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 현대자동차그룹 최초로 외국인 CEO로 선임된 호세 무뇨스(Jose Munoz) 현대차 신임 대표이사(사진)는 전형적인 영업통이다. 지난 20년간 해외 시장에서 일본차의 부흥을 이끈 인물로, 현대차의 직접적인 경쟁자인 일본 브랜드의 전략과 미국 시장 특성을 모두 파악한 해외 영업 전문가다. ‘트럼프 2.0 시대’에 현대차그룹 글로벌 대응 전략을 주도할 적임자로 평가되는 이유다.
무뇨스 현대차 신임 CEO는 16일 "직원과 고객, 딜러, 주주를 위해 일할 새로운 직책을 맡게 돼 영광"이라며 "현대차의 성장 궤도를 이어가는 한편 고객 서비스에 집중하고 고객의 기대치를 뛰어넘겠다"는 소감을 밝혔다.
1965년생인 무뇨스 CEO는 박사과정 및 사회 초년생 때까지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생활했다. 마드리드 폴리텍대학에서 원자핵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한 연구소에서 근무했다. 당시는 체르노빌 원전 사고로 원자력 발전 산업에 대한 미래가 불투명해지던 때였다. 통근 차량 구매를 위해 한 딜러를 소개받았는데, 그를 통해 자동차 산업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본격적으로 자동차 업계에 발을 들였다. 이때 소개받았던 여성 딜러는 현재 그의 아내다.
그의 대부분 이력은 일본 브랜드 해외영업 전문가로 요약된다. 1999년부터 5년간 도요타의 유럽법인 마케팅 담당으로 근무했으며 2004년부터 2019년까지 닛산에서 주요 경력을 쌓았다. 닛산 유럽과 멕시코 법인에서 근무했으며 닛산 북미법인장을 거쳐 전사성과담당(CPO) 겸 중국 법인장을 역임했다.
그는 호탕한 성격의 전형적인 영업맨으로 알려졌다. 평소 호방한 성격과 달리 업무 스타일은 상당히 까다롭다고 한다. 수치에 매우 밝고 목표 지향적이며 구체적인 보고와 지시를 선호한다. 스페인 출신에 미국 국적을 보유했지만 상하 서열이 엄격한 조직문화에 대한 이해도도 높다. 일본 회사에서 오랫동안 근무하면서 동양적인 관점에서 겸손의 문화, 조직에 대한 존중 등이 강한 편이다.
지난해 무뇨스 CEO는 비영리단체 코리아 소사이어티와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일할 때는 항상 주변에 도와주는 누군가가 있으며 개인은 시스템의 일부다. 조직에 녹아들면서 개인적 가치를 추구하고자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영업·마케팅 전문가로서 언론을 적절히 활용할 줄 안다. 방송·신문 인터뷰에 적극적으로 나서 회사의 전략과 방향을 설명하기도 한다. 최고책임자로서 조직에 대해 속속들이 답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반영된 결과다.
그는 20년 넘게 일본 기업에 근무하면서 현대차의 성장을 가까이에서 지켜봐 왔다. 마침 현대차에 합류하자는 제안이 왔고 흔쾌히 승낙했다. 그는 "현대차로의 이직은 (내 인생에서) 큰 결정이었지만 아주 쉬운 결정이었다"고 말했다.
무뇨스 CEO가 현대차에 합류한 시기는 ‘코로나 팬데믹’을 앞둔 2019년 4월이었다. 영입 당시에는 글로벌 운영책임자(COO)로 북미, 중남미 등 미주지역을 총괄하는 역할을 맡았다. 하지만 자동차 업계는 코로나 여파로 야심차게 준비했던 프로젝트가 줄줄이 연기되고 각국 완성차 공장 가동이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
무뇨스 CEO는 당시를 이같이 회고했다. 그는 "당시 재경본부에서는 모든 사업과 투자를 중단할 것을 권했다. 하지만 정의선 회장이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코로나 위기가 우리에겐 도전의 순간이자 기회가 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라고 말했다.
그룹 오너가 회사의 전략 방향을 세웠다면 실행은 임원을 비롯한 직원들의 몫이었다. 주간 단위로 생산 물량을 조절하면서 공장 가동을 유지했고 코로나 격리 기간이 길어지면서 어려움을 겪는 딜러들을 별도로 지원했다. 예정된 신차 출시 일정도 미루지 않고 그대로 강행했다.
그 결과 2022년 현대차그룹은 처음으로 글로벌 판매 순위 3위에 오르게 된다. 지역별로 놓고 보면 그룹 순위 상승의 ‘1등 공신’은 미국 시장이었다. 현대차 미국법인은 2021년부터 2023년까지 3년 연속 역대 최대 판매(소매 기준) 신기록을 썼으며, 매출은 최근 3년 사이 1.6배가량 늘었다. 그가 북미지역을 총괄한 5년간 현대차에서 미국지역이 차지한 매출비중은 19.9%에서 25.7%로 확대됐다.
실적은 곧 보상으로 이어졌다. 무뇨스 CEO는 현대차그룹에서 유일하게 성과급으로 자사주를 받는 임원이다. 최근 2년간 현대차는 RSU(양도제한조건부주식제도) 방식으로 1000만주의 자사주를 상여금 명목으로 지급했다. 이같은 RSU 계약은 무뇨스 CEO의 현대차 사업에 대한 자신감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현대차는 2017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를 기점으로 글로벌 포트폴리오에서 중국 비중을 빠르게 줄였다. 그 자리를 미국으로 채웠다. 특히 전기차와 하이브리드 등 미국 친환경차 시장에서 현대차 점유율은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올라오고 있다. 현대차·기아의 올해 1~3분기 미국 전기차 시장 점유율은 9.5%로 10%에 육박한다. 판매 순위로는 테슬라에 이은 2위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으로 미국 전기차 시장에 빨간불이 켜졌다. 14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트럼프 정권 인수팀은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 기반의 전기차 보조금 폐지 계획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차기 행정부의 ‘정부 효율부’ 수장에 선임돼 미국의 각종 산업 정책을 자문하게 됐다. 테슬라는 보조금 폐지가 테슬라보다 경쟁사에 더 큰 타격을 안겨줄 것이라며 폐지를 옹호하고 있다.
당장 현대차그룹이 126억달러를 쏟아부어 미국 조지아주에 건설한 전기차 전용 공장, 2개의 배터리 합작공장 가동에 비상이 걸릴 수 있다. 현대차는 하이브리드 차종의 혼류생산을 늘리는 등 생산 유연화로 적극 대응하겠다는 방침을 세웠지만 전략 수정을 위한 모든 결정이 무뇨스 CEO의 당면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가 무뇨스 CEO와 손발을 맞출 글로벌 대외 협력·전략 담당 사장으로 성 킴(Sung Kim) 전 주한 미국대사를 발탁한 것도 ‘트럼프 2.0 시대’의 불확실성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미국 외교 관료 출신인 김 신임 사장은 오바마·트럼프·바이든 정부에서 핵심 요직을 맡아왔다. 미국 중심으로 대외 네트워킹을 확장하며 새 정부와 소통을 강화하는 역할이 기대된다.
우수연 기자 yes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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