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 허영인 SPC그룹 회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하기 위한 사법 절차에 돌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8일 법조계와 관련 업계에 따르면 허 회장 측은 이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부장판사 조승우)에 해외출장허가신청서를 냈다. 노동조합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됐다가 재판 중 보석 석방된 허 회장이 출국하기 위해선 법원으로부터 미리 허가를 받아야 한다. 허 회장은 현재 법률상 피고인 신분으로, 이 사건으로 불구속 재판을 받고 있는 상태다.
이번 신청서 제출은 SPC그룹 측이 보도자료를 내고 허 회장의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 초청 소식을 알린 직후에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SPC그룹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허 회장 측이 전날부터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 참석을 위한 준비에 나선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법원이 허 회장 측 신청을 받아들일지 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다만 해당 재판부가 지난해 11월에도 허 회장의 일본 출장을 허가한 전례를 고려했을 때, 이번에도 받아들이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우세하다. 허 회장의 일본행은 회사 차원의 출장이지만, 이번 미국행은 국익 성격도 띠면서다.
허 회장의 이번 미국행이 향후 공판 절차에 미칠 영향은 사실상 없을 것으로 보인다. 허 회장은 오는 21일(한국시간) 워싱턴DC에서 열리는 취임식에 참석한 뒤 미국 상·하원 의원들과 만날 계획인데, 이 기간 예정된 공판 일정은 없는 상태다. SPC 관계자는 "허 회장이 언제 출국해 귀국할지는 알 수 없다"면서도 "오는 15일과 다음 달 5일 예정된 공판에는 예정대로 출석할 계획"이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허 회장의 잇따른 출장길이 유죄가 인정될 경우 감형을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기업인의 경우 '경제 발전 기여'가 감형 사유로 인정된 판례가 있어서다. 대표적 사례는 2009년 납품업체 선정과 관련해 뒷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남중수 전 KT 사장 사건이다. 당시 항소심 재판부는 "국가 통신산업에 기여했다"는 이유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뒤집고 남 전 사장에 대해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익명을 요구한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사실상 기업이 국가 경제에 기여했다는 이유만으로 작량 감경해 주는 경우가 많이 줄긴 했지만, 현재 대한민국이 처해 있는 상황은 특수한 상황"이라면서 "향후 재판 과정에서 '출장길은 우리 경제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행보로, 형량에 참작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식의 전략을 펼 수도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 2기 출범을 앞두고 내란 사태와 탄핵 정국 등 국정 공백이 이어지면서 기업인의 한미 가교 역할이 절실한 상황을 활용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앞서 허 회장은 SPC 자회사인 피비파트너즈 내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파리바게뜨지회가 사측에 비판적인 활동을 이어가자 2021년 2월∼2022년 7월 이 지회 소속 조합원 570여명에게 노조 탈퇴를 종용한 혐의로 지난해 4월 구속기소됐다. 이후 허 회장은 지난해 7월 건강상의 이유로 재판부에 보석을 신청했으나, 한 차례 기각된 바 있다. 당시 허 회장 측이 제기한 보석 청구 사유는 '공황장애'였다.
허 회장은 지난해 9월 "75세 고령으로 5개월 넘게 구금생활을 했다"는 점을 들어 재차 보석을 청구했고,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였다. 허 회장은 보석 석방 후 3개월 만에 일본 출장길에 올랐다. 당시 출장길은 일본업체와 제빵기술 협의를 위한 일정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조성필 기자 gatozz@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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