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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훈의 구원 여정…당파적 충돌에 흔들리는 믿음[돌아온 오겜①]
    입력 2024.12.26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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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시아경제 ] '오징어 게임'이 시즌 2로 돌아왔다. 성기훈(이정재)이 위험한 게임에 다시 참여하면서 벌어지는 내용이다. 게임을 멈추고 싶어 하는 그를 두고 많은 시청자는 고개를 갸우뚱한다. 우승으로 얻은 456억 원으로 새로운 삶을 출발하면 그만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성기훈은 평범하게 살 수 없다. 죄책감과 외로움, 공허함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구원이 필요하다.

구원의 여정

성기훈은 심각한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차라리 지옥에 있는 게 낫겠다 싶은 경험이 낳은 후유증이다. 내면이 황폐해져 일상적 삶을 꾸리기조차 힘들어한다. 생존자 증후군이다. 다른 이들이 희생되는 상황에서 홀로 생존하거나, 곤경에서 빠져나오면 육체적 상처 이상의 정신적 혼란이 찾아온다. 머릿속에선 같은 질문이 맴돈다. '왜 나만 살아남았을까?' '내가 그럴 만한 자격이 있을까?' '이제 뭘 해야 할까?'

돈으로는 치유할 수 없다. 그는 삶의 우선순위를 바꾸고 자신을 성찰하며 삶의 방향을 재설정한다. 자기가 겪은 불행을 다른 이들이 겪지 않도록 보호해 구원받으려고 한다. 불필요한 족쇄를 풀고 속박돼 있던 감옥에서 해방되고자 한다.

대척점에는 프런트맨(이병헌)이 있다. 성기훈에게 "아직도 모르겠나? 세상이 바뀌지 않는 한 게임은 끝나지 않아"라고 한다. 그도 게임 우승자였다.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비참한 광경을 수없이 목도했다. 그러나 바깥세상에서 당한 불공정보단 낫다고 생각한다. 설계자인 오일남(오영수)의 정서에 깊게 동화돼 있다. 곤경에서 빠져나올 기회를 주고, 참가자들 사이에서 생존해야 한다는 강렬한 감정을 선사했으며, 무자비한 바깥세상으로부터 도망칠 구멍을 제공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프런트맨 말대로 인간의 탐욕이 사라지지 않는 한 게임은 계속된다. 하지만 설득과 회유는 공허하다. 그가 주도하는 게임 세계에도 바깥세상처럼 사기꾼, 폭력배, 이기주의자들이 판친다. 어쩌면 가장 운이 좋거나 가장 비인간적인, 아니면 가장 속임수를 많이 쓰는 한 사람이 막대한 상금을 받을 수 있다. 프란츠 카프카와 쇠렌 키르케고르가 말했듯 세상은 불공평하고 불합리하다.

당파적 정체성

오징어 게임 공동 숙소에는 새로운 장치가 추가됐다. 바닥을 비추는 파란색 'O'와 붉은색 'X' 모양의 조명이다. 중앙에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버튼도 있다. 게임이 끝날 때마다 참가자들은 그만둘 수 있는 투표에 참여한다. 무엇을 선택하는지에 따라 무리가 나뉘고 편 가르기가 심화한다. 더 많은 상금을 원하는 이들과 목숨을 잃고 싶지 않은 이들 간 대립이다.

첫 번째 게임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에서 아흔한 명이 사망한다. 총상금은 91억 원, 한 사람당 2493만 원이다. 두 번째 게임 '5인 6각'에선 110명이 탈락한다. 총상금은 201억 원, 한 사람당 7882만 원이다. 'O'를 고수하는 참가자는 아쉬워한다. "아, 진짜 많이 살았어. XX!" 그는 'O' 조직의 행동 대장 격이 된다. 'X' 쪽 참가자들을 죽이자고 제안한다.

패트릭 밀러와 패멀라 존스턴 코노버는 2015년 논문 '마음의 빨간 상태와 파란 상태'를 발표했다. 미국 공화당원과 민주당원들의 행동을 두 단계로 나눠 시험한 결과였다. 이에 따르면 당원들에게는 정책과 사상, 이념 같은 고매한 요소들보다 더 압도적인 동인이 있었다. 당파적 정체성이었다.

"선거는 정당 일체감을 가지는 사람들의 팀 정신을 두드러지게 하여 그들에게 반복적으로 민주당과 공화당을 '우리와 그들'로 비교하게 한다. 이것은 선거에서 패배하면 잃은 것에 주목하게 한다. 결국 경쟁과 분노 모두를 낳는다."

근래 한국에서 중요한 질문 가운데 하나도 '우리의 집단 정체성이 얼마나 강한가'이다. 갖가지 분야에서 우리가 얼마나 한 팀에 속해 있다고 느끼는지, 경쟁 팀과 얼마나 다르다고 느끼는지를 중요시한다. 이는 서로를 참아내지 못하는 편협함을 정치적 의견 불일치를 뛰어넘는 수준으로 부추겨 다양한 문제를 일으킨다. 12·3 비상계엄 사태로 위기에 빠진 형국도 같은 맥락이다.

놀이의 희망

아이들은 게임을 하면서 사회적으로 승인된 형태의 협동과 경쟁을 배운다. 유난히 경쟁적인 아이도 있고, 남보다 더 협동적인 아이도 있다. 사회적 기술 두 가지를 상황의 본질에 맞게 적용하는 법은 스스로 체득해야 한다. 어른들이 조직하고 관장해도 자기들만의 규칙과 사회적 위계질서를 갖출 능력이 있다.

'오징어 게임' 참가자들도 다르지 않다. 고도로 조직된 게임이 제한하는 현실 속에서도 자신들만의 규칙을 만들고 깨는 방법을 알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는 456억 원이라는 상금에 눈이 멀어 망각한다. 오히려 불 속으로 뛰어드는 나방처럼 매번 상황을 걷잡을 수 없는 지경으로 몰고 간다.

성기훈은 협동과 경쟁 사이의 딜레마를 해결하려고 부단히 애쓴다. 그는 게임에 특정 조건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를 규정하는 규칙이 존재한다는 점을 간파한다. 모든 사회적 제도가 그렇듯이 게임 역시 그 안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있을 때까지만 존재한다. 참가자들이 게임을 하면서 만족스러움을 느끼지 못한다면 더는 진행될 수 없다. 그러나 절박한 설득과 호소는 무용지물이 된다. 주최 측이 매번 참가자들의 요구와 욕망을 사회적으로 동의한 규칙과 의식에 절묘하게 종속시킨다.

체계를 전복시키려는 시도마저 무산되는 상황에서 남은 방법은 딱 한 가지다. 자신과 경쟁하고 다른 사람과 협동해야 한다는 설파다. 황동혁 감독은 이를 독립을 향한 인간의 욕망으로 표현하며 시즌 3을 예고한다. 아무리 자발성과 창조성을 강제해도 스스로 규칙을 만들고 깨는 법을 찾아내고, 또 어디서든 성장할 공간을 찾아내고야 마는 '사람'을 가리킨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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