퍽~.
나성범(당시 NC 다이노스) 선수는 그러나 별다른 반응 없이 1루로 뛰어갔습니다.
마운드를 향해 눈길도 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대결을 지켜보던 더그아웃의 코치진과 관계자석의 프런트에서 약간의 술렁임이 있었습니다.
보는 입장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만, 당한 쪽에선 투수의 고의성이 의심스러웠습니다.
앞선 타석에서 선배 투수의 공을 잡아당겨 담장 밖으로 넘긴 뒤 오른손을 번쩍 치켜든 세리머니 탓이었을까요.
일단 벤치에선 그를 빼고 대주자를 넣습니다.
부상 정도를 확인하려고 교체합니다.
긴장감도 잠시, 미묘한 상황은 그렇게 끝났습니다.2012년 창단 첫 해 다이노스가 퓨처스(2군)리그를 뛸 때 이야기입니다.
그해 4월 23일, 마산구장에서 열린 경찰청 야구단과의 경기를 7-1로 다이노스가 이깁니다.
그러나 경기 후 다이노스 분위기는 그리 좋지 못했습니다.
퓨처스리그의 디펜딩 챔피언인 경찰청을 맞아 완승했는데 왜일까요.
상대의 도발을 지켜보기만 한 벤치의 선수들에 대한 코칭스태프와 프런트의 고민 때문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동료를 지키기 위해 보복구를 던져야 했다는 말이 아닙니다.
당시 다이노스를 이끈 초대 김경문 감독님은 ‘빈볼’에 매우 부정적이었습니다.
학생야구 선수 때 큰 부상을 여러 차례 당했던 감독님은 상대를 다치게 하는 플레이는 용납하지 않는 ‘깨끗한 야구’를 강조했습니다.
코칭스태프는 얌전하게 구경꾼처럼 앉아있던 선수단 분위기를 지적했습니다.
그라운드에 서있는 우리 팀 선수가 주눅이 들지 않게 벤치의 동료들이 끓어오르는 에너지를 줘야 한다고 주문했습니다.
프로에서 첫 시즌을 시작하는 다이노스의 젊은 피들은 그렇게 야성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더그아웃은 시끌벅적해졌습니다.그래도 한계는 있었습니다.
상대 팀의 길들이기는 갈수록 매서웠으니까요.
대표적인 예로 신생팀의 간판이 된 나성범 선수 경우 그해 퓨처스 시즌 동안 33번이나 공에 맞습니다.
그가 1군 무대인 KBO리그에서 12시즌(2013~2024) 동안 기록한 몸맞는 공은 124 차례로, 시즌당 10.3회 정도였습니다.
퓨처스 레벨을 감안하더라도 첫해 신고식을 얼마나 세게 치렀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퓨처스 경기였지만 상대 라인업에는 프로 1군에서 몇 시즌을 뛴 선배들도 있었습니다.
신인급 선수로 구성된 다이노스는 '물정 모르는 막내' 취급을 받곤 했습니다.
다이노스의 어느 투수는 낮 경기 출장을 위해 얼굴에 바른 자외선 차단제를 경기 전에 지우라는 말을 비아냥과 함께 듣기도 했습니다.
젊은 선수들 중심을 잡을 베테랑 선수의 필요성을 현장과 구단 모두 느꼈습니다.
첫 KBO리그 진입을 앞두고 그해 말(2012년 11월) 이호준 선수를 팀의 첫 자유계약선수(FA)로 영입한 이유에는 이런 맥락도 있습니다.
든든한 형의 꿀리지 않는 존재감으로 더이상 그라운드에서 동생들(다이노스 선수들)이 그냥 얻어맞는 일은 사라졌습니다.
보이지 않는 채널을 통해서라도 돌려줘야 할 메시지는 전달됐습니다.
감독이나 구단이 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이후 대형 FA 계약으로 들어온 양의지 선수도 비슷했습니다.
어느 주심의 콜과 판정이 오락가락하며 경기가 뒤집히려 할 때 그는 더그아웃에서 “이런 경기 지면 안돼!”라고 고함을 칩니다.
더그아웃 복도 뒤까지 소리가 들릴 정도로 큰 소리였습니다.
정신이 번쩍 든 동료 선수들은 경기를 잡아냅니다.
‘좋은 선수’는 몸값을 떠나 책임감을 갖고 동료들이 힘들어 할 때 자신이 구심점이 될 수 있는지를 스스로 증명하곤 합니다.
올해 미국 메이저리그(MLB) 월드시리즈 우승팀 로스앤젤레스(LA) 다저스도 비슷합니다.
현지 미디어에서는 “마침내 길거리 싸움 (street fight)을 이겼다”는 식의 평가가 있었습니다.
때론 거칠고 공격적인 스타일로 팀 분위기를 바꾸며 응집력을 발휘하는 다저스가 됐다는 겁니다.
고비에서 얌전하게 물러나는 그런 팀이 더이상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요즘 팀 빌딩에 대해 일반 조직에서 강의를 할 때가 있는데 이런 내용들을 소개하곤 합니다.강팀은 만들어집니다.
다양한 캐릭터의 조합으로, 어떤 계기를 맞아 함께 싸워 나가면서 내부의 기운을 쌓아 갑니다.
그런 팀을 지켜보는 건 팬으로서 즐겁습니다.
한국코치협회 인증코치 김종문 coachjmoon 지메일 김종문은 중앙일보 기자 출신으로, 2011~2021년 NC 다이노스 야구단 프런트로 활동했다.
2018년 말 '꼴찌'팀 단장을 맡아 2년 뒤 창단 첫 우승팀으로 이끌었다.
현재 한국코치협회 인증코치(KPC)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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