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6월 항쟁 때 개그맨 김병조 '통민당' 발언 뭇매
연예인 공적 책임 무거워…정치적 시비 경계해야
(서울=연합뉴스) 김재현 선임기자 = '계엄 시국에 뭐하냐'고 따져 묻는 사람에게 "뭐요"라 대꾸했다가 곤욕을 치르는 가수 임영웅(33)처럼 연예인이 '정치'와 엮이면 탈 나는 게 우리 대중문화계의 숙명이다. 1980년대를 풍미한 원조 개그맨 김병조(74)가 딱 그런 케이스다. MBC의 코미디 프로 '일요일 밤의 대행진'에서 앵커 역을 맡은 김병조는 전라도 사투리가 섞인 걸쭉한 입담과 재치 있는 언변으로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나가 놀아라~", "먼저 인간이 되어라", "지구를 떠나거라"라고 극 중 진상에게 내리는 마지막 명령은 '배추머리' 김병조가 만들어낸 불멸의 유행어이기도 하다.
영원할 것만 같던 김병조의 장밋빛 인생은 1987년 6월10일 민주정의당 전당대회로 인해 흙빛으로 바뀌었다. 전대 막간에 웃음을 선사하는 분위기 메이커로 동원됐다가 일순간 나락에 떨어진 것이다. "민정당? 우리 민족에게 정을 주는 당. 통민당(통일민주당)? 우리 민족에게 고통을 주는 당"이라고 비꼰 것이 화근이었다. 민정당 전대는 전두환의 후계자 노태우를 사실상 차기 대통령으로 추대한 자리였다. MBC가 준 대본을 읽은 김병조로선 억울한 일이었지만, 체육관선거에 분노해 거리로 몰려나온 국민들에게 그런 저간의 사정이 변명거리가 될 수 없었다.
예나 지금이나 연예인에게 부과된 공적 책무는 공복인 정치인보다 훨씬 더 무겁다. 정치인이 말을 바꾸면 늘 있는 일로 치부하고 잊어버리는 국민이지만, 연예인이 거짓 된 행동을 하면 바로 밥줄을 끊어놓을 정도로 혹독한 심판을 내린다. 특히 병역은 절대 건드려선 안 될 역린이다. 사지 멀쩡한 남자 연예인이 병역 면제를 받으면 군대 갔다온 뭇 남성들의 욕받이로 살 각오를 해야 한다. 원로 가수 남진(78)은 해병대에 입대했지만 '연예병사'로 편하게 지낸다는 보도로 인해 병역 특혜 시비가 일자 베트남전 파병을 자청해 전장에서 싸웠다.
임영웅의 '뭐요'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그는 최근 콘서트에서 "걱정 끼쳐 죄송하다"면서 "나는 노래하는 사람이다. 노래로 즐거움과 위로, 기쁨을 드리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발언의 맥락을 따져보면 톤만 낮아졌을 뿐 "제가 정치인인가요? 목소리를 왜 내는가요"고 되묻는 태도에서 크게 달라진 게 없다. 임영웅은 그의 말대로 노래하는 사람이 맞지만, '노래만 하는 사람'으로 스스로를 가두려 한다는 인상을 준다. 임영웅이 당대 최고의 스타로 뜬 것도 노래를 잘해서가 아닐 것이다. 어려운 가정사 등 무대 밖의 환경이 힘든 시절을 보낸 중장년층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위로를 주기 때문이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전두환 이후 첫 비상계엄 조치에 분노하는 대중은 임영웅에게 국민을 편가르는 정치 구호가 아닌 따뜻한 공감의 메시지로 위로받길 원하고 있다. 공감을 주기 어렵다면 다른 연예인들처럼 차라리 침묵하는 게 차선의 방법이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 됐다면 대다수가 공감할 수 있는 말로 대중을 납득시켜야 한다. 그것이 스타의 숙명이자 의무다. 87년 6월 항쟁 때 국민이 김병조의 처지를 알면서도 그를 나무란 것도 공감 부족 탓이 컸다. 따지고 보면 김병조는 그의 시야를 가린 팬덤과 비상 시국이 낳은 시대의 피해자였다.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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