 비교하면 실적이 크게 개선됐다.
디즈니는 "내년 회계연도에 한 자릿수 후반대의 조정 EPS 성장률을 달성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불가능한 목표가 아니다. 20일(현지시간) 싱가포르 마리나베이 샌즈에서 열린 ‘디즈니 콘텐츠 쇼케이스 2024’에서 검증된 지식재산권(IP)을 활용한 신작들을 대거 예고했다.
내년 12월 19일 개봉이 확정된 '아바타 3: 불과 재'를 비롯해 '주토피아 2', '판타스틱 4' 후속작, '데어데블' OTT판, '트론: 아레스' 등이다. 내후년에는 스타워즈 시리즈 신작 '만달로리안 & 그로구'와 '토이 스토리 5', '모아나' 실사영화, 2027년에는 '겨울왕국 3'을 선보인다.
아이거 CEO는 올해 사업 계획을 공식화하며 "극장에서 전 세계 관객에게 다가갈 뿐만 아니라, 글로벌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중요한 닻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구독과 참여를 유도하고 테마파크 등 체험 사업 성장을 촉진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싱가포르=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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