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 "약사에게 알약을 일일이 세는 일은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드는 괴로운 작업입니다. 인공지능(AI)이 이 일을 대신 해줄 수 있습니다." 알약 세기는 약사에게 '중노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알약을 세는데 따로 업무 시간을 할애하거나 야근까지 하는 경우가 흔하다. AI스타트업 '메딜리티'는 이처럼 알약을 세는 번거로운 작업을 AI가 해주는 애플리케이션 '필아이(Pilleye)'를 출시했다.
지난 5일 만난 박상언 메딜리티 대표는 10년 넘게 약국에서 일한 베테랑 약사다. 박 대표는 약국 경험을 쌓으며 조제와 환자 응대보단 알약 세는 속도가 약사의 능력을 결정짓는다는 게 문제라고 느꼈다. 박 대표는 "약사는 약물 재고를 관리해야 해서 알약을 매번 세야 하는데, 이런 가욋일 탓에 손님에게 복용법을 차근차근 설명해줄 시간이 부족한 실정"이라며 "알약을 세는 일에 AI를 적용하면 시간도 절약하고 오차도 줄일 수 있다"고 했다.
메딜리티는 AI를 기반으로 한 영상분석기술인 '비전AI'를 써서 필아이를 제작했다. 필아이는 카메라로 특정 공간에 있는 알약이 몇 개인지 셀 수 있다. AI는 조명, 알약의 모양, 색을 고려해 작업한다. 1초에 10번씩 세어보는데 이런 과정은 오차를 줄이고 정확도를 높여준다.
앱이 설치된 휴대폰이나 태블릿PC로 알약을 찍으면, 이미 셈이 끝난 알약에는 초록 점이 표시된다. 이를 통해 약사는 AI가 알약 개수를 제대로 파악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알약이 아닌데 초록 점이 있거나 알약에 초록 점이 없는 경우 수치를 바로잡을 수 있다. 알약을 잘못 세서 발생할 수 있는 약물 오남용을 막기 위한 장치다.
2020년 11월, 사진을 기반으로 한 '필아이 포토'를 출시한 뒤, 지난해 10월에는 영상을 보고 분석하는 '필아이 라이브'도 내놓았다. 글로벌 220개국에 진출했고 가입자는 70만명을 넘어섰다. 특히 북미 지역에서 가장 인기가 높다. 북미는 대형약국 또는 기업형 약국이 많고 알약을 플라스틱 약통에 대량보관하는 벌크 포장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메딜리티는 알약을 대신 세어 주는 걸 넘어, AI가 알약의 성분과 효과를 분석해 자동으로 분류하는 조제 기술개발도 계획하고 있다. 이렇게 조제를 지원하는 동시에 약 개수까지 파악하면 약사의 업무 효율성을 더 높일 수 있다.
박 대표는 "약국을 환자 케어 중심 공간으로 재정의하는 게 목표"라면서 "보통 약국은 처방전을 내고 약만 받는 곳이라는 인식이 있는데 불필요한 업무를 줄여 약사가 환자를 응대하는 일에 몰두할 수 있도록 하고 싶다"고 했다.
이정윤 기자 leejuyo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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