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
지난해 투자 수익률 성적표를 보고 낙담한 투자자가 많습니다. 국내 증시에 비중을 크게 뒀다면 특히 더 그럴 겁니다.
“왜 내가 사는 주식은 꼭 떨어질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차라리 원숭이가 아무렇게나 고른 주식의 투자 수익률이 더 좋은건 아닐까. “
이런 생각도 무리는 아닙니다. 실제로 실험이 있었습니다.
미국 경제매체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000년 재미있는 실험을 진행합니다. 원숭이와 인간의 주식대결입니다. 전문 투자자는 냉철한 이성과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투자 종목을 골랐습니다.
반면 원숭이는 신문에 실린 주식시세표에 무작정 다트를 던져 종목을 골랐죠. 전문 투자자의 수익률은 -13.4%, 원숭이의 수익률은 -2.7% 였습니다. 모두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하긴 했지만, 승부를 따지자면 원숭이의 승리였습니다.
2002년 영국에서도 비슷한 실험이 진행됐습니다. 참가자는 5살 아이, 점성술사, 투자전문가였죠. 5살 아이는 회사 이름이 재미있거나, 자기가 좋아하는 제품을 만드는 회사를 골랐습니다.
점성술사와 투자전문가는 각각 자신의 지식과 경험에 기대어 종목을 골라 투자했죠. 투자 전문가의 수익률은 -46.2%, 점성술사는 -6.2%였습니다. 5살 어린이는 무려 +5.8%를 기록했죠.
누구나 주식시장을 예측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누구나 알다시피, 현재까지 그건 불가능합니다. 위 사례가 증거죠. 인간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존재이지만, 동시에 편향적이고 충동적입니다. 종목 본연의 가치는 외면한 채 시장 추세와 분위기만 보며 종목을 탐욕적으로 고릅니다. 한편으론 공포에 휘말려 팔지 않아야 할 순간에도 다 팔고 도망치기도 하죠.
그래서 인간의 약점을 보완할 투자 방법을 찾곤 합니다. 내 초라한 투자 성적표를 확 바꿔줄 그 무언가요. 지금 우리는 얼핏 그 방법을 찾은 것 같기도 합니다. 인공지능(AI)이죠.
블랙록(BlackRock)은 2018년 생성형AI 연구소를 공식 출범합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이곳의 최고운영책임자(COO) 로버트 골드스타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생성형AI는 회사 운영방식, 인재 전략, 그리고 전반적인 전략과 관련해 엄청난 힘을 갖고 있다. 이는 완전히 새로운 세계다.”
블랙록은 로보어드바이저 회사 퓨처어드바이저를 인수하고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로보어드바이저란, 투자에 관한 전반의 결정을 직접 처리하는 프로그램 또는 컴퓨터를 말합니다. 로봇과 어드바이저의 합성어죠. 투자자가 자신의 투자 성향, 목표 수익률 등을 설정하면 그에 맞춰 자산을 운용합니다. 월가를 비롯해 전세계 투자 현장에 AI는 매우 깊숙한 곳에 들어와 있습니다.
세계적 투자은행 골드만삭스가 AI 투자 분석 프로그램 ‘켄쇼(Kensho)’를 도입한게 2017년입니다. 이후 600명에 달하는 애널리스트를 해고했죠. AI 투자분석 프로그램을 관리할 수 있는 엔지니어 2명만 남겼습니다. 켄쇼는 15명이 한 달 매달려야 할 일을, 단 5분 만에 처리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 같은 성과에 확신을 가진 골드만삭스는 아예 스스로를 ‘AI 기업’이라 선언했죠.
로보어드바이저의 성장세는 주목할 만 합니다. 코스콤에 따르면 2024년 7월 기준 국내 로보어드바이저 계약자 수는 총 31만7434명으로 지난 2017년(3만8707명)보다 10배 늘었습니다. 운용금액은 2017년 4219억원에서 8784억원으로 2배 가까이 늘었죠.
젊은 세대, 향후 자산 시장을 이끌어갈 MZ세대의 신뢰도도 낮지 않습니다. 자산운용사 뱅가드가 실시한 2020년 조사에서 Z세대(1997~2002년생)와 밀레니얼 세대(1981~1996년생)는 각각 49%, 47%가 “로보어드바이저를 신뢰할 수 있다”고 답했습니다. 이는 X세대(1965~1980년생)와 베이비부머(1956~1964년생) 세대보다 20~30%가량 높은 수치죠.
그러나 ‘투자천재 AI’에 대한 기대감이 부풀어 오르고 있는 지금, 어쩌면 거품의 가능성을 확인해야 하는 시점인지 모릅니다.
머신러닝과 최첨단 알고리즘을 통해 글로벌 주식시장을 예측하고, 성공적인 투자전략을 소개한다는 기업이 있었습니다. 헤지펀트 센티언트엔비스트먼트매니지먼트는 2016년 AI를 활용한 투자전략으로 주목을 받았죠. 2017년 4%의 수익률을 기록했던 이 회사는, 2018년에는 수익을 내는데 실패합니다. 운용 자산 규모는 1억 달러 미만에 그쳤죠. 결국 펀드설립 2년만에 펀드는 청산됩니다. AI 기반 투자의 한계와 어려움을 보여주는 사례로 남았죠.
국내에서는 아예 사람과 AI가 주식 투자 대결을 펼쳤습니다. 주식투자 AI와 ‘슈퍼개미’ 마하세븐이 2021년 펼친 대결입니다(SBS ‘세기의 대결-AIvs인간’ 편).
마하세븐은 100만원으로 10년만에 70억원을 만든 투자 고수로 유명했습니다. 각각 투자금 1억원을 갖고 총 4주에 걸쳐 진행됐습니다. 첫째주에는 AI가 높은 수익률을 냈죠. 그러나 2주차부터 판도가 바뀌었습니다. 최종 결과는 인간의 승리였죠. AI는 -0.01%, 인간은 +40.4%의 성적표를 받아들었죠. 원숭이도 인간보다 투자 수익률이 낫다는데 하물며 AI는 어떨까,라는 막연한 생각은 이처럼 위험합니다.
OO가 인간보다 낫다는 식의 뉴스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첫번째 함정은 투자 수익률 대결은 대체로 ‘단기적’이라는 겁니다. 단기간 투자에선 ‘운’의 영향이 매우 크게 작용합니다. 반대로 장기 투자는 운의 영향이 줄어들죠. 큰수의 법칙이 작용합니다.
또한 ‘뉴스’의 특성도 고려해야 합니다. 사람이 원숭이보다 똑똑하다면, 뉴스가 아니죠. 원숭이가 사람보다 낫다는 소식만 뉴스가 됩니다. ‘OO와 인간의 주식투자 대결’은 아마 매우 많이 이뤄졌을 겁니다. 그리고 걔중에서 인간이 패배한 그 실험만이 뉴스가 되었을 겁니다.
‘원숭이가 펀드매니저를 이겼다'는 실험의 함정처럼, ‘AI가 내 투자금을 불려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은 경계해야 합니다. 투자 실험의 결과는 흥미롭지만, 이것이 전문적인 투자 분석과 리서치가 무용하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는 투자자들에게 시장의 불확실성을 겸손하게 받아들이고, 분산투자와 장기투자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글로벌 금융사들이 AI를 도입하는 방식을 보면, ‘AI vs 인간’이 아닌 'AI와 인간의 협업'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AI는 방대한 데이터 처리와 패턴 분석에서 뛰어납니다. 24시간 시장을 모니터링하고, 수많은 지표를 동시에 분석할 수 있죠. 반면 인간은 거시적 통찰력, 시장 심리 파악, 위기 대응에서 강점을 보입니다. 예측불가능한 상황에서 유연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것은 여전히 인간의 영역입니다.
성공적인 AI 도입을 위해서는 몇 가지 원칙이 필요합니다. AI는 보조 도구로 활용하되, 최종 의사결정은 인간이 관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리스크 관리와 장기적 전략 수립에서 인간의 경험과 직관은 여전히 중요합니다. AI 시대의 진정한 경쟁력은 기술과 인간의 지혜를 조화롭게 결합하는 능력에 달려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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