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골프 역사상 가장 멋진 컨시드로 꼽는 전설 같은 옛일도 떠오르게 했다.
2024 한국여자골프투어(KLPGA투어) 위믹스 챔피언십 첫 날 경기에서 일어난 일이다.
박지영 선수와 박민지 선수가 17홀까지 올 스퀘어(A/S)를 기록하고 있었다.
올 스퀘어란 매치에서 두 선수가 비기고 있다는 뜻이다.
마지막 18홀에서 박민지 선수가 친 공이 핀에 제법 가까이 붙었다.
박지영 선수 공은 그 보다 멀리 떨어져 온 그린 했고.
물론 도저히 성공하지 못할 거리는 아니었다.
넣지 못하면 매치를 패할 확률이 높은 상황이었다.
박지영 선수가 주저하지 않고 친 공은 매끄럽게 구르더니 홀에 빨려 들어갔다.
이제 박민지 선수는 부담이 상당히 클 퍼팅을 남겼다.
보통 때라면 웬만하면 집어넣을 수 있어 보였다.
그래도 성공해야 매치를 비겨서 연장전에 갈 수 있는 승부 퍼팅이라면?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거리였다.
그 때 갑자기 박지영 선수가 박민지 선수에게 컨시드를 주었다.
뱁새 김용준 프로는 눈을 믿을 수 없었다.
툭 쳐서 넣을 수 있는 탭인 거리도 아닌데 컨시드를 준다고?
컨시드를 받은 박민지 선수도 선뜻 공을 집어 들지 않았다.
믿어지지 않아서 그랬을 것이다.
“넣을 수 있어?” “넣을 수 있어!”라는 대화가 오고 갔다.
그제서야 박민지 선수가 공을 집어 들었다.
물론 매치에서 한 번 컨시드를 주면 번복할 수 없다.
컨시드를 받은 쪽이 거절할 수도 없고.
둘은 그렇게 연장을 치렀다.
연장 결과는 중요하지 않았다.
두 사람이 주고 받은 컨시드는 수 십 년 전 일을 떠오르게 만들었다.
‘골프 역사상 가장 멋진 컨시드’를 말이다.
어떤 장면이었기에 골프 역사상 가장 멋진 컨시드로 꼽느냐고?
바로 그 이야기를 하겠다.
지금부터 55년 전인 지난 1969년 일이다.
뱁새가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이다.
뛰어다니던 시절 아니냐고?
뱁새가 그렇게까지 구식은 아니다.
아차, 이야기가 엉뚱한 곳으로 새면 안 된다.
그 해 디 오픈(The Open)은 영국 골프 세상이 잊지 못하는 대회이다.
1951년부터 그 전까지 무려 18년 동안이나 영국 선수가 디 오픈에서 우승을 하지 못했다.
그 때 혜성처럼 나타난 영국 선수가 토니 재클린(Tony Jackline)이다.
그는 잭 니클라우스나 아놀드 파머 같은 기라성 같은 선수를 꺾고 클라렛 저그(Claret Jug)를 거머쥐었다.
클라렛 저그는 디 오픈 우승컵이다.
토니 재클린은 그 때 스물 다섯 살이었다.
영국 골프 세상은 토니 재클린에 열광했다.
디 오픈이 끝나고 불과 두 달 뒤에 라이더컵을 열었다.
라이더컵은 미국과 유럽이 대표팀을 보내 겨루는 골프 대회이다.
그 해 개최지는 영국이었다.
토니 재클린을 보려고 매일 관중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마지막 날 마지막 경기가 바로 유럽팀인 토니 재클린과 미국팀인 잭 니클라우스의 매치였다.
그 해 라이더컵을 누가 가져갈지 그 경기에 달려 있었다.
얼마나 관심이 대단했는지 골프를 모르는 사람도 생중계를 볼 정도였다.
초반은 잭 니클라우스가 압도했다.
후반 들어 토니 재클린이 그림 같은 샷을 잇따라 선보이며 맹추격에 나섰다.
마지막 홀을 남기고 두 선수는 올 스퀘어를 이뤘다.
18홀에서 잭 니클라우스가 더 먼 거리인 파 퍼팅을 성공했다.
토니 재클린의 파 퍼팅은 1m 남짓이었다고 전한다.
결코 만만한 거리가 아니었을 것이다.
부담 탓에 말이다.
스타 플레이어로서 명성이 걸려 있는 퍼팅이었다.
라이더컵이라는 대회가 갖는 무게도 무거웠다.
이 매치에서 비겨야만 전체 경기를 비기는 상황이었다.
그 때 잭 니클라우스가 토니 재클린에게 말했다.
“토니!
나는 당신이 이 퍼팅을 놓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퍼팅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라고.
잭 니클라우스가 컨시드를 준 것이었다.
이 컨시드로 미국과 유럽은 사흘간 치른 혈투에서 비겼다.
라이더컵 최초로 나온 무승부였다.
당시 잭 니클라우스는 승부를 가리는 것 보다 더 큰 것을 생각했을 것이다.
골프 역사상 가장 멋진 컨시드가 바로 이것이다.
이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뱁새는 생각했다.
‘뱁새는 엄두도 못 낼 전설 같은 이야기’라고 말이다.
박지영 선수가 준 컨시드도 55년 전 잭 니클라우스가 준 컨시드 못지 않게 멋졌다.
얼씨구나 하고 바로 공을 집어 들지 않은 박민지 선수도 품위가 있었다.
뱁새라면 어땠을까?
과연 같은 상황에서 컨시드를 줄 수 있었을까?
첫날 매치를 이겨야 상금이 더 큰 그룹에서 둘 째날 경기를 치를 수 있는 상황인데 말이다.
은근히 컨시드를 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상대방(Opponent) 눈빛을 외면했을 것이다.
아니면 ‘언릉 쳐!’라며 쏘아 보거나.
멋진 컨시드로 골프 팬을 즐겁게 한 두 선수에게 박수를 보낸다.
뱁새 부친과 동갑인 잭 니클라우스와 그 보다 살짝 젊은 토니 재클린도 골프 세상이 영원히 기억하기를 바란다.
‘뱁새’ 김용준 프로와 골프에 관해서 뭐든 나누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메일을 보내기 바란다.
지메일 ironsmithkim이다.
김용준 KPGA 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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