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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
‘서브스턴스’의 복제와 ‘미키17’의 멀티플 [정시우 SEEN]
    전형화 기자
    입력 2025.03.20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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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1) 늙는 게 싫다.

한때 할리우드를 주름잡는 스타였으나, 지금은 퇴물 취급 받는 에어로빅 쇼 진행자 신세.

50살 생일을 앞두고 방송국 사장으로부터 여자 나이 오십이면 끝난다는 말을 듣는다.

서럽다.

자기 얼굴을 담은 광고판이 철거되는 광경에 충격받은 날, ‘서브스턴스’라는 약물을 알게 된다.

약물을 주입하자, 등뼈를 가르며 ‘젊은 버전의 ‘나’가 나온다.

할렐루야!

서브스턴스의 절대 규칙 하나.

일주일 간격으로 본체와 ‘다른 나’를 교체할 것.

그렇게 ‘나’와 ‘또 다른 나’의 아슬아슬한 동행이 시작된다.

사례2) 가난이 싫다.

어렵사리 차린 마카롱 가게마저 쫄딱 망했다.

빚을 못 갚으면 사채업자에게 전기톱으로 갈릴 처지에 놓인다.

무섭다.

살아남기 위해, 우주 행성 원정 프로젝트의 개척단으로 지원한다.

처음엔 몰랐다.

자신이 지원한 게, 위험 임무 수행 중 사망하면 다시 프린팅되는 ‘익스펜더블(소모픔)’인 줄.

그렇게 열여섯 번 죽었다가 리프린팅됐다.

외계 생명체 크리퍼를 만나 또 죽겠거니 했는데, 웬걸.

살려주네?

기지로 돌아왔더니 나와 똑같이 생긴 놈이 있다.

“누구냐, 넌?” 누구긴, 18번째의 너!

비상 상태다.

멀티플(복제인간의 공존)은 불법이기 때문이다.

전자는 ‘서브스턴스’의 엘리자베스 스파클(데미 무어).

후자는 ‘미키17’ 속 미키17(로버트 팬틴슨)이다.

접점 하나 없는 인물들이지만, ‘나’를 대체하는 ‘또 다른 나’와 조우한다는 점에서 처지가 비슷해 보인다.

결정적으로 두 사람에겐 공통점이 있다.

자존감이 아스팔트 위의 껌딱지 수준으로 낮다는 점이다.

본래 생겨 먹은 성격 때문만은 아니다.

그들이 품은 자기혐오의 뿌리엔 비인간적인 자본주의 시스템이 있다.

엘리자베스를 자기혐오로 물들인 건, 젊은 여성을 착취하고 소비하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생리다.

언제든지 신인으로 대체될 수 있다는 불안이 그의 내면을 좀 먹는다.

그 불안을 먹고 탄생한 존재가 바로, ‘젊은 나’인 수(마거릿 퀄리)다.

미키의 자존감을 갉아 먹은 건, 고위험·고강도 업무 속으로 저임금 노동자를 떠미는 ‘위험의 외주화’다.

계급에 따라 목숨값이 달라지는 세계에 길들여진 미키17은 급기야 자기 가치를 평가절하한다.

오죽하면, 크리퍼가 자신을 먹어 치우지 않자 이렇게 자조할까.

“자꾸 프린트돼서 육질이 안좋아 보이나?” 자기 비하로 점철된 두 존재의 운명을 가르는 결정적인 한 방.

그건 바로 ‘또 다른 나’와의 관계 형성 방향이다.

(스포일러 구간)엘리자베스와 수는 얼마간 공존을 이어간다.

비극은, 스타로 떠오른 수가 자신의 할당 시간을 늘리고 싶어 하면서 시작된다.

수에게 빼앗긴 시간만큼 엘리자베스는 ‘가속노화’를 겪는다.

끔찍한 형벌이다.

다급해진 엘리자베스는 약물 제조사에 부작용을 호소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기억해.

너는 하나야”다.

그렇다.

수의 욕망은 뒤집어 말하면 엘리자베스의 욕망인 셈이다.

이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숱한 여성들이 무의식적으로 학습한 이중적 태도이기도 하다.

나를 파괴하는 길임을 알고 있음에도, 종국엔 사회가 요구하는 미의 기준에 자신을 갈아 끼우는 선택을 하는 태도 말이다.

‘서브스턴스’는 그 선택의 결과를 신체 변형이라는 호러 형식으로 관객에게 냅다 집어 던지는 영화다.

수와 엘리자베스가 타협하지 않을까란 기대를 영화는 ‘몬스트로 엘리자수’를 통해 배반한다.

두 사람의 욕망이 결합해 낳은, 괴물을 보라.

미키17-미키18의 관계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죽이네 마네 싸우던 둘은, 먀살(마크 러팔로)이라는 공통의 적 아래 뭉친다.

특히 미키17이 비인간적 대우를 속수무책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에 미키18은 “그런 꼴을 당하고도 가만있냐?”고 호통치는가 하면, 미키17이 어릴 적 사고사로 세상을 떠난 엄마의 죽음을 자기 탓이라고 자책하자 “네 탓이 아니야!”라고 선을 그어주기도 한다.

그건, 나를 가장 잘 아는 내가 나에게 건네는 위로와도 같다.

그렇게 미키18의 존재가 미키17을 각성케 한다.

자기 삶을 긍정하는 순간, 미키17은 조금 자란다.‘서브스턴스’와 ‘미키17’은 결국, ‘내가 나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절절한 텍스트다.

전자는 욕망을 버리지 못해서 괴물이 되고, 후자는 시스템을 박차고 나감으로써 자유를 얻는다.

오늘도 자기 안의 수많은 나와 싸우고 있는 우리에게 두 영화가 던지는 질문이 흥미롭다.

정시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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