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물에 코미디 조합한 '중증외상센터'·'트리거'·'뉴토피아'
무거운 이야기도 최대한 가볍게…"감정 소모 덜 한 작품이 주목받기 쉬워"
(서울=연합뉴스) 오명언 기자 = 불황에는 코미디가 뜬다는 속설이 있다. 삶이 고달플수록 대중은 답답한 현실을 잊고 기분을 전환할 수 있는 콘텐츠를 찾게 된다는 것이다.
방송가도 이런 현상을 반영하듯 '웃음' 코드를 내세운 코미디 작품들을 잇달아 선보이고 있다.
지난 24일 공개된 넷플릭스 새 시리즈 '중증외상센터'는 메디컬 드라마에 유머를 더했다.
이 드라마는 천재 의사 백강혁이 유명무실한 중증외상팀을 심폐 소생하기 위해 부임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환자들의 감동적이고 가슴 아픈 사연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풀어내는 여느 메디컬 드라마와 다르게 이 드라마는 독보적인 능력을 갖춘 이른바 '먼치킨' 주인공을 내세워 속 시원하고 유쾌한 전개를 펼쳐낸다.
까칠한 성격에 주변의 시선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백강혁은 주변 인물들을 당황하게 하는 엉뚱한 말과 행동으로 웃음을 유발한다.
'노예 1호'라고 부르며 부려 먹는 제자 양재원(추영우), '조폭'이라고 부르는 중증외상팀 5년 차 간호사 천장미(하영), 시종일관 골탕 먹이는 항문외과 교수 한유림(윤경호)과의 케미가 타율 높은 코미디를 만들어낸다.
인터넷에 떠도는 밈(meme·인터넷 유행 콘텐츠)을 적절하게 활용한 장면들이나 'B급 코드' 가득한 유머도 보는 재미를 더한다.
디즈니+에서 순차적으로 공개되고 있는 새 시리즈 '트리거'도 'B급 감성'이 돋보이는 코믹 수사물이다.
이 드라마는 '트리거'라는 이름의 탐사 보도 프로그램이 경찰도, 검찰도 해결하지 못 한 강력 사건들을 끝까지 추적하며 정의를 구현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사이비 종교, 동물 학대, 스토킹 범죄 등 현대사회의 어두운 범죄와 사건·사고를 에피소드 형식으로 다뤄내는데, 곳곳에 배치한 허를 찌르는 코미디가 독특한 재미를 안긴다.
'똘끼'가 충만한 캐릭터들의 케미, 말맛을 살린 대사와 거리낌 없이 망가지는 김혜수의 능청스러운 연기 등이 웃음을 유발한다.
내달 쿠팡플레이에서 공개되는 '뉴토피아'도 코미디 색채가 짙은 작품이다.
'뉴토피아'는 두 연인이 좀비에 습격당한 서울 도심을 가로질러 서로에게 달려가는 이야기를 그린다. 시놉시스만 놓고 보면 박진감 넘치는 좀비 스릴러를 상상하게 되지만, 이 드라마 속 좀비들은 보다 우스꽝스럽고 코믹하다.
드라마를 연출한 윤성현 감독은 제작발표회에서 "최근 영화와 드라마 속 좀비들은 굉장히 빠르고, 두려운 존재로 그려지는데, 과거의 좀비들은 느리고, 웃기고, 귀여운 느낌도 있었다"며 "1970년도 좀비들의 특징을 가져와 차별화를 꾀했다"고 밝혔다.
대중이 무거운 장르물보다는 편하게 볼 수 있는 로맨틱 코미디 등을 선호한다는 경향은 지난해부터 뚜렷하게 드러났다.
콘텐츠 화제성 조사업체 굿데이터코퍼레이션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월 1일부터 12월 8일까지 방영된 TV드라마를 대상으로 화제성 점수를 산출한 결과 '눈물의 여왕'과 '선재 업고 튀어'가 각각 1위, 2위를 차지했다.
기대작으로 점쳐졌던 연상호 감독의 '지옥' 시즌2, 박서준, 한소희 주연의 '경성크리처', 송강호의 첫 시리즈 주연작 '삼식이 삼촌' 등은 기대보다 초라한 성적을 받아들였다.
다만 코미디라면 로맨스 코미디가 대부분이었던 작년과 달리 장르적 성격이 강한 코믹물이 등장한 것이 최근 코미디의 특징이다. '중증외상센터'와 '트리거'는 러브라인을 아예 덜어낸 채 캐릭터들의 티격태격하는 유쾌한 케미(호흡)에 초점을 맞췄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사는 것이 힘들수록 시청자들은 감정 소모 없이 편하게 볼 수 있는 콘텐츠를 찾게 된다"며 "나쁜 소식만 많은 지금의 상황에서 복잡하게 머리를 안 써도 되는 유쾌한 작품들이 더 주목받기 쉽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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