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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자 간 대립…언제부터 방향은 엇갈렸나[오겜 톺아보기①]
    입력 2025.01.11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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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시아경제 ]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시즌 1 초반에 성기훈(이정재)은 노모에게서 훔친 돈을 도박으로 탕진한다. 딸에게 제대로 된 아버지 노릇도 하지 못한다. 한심해 보이던 그는 사실 자동차 회사에서 16년간 일한 성실한 노동자였다. 사측의 구조 조정에 맞서 파업에 참여하고 시위하다 해고됐다. 인생이 꼬인 원인은 그의 잘못이 아니었다. 자기 힘으로 어쩌지 못하는 사회의 불공정함에 있었다.

성기훈은 잘못을 저지르지도, 사기를 치지도 않았으나 사회로부터 처참하게 내쳐졌다. 그는 오징어 게임에서 비슷한 일을 목도한다. 참가자들이 무력감을 느끼며 목숨을 잃는다. 연명하려면 다른 참가자를 밟고 넘어서야 한다. 때로는 직접적 고통도 가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느꼈을 인지부조화는 그야말로 최악의 시련이다.

인지부조화는 외부 또는 내부 요인을 통해 해소할 수 있다. 전자는 새로운 사실이 밝혀져야 가능하다. 대표적 예가 성기훈이다. 오일남의 죽음이 자기 탓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은둔 생활을 마감한다. 갖가지 문제의 근원이 게임 운영진에 있다는 사실을 인지해 다시 불구덩이로 뛰어든다.

시즌 2는 그 원대한 계획이 무너지는 과정에 주안점을 둔다. 성기훈은 다시 찾은 게임 세계에서 두려움에 굴복하지 않는다. 자기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에서도 시민의식을 발휘한다. 참가자들에게 살아남는 비법을 알려주고, 게임을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참가자의 절반가량은 그를 믿고 따른다.

남다른 용기는 집단행동으로 확산하기 마련이다. 타이태닉호가 침몰했을 때 승객들은 몇 대 없는 작은 구명보트에 올라타려고 소란을 일으키지 않았다. 아이, 여성 등 먼저 구조돼야 할 사람들을 침착하게 결정했고, 끝까지 품위를 잃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일부는 기꺼이 자신을 희생했다.

2011년 9월 11일 뉴욕 세계무역센터에서 테러가 일어났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은 다급하게 대피하면서도 서로를 떠밀지 않았다. 계단으로 쏟아져 나오지 않고 대피 매뉴얼에 따라 침착하게 계단을 내려왔다.

오징어 게임 세계에서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절반 이상이 "한 판 더!"를 외치며 품격을 스스로 떨어뜨린다. 유혈 사태도 일으킨다. 소등된 숙소에서 내재한 긴장을 야만적으로 폭발시킨다. 온갖 수단을 동원해 서로를 닥치는 대로 공격한다. 프런트맨(이병헌)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섬광을 번쩍거려 공포를 부추긴다. 참가자들을 전적으로 불신한다.

19세기 서양 사회도 군중을 언제든 극단적으로 폭발할 수 있는 존재로 여겼다. 당시 지식인들이 보기에 군중은 천민 패거리였다. 프랑스의 심리학자 장프랑수아 마르미옹은 저서 '오징어 게임 심리학'에 이같이 설명했다.

"천민은 노동력이나 병사로 쓰기 위해 길들여야 하는 존재였다. 사회 지도층은 무분별한 혁명, 새로운 사회를 꿈꾸는 노조 활동, 그리고 무정부 상태로 이어질 수 있는 군중의 폭동을 경계했다. 그들은 군중이 치명적인 잔혹성을 드러내는 매력적이고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에 열광해 잔잔한 파도에서 순식간에 해일로 돌변할 수 있는 집단이라고 생각했다. 군중은 경솔하고, 쉬이 격정에 휩싸이며, 권위적인 마초에 매혹되는 미치광이 여인으로 비유됐다."

프런트맨도 참가자들을 경주하는 말이라고 깎아내린다. 게임을 지켜보며 오만하게 웃는 VIP 같은 인간은 아니다. 무슨 일이 벌어져도 차분하고 덤덤하다. 열정적인 이상주의자에 가깝다. 참가자 신분으로 오징어 게임 세계에 발을 들일 때부터 그렇진 않았다. 이병헌은 "시즌 2에서 오영일로 위장해 성기훈에게 전하는 고백은 과거 일에 대한 진심"이라고 말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 와이프가 많이 아픕니다. 급성 간경화 때문에 간을 이식해야 하는데, 근데 병원에서 검사받다가 배 속에 아이가 있는 걸 알게 됐어요. (중략) 이식할 간은 안 구해지고, 와이프 상태는 나빠지고, 돈은 빌릴 수 있는 데까지 다 빌렸는데도 감당이 안 되더라고요. 너무 급해서 제가 오래전부터 알던 거래처에서 돈을 좀 빌렸는데, 그게 뇌물이라고 문제가 돼서 결국 다니던 직장에서도 쫓겨났습니다. 제 젊음을 다 바쳤던 곳이었는데."

프런트맨은 당시 게임에서 우승했다. 그 과정에서 일어난 인지부조화는 성기훈과 달리 직접 해소했을 수 있다. 아내와 아이를 모두 떠나보냈기 때문이다. 도덕 기준을 변경하고 자신이 설득되는 명분을 찾으려고 안간힘을 썼을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그를 죽인 건 맞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 '그를 죽이지 않았다면 그가 나를 죽였을 거야.'

시즌 1의 조상우(박해수)에게서 나타났던 특징이다. 그는 인지부조화를 해소하는 데 탁월했다. 새벽(정호연)을 살해하고 "어차피 그냥 놔뒀어도 죽을 애였다"며 자기 행동을 합리화한다. 유리 징검다리 게임에서 다른 참가자를 아래로 떠밀어 위기를 모면한 뒤도 다르지 않았다. 성기훈이 "그게 나였어도 밀었을 거냐?"라며 따져 묻자 "형! 형 인생이 왜 그 모양 그 꼴인지 알아?"라고 일갈한다.

역질문은 인지부조화의 전형적 반응이다. 상대에게 자신의 패배자 같은 모습을 투사한다. 심리학자 앨버트 밴듀라는 일반 도덕이 아니라, 자기 생각에 더 우월하다고 믿는 고유한 도덕에 따라 행동할 때 '자기 면책' 현상이 일어난다고 지적했다. 불의에 항거한다는 명목으로 정해진 규범을 초월해 법 위반을 정당화한다고 봤다. 나보다 열등한 사람들을 악으로 상정하고 자기 행동에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합리화한다는 주장이다.

자기 면책과 책임 회피, 비인간화는 온갖 양심의 가책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도구다. '오징어 게임'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인물은 프런트맨이다. 바깥세상보다 오징어 게임 세계가 훨씬 평등하고 공정하다고 착각하며 참가자들을 내내 경멸한다. 유니폼, 가면, 번호 등에 기대어 인간성을 지워버린다.

그렇게 형성된 이데올로기는 성기훈의 재등장으로 위태로워진다. 지옥 같은 세상에서도 성숙하고 헌신적인 인간으로 거듭났기 때문이다. 사회의 불공정함을 우리 스스로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쏘아 올렸다. 그것은 오징어 게임에서처럼 우연히 쟁취한 승리가 아니었다. 자신의 양심을 속이지 않고, 인간의 존엄을 지켜 이뤄낸 빛나는 성과였다. 어쩌면 프런트맨이 인지부조화를 해소하려고 오랫동안 찾아 헤맸던 외부 요인이 아닐까.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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