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 2017년 10월 박항서는 한국에서 도망치듯 베트남으로 떠났다. 한국 축구대표팀 수석코치로 히딩크 감독과 함께 '2002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끌었던 이름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지워졌다. 2002년 8월 부산아시안게임 대표팀 감독을 맡았지만 성적 부진과 축구협회와의 갈등으로 3개월 만에 퇴임했다. 이후 그가 감독을 맡았던 K리그 프로팀은 성과가 나오지 않았다. 결국 3부 리그인 고향 팀 창원시청을 맡으며 상처를 입고 있었다.
"이제 한국에서는 어려울 것 같다. 동남아 팀이라도 좋으니 감독 자리를 알아봐 달라"며 괴로워하던 박항서에게 손을 내민 서른두 살 청년이 있었다. 스포츠 에이전트 이동준 디제이매니지먼트 대표. 박항서를 베트남 축구협회와 연결한 인물이다. '베트남 축구영웅' 박항서 신화를 설계한 주인공이다.
이 대표는 미래에셋자산운용에서 스포츠마케팅을 하면서 아시아 축구 시장에 눈을 떴고 직장을 나와 에이전트의 길을 걸었다. K리그에서 은퇴 직전인 선수들을 합리적 가격에 수출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중학생 때까지 태권도 유망주였던 그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친구들과 축구를 하다 무릎 성장판 부상을 당한다. 이 대표는 병원에서 재활 중인 운동선수들을 보며 그들에게 교육과 직업을 제공하는 일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스포츠마케팅의 길로 들어섰다고 한다. 최근 베트남 축구대표팀 지휘봉을 쥐게 된 김상식 감독도 이 대표의 작품이다. 동남아시아에 불고 있는 K-스포츠 열풍의 숨은 스토리다.
K-콘텐츠의 영역을 스포츠로 확장한 이 대표의 행보는 글로벌 관세전쟁 위기에 놓인 한국 경제에 많은 교훈을 주고 있다. 이 대표의 K-스포츠 수출 전략은 두 가지였다.
첫째, 스포츠 비즈니스도 결국 콘텐츠 사업이라는 점이다. 300대 1의 경쟁률을 보인 베트남 감독직 프레젠테이션(PT)에서 이 대표는 박항서 감독 경력을 짚으며 '언더도그 엑스퍼트(underdog expert·약팀 전문가)' 이미지를 앞세워 선택받아 냈다. 둘째, 이익을 낼 수 있는 시장을 찾고 자산운용의 성공원리를 대입해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것이다. 저평가된 동남아시아 축구 시장을 주목하고 스포츠와 금융을 결합해 정확한 수익 모델을 보여주겠다는 것이 목표였다.
지난 한 달간 우리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관세 전쟁을 선포하면서 새로운 변화를 긴장과 두려움 속에서 지켜보고 있다. 트럼프는 이제 특정 국가에 이어 다수 국가를 상대로 무차별 '상호 관세'까지 예고했다. 트럼프의 관세 전쟁 총구가 이제 한국 코앞까지 다가온 것이다. 그러나 다가올 변화를 막연하게 두려워하기보다는 새로운 기회와 도약의 기회로 인식하고 이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미국발 관세전쟁에도 끄떡없는 분야가 있다. 바로 SW와 엔터테인먼트, 스포츠 등 문화 콘텐츠 산업이다. 물동량이 필요 없는 콘텐츠 산업이 관세 무풍지대로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다. 한국이 가장 경쟁력 있는 분야다. 한 손엔 K-콘텐츠, 다른 한 손엔 신시장 개척이라는 두 무기를 들고 '페어플레이'가 사라진 글로벌 무역전쟁에 맞서야 한다.
조영철 콘텐츠 편집1팀장
조영철 팀장 yccho2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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