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시즌 2에서 가장 크게 달라진 설정은 투표다. 게임이 끝날 때마다 참가자들이 지속 여부를 결정한다. 시즌 1에도 투표는 존재했다. 그러나 게임이 중단되면 한 푼도 가져갈 수 없었다. 시즌 2에서는 누적된 상금을 나눠 가질 수 있다.
프런트맨(이병헌)은 왜 자발적으로 위험 부담을 키웠을까. 황동혁 감독은 "바깥세상의 욕망이 더 커졌다는 생각에 기초해 참가자들에게 더 큰 좌절을 안기려고 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게임이 계속된다는 확신은 없었던 듯하다. 투표는 '민주주의의 꽃'과 거리가 멀다. 참가자는 공개적으로 투표해야 한다. 오른쪽 가슴에 스티커를 부착해 자신의 선택을 계속 드러내야 한다.
프런트맨은 숙소 공간도 'O'와 'X'로 구분했다. 같은 성향끼리 뭉치도록 유도해 양분화를 조장한다. 참가자들은 게임을 할 때도, 식사할 때도, 화장실에 갈 때도 같은 성향끼리 움직인다. 그렇게 개개인의 정치적 정체성이 강해질수록 갈등은 심화한다.
결국 문제는 유독한 시스템이다. 선량한 개인마저 손쉽게 타락시킨다. 가치를 배반하라고 강요하는 게 아니라 가치에 줄 세워서 서로를 배반하도록 한다.
민주주의 원칙이 작동하는 현실에서도 확인되는 흐름이다. 윤석열 대통령 관저 앞에서 열리는 탄핵 찬반 집회가 대표적 예다. 참가자들 간 욕설, 폭행 등으로 갈등이 극단으로 치달았다. 정치적 양극화의 단면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황 감독은 의견 차이의 완화보다 공통적 유대 관계의 재발견을 해법으로 제시한다. 온전히 보여주는 배역은 강대호(강하늘)다. 박정배(이서환)가 뜻밖의 'X' 버튼을 누르고 멀찌감치 떨어져 혼자 밥을 먹자 먼저 다가가 손을 내민다. "형님, 정배 형님. 이쪽으로 오세요, 그냥." "아니, 나, 나는 괜찮아." "아이, 좀. 아이, 알았어. 알았어. 아이, 그럼 멀리 가든가. 계속 신경 쓰이게 뭐 하시는 겁니까, 거기서. 쭈그리 같이."
사실 양극화 자체는 문제가 아닐 수 있다. 때로는 해결책이 되기 때문이다. 현대 미국의 양극화는 시민권 시대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인종 간 평등을 수용한 민주당과 백인들의 반발을 수습하고자 한 공화당이 그것이다. 진보 이후 생겨난 양극화는 분명 그 이전의 억압보다 훨씬 나았다.
다당제에서 양극화는 종종 정치적 견해 차이를 표현하기 위해 요구되기도 한다. 논의하지 않으면 다툴 일은 없다. 그러나 문제가 해결될 리는 만무하다.
따라서 주변에서 나타나는 양극화는 동기, 기술, 정체성, 정치 기관이라는 복잡한 시스템의 논리적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는 자본주의와 지리, 정치인들과 정치 기관들, 심리, 변화하는 인구 구조 등이 복잡하게 연루돼 있다. 전쟁과 같이 통합을 강제하는 외생적 힘이 없다면 우리가 보는 균열은 규범이나 다름없다.
양극화를 되돌릴 수 없다면 앞으로 나아갈 길은 분명하다. 그 속에서도 기능할 수 있는 정치 시스템의 개혁이다. 애초 시스템을 전복하려고 게임에 다시 뛰어든 성기훈이 이에 걸맞은 성과를 낼지는 알 수 없다. 기습이 무산돼 오히려 부정적으로 바뀌었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일련의 행위를 실패로 단정할 수는 없다. 지난 게임보다 생존자는 늘어났고, 참가자들이 생각할 폭은 더 넓어졌다. 애초 황 감독이 '오징어 게임'을 통해 개진하려 한 의견도 현실 정치 문제에 대한 해답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것을 이해하기 위한 틀로도 족하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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