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1000원짜리 몇장 정도를 지니고 다닙니다. 갓 구운 붕어빵과 군고구마와 같은 겨울철 길거리 간식을 사 먹기 위해서지요. 1990년대 후반 1000원 한 장이면 붕어빵 열 마리를 살 수 있었습니다. 온 동네 친구들과 나눠 먹던 기억이 나네요. 2010년대 중반 들어 붕어빵은 1000원에 4마리로 가격이 올랐습니다. 올해 붕어빵 가격은 훌쩍 뛰어 1000원이면 혼자 배불리 먹기도 어렵게 됐습니다.
아시아경제가 불과 2년 전에 보도한 기사인데, 이마저도 격세지감입니다. 당근마켓이 공개한 붕어빵 지도를 따라 가보면 서울에선 보통 2000원에 세 마리를 살 수 있었습니다. 강남이나 여의도 같이 물가가 비싼 곳에서는 한 마리에 1000원, 1500원까지 받습니다. 물가가 고공행진 하면서 붕어빵도 사정을 이해하지만 겨울철 꽁꽁 얼어붙은 마음을 잠시나마 녹여주던 붕어빵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씁쓸하지 않을 수 없네요.
그럼에도 요즘은 갓 구워진 붕어빵을 맛볼 수 있는 '붕세권'에 산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랍니다. 과거 골목 귀퉁이만 돌면 볼 수 있던 붕어빵 노점상들이 날이 갈수록 찾기 어려워지니까요. 재룟값 상승에 수지타산이 안 맞아 장사를 그만둔 노점상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답니다.
서민 간식이던 붕어빵은 어쩌다 '금(金)'붕어빵이 됐을까요. 붕어빵을 만들려면 우선 밀가루, 팥, 기름 그리고 연료가 필요한데 모든 것이 올랐다는 설명입니다. 붕어빵에서 빠질 수 없는 팥부터 살펴보겠습니다. 한국물가정보에 따르면 11월 기준 국산 팥 가격은 40kg당 54만1783원인데요. 5년 전 36만7905원과 비교하면 47%가 올랐습니다.
팥 가격 급등은 '기후플레이션'과 무관치 않답니다. 싹 트는 시기부터 꽃이 피는 7~9월 폭염, 가뭄, 집중호우가 지속되며 팥 농사가 망하다시피 했답니다. 국산 팥 가격이 부담된 노점상들 대부분 수입산으로 갈아탔지만 이마저도 사정이 비슷합니다. 수입산 팥 가격은 11월 기준 40kg당 26만4550원인데요. 5년 전 17만3733원 대비 52%가 올랐습니다.
나머지 재료비 부담도 점점 커져가고 있는데요. 통계청에 따르면 밀가루와 식용유 가격도 전달 대비 5.1%, 5.9% 상승했다 하네요. 여기에 LPG 가스 가격까지 올라 붕어빵 한 마리에 1000원 시대가 열린 겁니다.
붕어빵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한국사의 애환이 느껴진답니다. 우선 붕어빵은 일본 도미빵 '다이야키'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합니다. 1900년대 일본에서는 밀가루 반죽에 팥을 넣고 구운 빵이 유행했는데, 그중에서도 값비싸 못 사 먹는 도미 모양 빵이 가장 인기였다네요. 도미빵은 일제강점기 한국에 들어왔는데요. 이름을 알린 것은 6.25 전쟁 이후 미국 원조로 밀가루가 보급된 이후로 알려져 있습니다.
동해를 건너며 도미빵에서 붕어빵으로 탈바꿈한 이 간식은 이후 수십년간 서민 먹거리로 자리 잡았습니다. 책 <붕어빵에도 족보가 있다: 한국인이 즐겨 먹는 거리 음식의 역사>에서 윤덕노 작가는 “붕어빵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부모, 형제가 겪어야 했던 수난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가깝게는 1960~70년대 산업개발 시대에 공돌이·공순이로 불리던 우리 부모, 형제들이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밥 대신 끼니를 때웠던 것이 붕어빵”이라고 기술했답니다.
가난과 맥을 같이 한 붕어빵의 인기는 1980년대 고급 간식이 등장하면서 시들했는데,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다시 전성기를 맞게 됩니다. 실업자들이 대거 붕어빵 노점상에 뛰어들면서 공급이 넘쳐났다고 합니다. 붕어빵이 굴곡진 한국 현대사를 대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제 한 마리에 1000원 하는 붕어빵은 과거와는 다른 위상입니다. 4인 가족이 두 마리씩 먹으려면 8000원을 써야해 서민 간식이라 쓰기도 애매해졌습니다. 하지만 뜨거우면서 바삭한 반죽에 달달한 팥소를 생각하면 맛있는 음식을 포기하기도 쉽지 않지요. 예전처럼 자주는 아니겠지만, '월요병' 타파를 위해 동네에서 속이 꽉 차기로 유명한 'OO쌀상회'의 붕어빵을 꼭 사먹어야겠습니다.
임온유 기자 io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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