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줄기는 굵어졌다가 가늘어지길 반복했다.
그라운드 위 대형 방수포도 네 번이나 깔고 치웠다.
삼성 라이온즈 투수 원태인(24)은 다시 한 시간 더 몸을 풀었다.오후 7시 20분경 한국시리즈(KS·7전 4승제) 사전 행사로 선수들이 그라운드에 도열한 가운데, 원태인은 묵묵히 외야에서 캐치볼을 하며 몸을 풀었다.
'꿈의 무대'는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시작됐다.
원태인은 지난 21일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KIA 타이거즈와의 KS 1차전에 선발 등판, 빗속에서 공을 던졌다.
5이닝 동안 던진 공은 단 66개.
홈런성 타구도 맞았고, 볼넷도 2개 내줬지만 에이스다운 위기관리 능력으로 무실점 피칭을 이어갔다.
원태인도 "컨디션이 너무 좋았고, 투구도 내 생각대로 잘 됐다.
내 야구 인생에 기억될 만한 투구를 할 자신감이 있었다"라고 돌아봤다.
야속한 비가 원태인의 앞을 가로막았다.
6회 초 김헌곤이 홈런을 쏘아 올려 삼성이 리드를 가져온 가운데 이어진 무사 1·2루에서 경기가 비로 중단됐다.
45분가량 기다렸지만, 결국 서스펜디드 게임이 선언됐다.
6회 초 중단된 1차전은 하루 뒤인 22일 재개하는 것으로 결정됐고, 이튿날에도 비가 내려 23일까지 연기됐다.
그러나 원태인은 이날 공을 던질 수 없었다.
끝나지 않은 경기가 재개됐기에 규정상 등판이 가능하지만, 많은 공을 던진 선발 투수가 하루 이틀만 쉬고 다시 좋은 공을 던지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박진만 삼성 감독도 "원태인이 잘 던지고 있었는데 흐름이 끊겼다.
(서스펜디드 게임에) 원태인을 내보내지 못해 아쉽다"라고 말했다.
반면 이범호 KIA 감독은 "원태인을 다시 안 만나서 다행이다"라고 말했다.
원태인은 덤덤했다.
"당장 서스펜디드 게임에서 6회부터 던지라고 해도 난 준비가 돼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PS에서 최고의 컨디션으로 공을 던지기 위해 정규시즌 막판 휴식까지 했다"며 "나는 (우승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칠 준비가 됐다"라며 당차게 말했다.
박진만 삼성 감독은 원태인을 재개되는 1차전에 올리는 대신, 4차전 선발로 내세우겠다고 전했다.
박 감독은 "(21일 1차전) 원태인의 투구수가 많지 않았다.
나흘 휴식 후인 4차전(26일) 등판이 가능하다"라고 예고했다.
원태인은 돌발 변수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고 한다.
그는 "좋은 쪽으로 생각하면 투구 수를 절약할 수 있었다.
덕분에 4차전을 좋은 컨디션으로 준비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7차전 등판까지 계산하고 있다.
7차전에 나서려면 4차전 선발 등판 후 사흘밖에 쉴 수 없다.
하지만 원태인은 "사흘 쉬고 7차전에 등판하라고 하면 마운드에 오를 거다.
불펜 대기도 하라면 한다.
그 정도로 몸 상태가 좋다"라며 웃었다.
원태인은 "언제 올지 모르는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다"며 우승의 의지를 강하게 다졌다.
그는 "그동안 내가 팀 내에서 국내 1선발로 평가를 받아왔지만, 아직 큰 무대에서 내 기량을 증명한 적이 없었다.
이번 PS에서 큰 경기에 강하다는 걸 증명해 낸 것 같아 뿌듯하다"며 "정규시즌 하위권 전력이라는 것과, LG 트윈스와의 플레이오프에서 두 번의 우천 순연으로 불리할 거라는 예상을 우리는 모두 뒤집었다.
늘 그래왔듯이 모든 예상을 뒤집고 승리하겠다"라고 각오를 다졌다.
광주=윤승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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