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풀 작가가 먼저 연출 제안…4화까지는 매회 다른 장르 부여"
드라마 출연한 배우 김민하 "극중 연인에게 편지 쓰면서 감정선 잡았죠"
(서울=연합뉴스) 오명언 기자 = "그냥 계속 배우로 살았으면 주어진 역할을 하면서 가만히 잘 지낼 수 있었을 텐데 괜히 연출을 맡겠다고 한 건가, 많이 고민했습니다. (웃음) 도전이라는 게 항상 불안하잖아요."
지난해 디즈니+ 최고 흥행작 '무빙'을 내놓은 강풀 작가는 그의 또 다른 만화 중 하나인 '조명가게'를 드라마화하겠다며 신인 감독 한 명을 점 찍었다. 바로 '무빙'에 출연했던 배우 김희원이었다.
연출 경험도, 연출을 전문적으로 배워본 적도 없는 김희원을 강 작가가 '조명가게'의 감독으로 고른 이유는 무엇일까.
20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마주 앉은 김희원은 "저도 짐작만 할 뿐"이라며 운을 뗐다.
그는 "'무빙'을 함께 하면서 제가 감독님을 설득해서 대본을 고친 적이 있었다"며 "강 작가님은 제가 연기를 너무 잘해서 감독으로 같이 일하고 싶었다고 말씀하셨지만, 제 짐작으로는 아마 제가 큰 그림을 볼 줄 아는 배우라고 생각해주셨던 것 같다"고 말했다.
김희원은 지난 20여년의 세월 동안 배우로 살아왔지만, 늘 연출에 대한 열망이 있었다고 한다.
그는 "항상 언젠가 연출해보고 싶다는 마음은 있었지만, 엄두가 안 나서 망설이던 참에 작가님이 먼저 제안을 주셨다"며 "막상 기회가 오니, 한참 동안 고민했다"고 되짚었다.
"'조명가게' 작품 자체가 굉장히 어려웠고, 제가 망치는 게 아닌지 겁도 많이 났어요. 용기 내서 하겠다고 말씀드린 뒤로도 두 달 정도는 그만두겠다고 말할까 고민했던 것 같아요."
지난 18일 최종회를 공개한 '조명가게'는 삶과 죽음, 그 중간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하루 종일 불이 꺼지지 않는 의문의 조명가게를 배경으로 그곳을 찾아오는 수상한 사람들의 사연을 풀어낸다.
김희원은 "4화에 달해서야 큰 반전이 밝혀지다 보니, 그전까지 이야기를 흡인력 있게 끌고 가는 것이 가장 큰 숙제였다"고 꼽았다.
그는 "일단 대본에 있는 심오한 내용은 최대한 덜어냈고, 1∼3화 장르를 모두 다르게 설정하면서 시청자들을 잡아두려고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1화는 미스터리처럼 전개되고, 2화는 호러의 특징이 강하죠. 3∼4화는 형사가 나오는 활극같이 풀어냈어요. 기승전결이 있는 드라마가 아니다 보니, 매회에 장르를 부여하는 게 관심을 계속 끌어낼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난 10월에야 후반 작업을 마무리했다는 김희원은 "살면서 이렇게 무언가에 모든 것을 쏟아부은 경험은 처음인 것 같다"며 "촬영을 마치고 나서는 공황 발작 같은 증상이 있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이어 "배우로 작품에 참여했을 때는 시원한 마음이 컸는데, 감독으로 작품을 내놓게 되니까 계속 가슴이 두근거리고, 걱정도 많고, 제발 좀 잘 봐주셨으면 하는 마음이 크다"고 말했다.
"문화의 힘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고, 일상 속의 쉼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 같아요. 그런 맥락에서 문화 예술인의 역할은 다 비슷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광대든, 연출자든 저는 뭐든 다 좋아요."
'조명가게'에는 김희원과 예능 '바퀴 달린 집'으로 인연을 맺은 배우 김민하도 출연한다.
김민하는 "감독님은 배우로 오래 활동하셨기 때문에 배우들의 고민과 고충을 너무 잘 알고 계셨다"며 "연출자로서 쉽지 않은 일인데, 현장에서 배우에게 하고 싶은 걸 다 해볼 수 있도록 믿고 기다려주셨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김민하는 드라마에서 동성 연인 혜원이 목숨을 바쳐서 살려낸 덕분에 다시 한 번 삶의 기회를 얻게 된 여자 선해를 연기했다.
그는 "평소 연기를 할 때 일지를 자주 쓰는데, 혜원에 대한 선해의 마음을 편지 형식으로 자주 써내려가면서 감정선을 잡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짜증내고 윽박지르는 모습이 미성숙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저는 그 역시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나오는 행동이라고 이해했다"며 "선해가 가진 사랑의 온도가 참 좋았다"고 돌아봤다.
애플티비+ 시리즈 '파친코'로 한국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주목받고 있는 김민하는 "주변에서는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라고 말하지만, 저는 그러고 싶지 않다"며 하루아침에 유명해진 느낌에 들뜨지 않기 위해서 최대한 땅에 발을 붙이고 있으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저는 이제 막 시작이에요. (웃음) 액션도 해보고 싶고, 아주 못된 악역도 해보고 싶어요. 진짜 차가운 느낌의 도시 여자도 해보고 싶습니다."
coup@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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