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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이탈리아어 제친 한국어…학습자는 젊은데 교재는 늙었다[한국어 시대①]
    입력 2025.02.1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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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시아경제 ]

편집자주한국어 시대다. 한국어를 알아야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한강의 작품을 원어로 읽을 수 있다. 전 세계가 열광하는 K-팝, 드라마, 영화 등을 제대로 즐기려 해도 한국어를 배워야 한다. 한국에서 일하고 공부하는 외국인 숫자만 250만 명이 넘는다(법무부 출입국외국인 정책본부 2023년 12월 통계 연보). 문화생활을 위해, 일하고 공부하기 위해 전 세계 사람들이 한글을 배운다. 아시아경제는 세계 속 한국어의 위상과 교육 실태를 짚어보는 시리즈를 시작한다.
지난해 미국 뉴욕 맨해튼 5번가에 있는 대형 체인 서점 반스앤드노블(Barnes & Noble) 매장의 모습. 한강의 저서는 매진돼 찾을 수 없다. 연합뉴스

한강 작가의 소설이 해외에서 한국어 원서로 팔리는 시대다. 구하기도 힘들다. 지난해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에 미국 뉴욕, 영국 런던 등 세계 주요 도시 서점에서 번역본과 함께 완판됐다.

낯선 풍경은 아니다. 현지인 일상에 한국어가 깊게 침투해 있다. 상점과 식당에선 한국어 가사의 K-팝이 줄기차게 흘러나온다. 젊은이들은 방탄소년단(BTS), 스트레이키즈 등의 콘서트장 객석을 빼곡히 메운다. 전광판에 송출되는 한국어 가사를 따라부르며 열광한다. 집에서는 넷플릭스 등으로 한국 드라마를 시청한다. 주인공에게 감정을 이입하며 한국어와 가까워진다.

흥미와 관심은 학습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수요는 상당하다. 미국 모바일 학습 플랫폼 듀오링고가 2023년 발표한 리포트를 보자. 한국어는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많이 배우는 언어다. 이탈리아어(7위), 힌디어(8위), 중국어(9위), 포르투갈어(10위)를 제쳤다. 한국어보다 많이 공부하는 언어는 영어(1위), 스페인어(2위), 프랑스어(3위), 독일어(4위), 일본어(5위) 정도다.

한국어는 젊은 언어다. 한국어를 공부하는 사람 대다수가 10~20대다. 듀오링고는 한국어 학습 집단은 일본어와 중국어 그룹보다 훨씬 젊다고 밝혔다. 이런 경향은 브라질, 인도, 멕시코 등 미래 경제를 주도할 인구, 자원 대국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학습자의 70% 이상이 13~22세였다. 예를 들어 브라질에서는 47%가 13~17세였다. 데이터를 분석한 신디 블랑코 박사는 "어떤 언어를 공부하느냐는 문화, 음악, 엔터테인먼트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며 "애니메이션이 일본어 학습자를 끌어들였듯, '오징어 게임'을 비롯한 한국 콘텐츠가 한국어를 배우는 동기로 작용했다"고 해석했다.

실제로 한국어를 공부한 대다수 외국인은 입문 배경으로 한국 콘텐츠를 첫손에 꼽았다. 에콰도르인 마카레나 이달고씨는 "젊은이들이 한국의 노래, 드라마, 영화를 온전히 이해하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미얀마인 메이 먓 노우씨도 "한국 드라마와 K-팝에 빠졌다가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들이 많다. 저도 그런 경우"라며 "고등학교 때 좋아하는 K-팝 노래를 따라 부르고 쓰면서 자연스럽게 한국어를 익혔다"고 밝혔다. 중국인 양강씨 역시 "많은 중국인, 특히 젊은이들이 한국 연예인을 좋아한다. 자연스럽게 한국에 관심이 생겨 한국어를 공부한다"고 말했다. 캐나다인 쿠엔틴 티제씨는 "베트남 친구가 아이돌 노래를 열심히 알려줬다. 교육 영상으로 공부하면 한국어를 1시간 만에 배울 수 있다고 했다"며 "실제로 해보니 기초적인 단어를 쓰고 읽을 수 있었다"고 돌아봤다.

늘어난 수요에 한국어를 공부할 수 있는 곳도 많아졌다. 지난 10년간 한국어를 가르치는 해외 초·중등학교는 2014년 1111개교에서 2023년 2154개교로 늘었다. 일본이 578개교로 가장 많았고, 미국(217개교), 태국(209개교), 브라질(105개교)이 뒤를 이었다. 이들 학교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은 2020년 서른아홉 나라 15만9864명에서 2023년 마흔일곱 나라 20만2745명으로 늘었다. 한국어를 제2외국어로 채택한 학교도 2014년 열한 나라에서 2023년 스물네 나라로 증가했다. 대입에 활용하는 나라는 같은 기간 네 나라에서 열 나라로 늘었다. 뉴질랜드, 불가리아, 우즈베키스탄, 태국, 프랑스, 호주 등이다.

세계 주요 도시에서 한국어 강좌를 운영하는 한국문화원도 북새통을 이룬다. 수업을 들으려면 대기표를 받고 기다려야 할 정도다. 성원 베트남 하노이 한국문화원 실무관은 "매년 모집 공고를 내는데 올해는 1000명 이상이 신청했다. 모두 수용할 수 없어 반 배치 고사를 진행했다. 성적이 높은 순으로 선발해 학기별 수강 기회를 줬다"고 말했다. 민병욱 일본 도쿄 한국문화원 한국어보급 사업팀장은 "일요일을 제외하고 주 6일 수업을 하는데, 오전반과 저녁반 모두 만석이다. 추첨에서 당첨된 사람들만 들을 수 있다"며 "평일에는 주부와 직장인, 토요일에는 중고대학생이 주를 이룬다"고 했다.

문화원이 없는 지방 소도시 사람들은 과외를 받거나 유튜브로 한국어를 배운다. 유튜브가 한국어 교과서인 셈이다. 대표적 채널로는 'Talk To me in Korean(약 183만 명)', 'sweetandtastyTV(약 116만 명)', 'Eatyourkimchi Studio(약 117만 명)' 등이 꼽힌다. 하나같이 구독자가 100만 명을 넘는다.

세종학당 외국인 학습자들이 한국을 찾아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한국어 보급의 전진기지 세종학당도 수강생으로 미어터진다. 세 나라 열세 지점에서 출발한 2007년만 해도 수강생은 740명에 불과했다. 지난해는 여든여덟 나라 세종학당 256지점에서 약 21만 명이 공부한다. 17년 만에 수강생이 300배나 늘어났다. 빈자리가 나기를 기다리는 사람만 1만 명이 넘는다.

한국어를 습득하려는 이유는 다양하다. 2023년 세종학당에서 진행한 학습자 만족도 조사에서 응답자의 34%가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아서'라고 했다. '한국·한국어에 대한 호기심(23.6%)', '한국 유학(19.7%)', '한국 기업 취업(12.1%)', '학업 성적 향상(7.3%)'은 그 뒤를 이었다.

어느 정도 실력을 다진 외국인은 자격증에 도전한다. 주로 국내 유학, 한국 기업·기관 입사에서 요구하는 한국어능력시험(TOPIK)에 응시한다. 그 수는 매년 증가한다. 2016년 응시자는 25만141명이었으나 지난해는 8월 말 기준 42만8585명이다.

세종학당 외국인 학습자들이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한글 관련 유물들을 살펴보고 있다.

교육부는 급증하는 수요를 고려해 시험 횟수를 1년에 9회에서 올해 12회로 확대한다. 인터넷 기반 시험(IBT) 기회도 여섯 나라 3회에서 열세 나라 6회로 늘린다. 박성민 기획조정실장은 "언제, 어디서나 한국어 능력을 평가할 수 있도록 AI 기술을 활용한 디지털 플랫폼을 구축하겠다"고 말했다.

문체부도 지난해 8월 '세종학당 혁신방안'을 발표했다. 2027년까지 세종학당을 300지점으로 늘리고, 세종한국어평가(SKA) 시행처를 쉰 곳에서 100곳으로 확대한다. 한국어 자가 학습 애플리케이션도 생성형 인공지능(AI)으로 고도화한다. 유인촌 장관은 "지속 가능한 해외 한국어 보급 확산을 위한 현지화 전략"이라며 "이를 토대로 한국어와 한국 문화 확산 지원책을 체계적으로 정비·개편하고, 다양한 주체와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문제는 내실이다. 정부 핵심과제에 교과서 등 교재 정비에 관한 내용이 없다. 교재는 한국어 교육의 핵심이다. 단순히 읽고 쓰는 법만 전달하지 않는다. 어휘, 문법, 발음, 듣기, 심지어 한국 문화와 역사까지 알려준다. 최근 한국어 학습 수요 급증으로 종류는 다양해졌다. 그러나 질적인 측면에서는 문제가 있다는 평가다.

국립국어원이 2020년 발행한 '국내외 한국어 교재 사용 현황 조사'를 보면 해외에서 유통되는 교과서는 대체로 흥미와 연습 문제 분량에 대한 만족도가 낮았다. 상호문화적 입장이나 다문화 감수성이 부족하단 지적도 있다. 현지 맞춤형 교과서 역시 부족한 실정이다. 베트남, 캄보디아, 태국, 라오스, 몽골, 브라질, 우즈베키스탄, 말레이시아, 필리핀, 러시아 등 열 나라에서만 한국어 교재가 제작됐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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