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 남들보다 감각이 예민하다고 느낄 때 있으신가요. 일상에서 소리나 빛, 냄새, 촉각, 맛 등 오감이 과도하게 반응해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있는데요. 이런 증상을 의학 용어로 '감각과민'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사실 새 옷 뒤 목에 붙은 상표도 그 존재를 신경 쓰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이 가렵고, 따갑고 불편하지 않습니까. 이분들은 일상에서 이러한 불편을 자주 겪지만 다른 사람들은 '신경질적이다', '예민하다'고 말해 고통을 호소하기 어렵다는데요.
일본에서는 이 감각과민 관련 사업을 펼친 학생 사업가가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번 주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 인터뷰에도 등장했는데요. 감각과민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옷을 만들고, 감각과민이 심한 곳을 알려주는 지도를 만드는 일 등에 힘쓰고 있는 18세 연구소장입니다. '1mm의 안심으로 100km의 자유를'이라는 슬로건으로 사업을 펼치고 있다는데요. 본인이 느낀 불편함을 모두를 위한 공익사업으로 살린 카토 지에이씨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올해 18세인 카토씨는 원래부터 로봇 엔지니어를 꿈꾸는 등 과학에 관심이 많았는데, 이를 활용한 창업을 하는 것이 꿈이었다고 합니다. 이를 통해 중학교 1학년 때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창업했는데요. 당시 만 12세 나이로는 법인 등기에 필요한 인감 증명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부모님을 대표이사, 본인을 사장 자리에 두고 법인을 설립했습니다. 회사를 시작한 이후 아이템을 고민하던 중, 아버지는 "네가 곤란한 것을 해결하는 회사로 만들어보는 것은 어떻겠느냐"라고 제안하게 되죠.
실제로 카토씨는 당시 일상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합니다. 식당이나 교실에서 점심을 먹고 난 뒤에 남는 음식 냄새를 맡으면 컨디션이 급격히 안 좋아지고, 이 때문에 음식을 잘 먹지도 않고 카페나 식당에 가지도 않았는데요. 학교에서는 쉬는 시간에 친구들이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를 들으면 두통이 생기거나 구역질이 났다고 합니다. 옷도 무겁게 느껴지고 양말을 신어도 끝 솔기가 아프게 찌르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불편을 겪었다고 하는데요. 이 때문에 새 옷을 입는 것을 정말 힘들어서 속옷도 4~5년을 같은 것만 입었을 정도라고 합니다. 결국 쉬는 시간 학교 소음에 두통을 심하게 느껴 보건실을 찾아간 카토씨는 '감각과민이 의심된다'라는 보건실 선생님의 말씀을 듣게 됩니다. 이후 증상이 일치한다는 것을 알게 된 카토씨는 본인이 예민한 게 아니라 감각과민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죠.
그렇게 일상의 곤란함을 해결하기 위해 감각과민과 관련된 아이템으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고 생각한 카토씨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활용합니다. 감각과민인 사람들 커뮤니티를 만들게 된 것인데요. 큰 소리가 싫어 마트에 갈 때 귀마개를 하고 간다는 사람, 선글라스를 쓰지 않으면 어두운 방에서도 빛 때문에 두통을 느끼는 사람 등 다양한 사람이 있었다고 합니다. 특히 주목한 것은 카토씨와 비슷하게 옷을 입을 때도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었는데요. 이를 고려해 감각이 예민한 사람을 위한 편안한 옷 개발에 나서게 됩니다.
그렇게 만든 대표 상품이 '캄다운 파카'인데요. 1년 가까이 기획해서 만든 후드집업입니다. 피부 자극을 주지 않기 위해 옷 솔기는 안이 아니라 바깥쪽으로 처리하고, 목 등에 붙는 태그는 붙이지 않았다고 해요. 또 지퍼를 위로 전부 올리면 코 위까지 덮을 수 있는데, 이는 냄새에 의한 자극을 막아주는 것이라고 합니다. 후드 부분도 매우 큰데, 예기치 못하게 공황발작이 발생했을 때 얼굴까지 덮어 안정을 찾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2022년 출시 이후 누적 900벌 생산했을 정도로 꾸준히 입소문을 타고 있다는데요.
여기에 학생복 업체와 공동으로 셔츠도 개발하고 온라인 스토어에서는 어린이용 귀마개,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개인 텐트 등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사업과 함께 고민을 나누는 커뮤니티도 계속 발전시켜, 지금은 1700명이 참여할 정도로 성장했다고 하네요. 참가자들은 연구소에서 개발한 상품 모니터링에도 기꺼이 나서준다고 합니다.
단순히 물건 판매만 나서는 것을 넘어 감각과민인 사람이 편하게 살 수 있는 사업에도 힘쓰고 있는데요. 오감에 친화적인 도시 만들기에도 나서고 있습니다. 요즘은 공항 등 사람이 많이 다니는 장소에 불안을 잠재우는 공간으로 설치되는 '캄 다운 스페이스'의 설계를 맡고 있는데요. 단순히 소음만 줄이는 것이 아니라 들어오는 빛의 양, 마음을 안정시키는 조명 색상 등을 고려해 세심하게 설계하고 있다고 합니다.
여기에 올해 봄까지는 지도 서비스도 제공할 계획입니다. 자극에 민감한 사람에게는 외출했을 때 느끼는 간판의 강한 빛, 소리, 냄새는 모두 불안을 촉발하는 원인이 되죠. 지도에 특히 시끄러운 장소, 눈부신 장소의 정보를 게시해 주의를 환기하고, 반대로 불안이 촉발됐을 때 잠깐 식힐 수 있는 조용한 장소, 안정을 취할 수 있는 곳의 정보도 지도에 표시해 알릴 예정이라고 하네요. 개발비는 크라우드 펀딩으로 모아 충당했다고 합니다. 이 밖에도 대학과 손을 잡고 감각과민 연구에 함께 나서고, 감각과민을 진단할 수 있는 문진표를 공유하는 등 여러 분야에서 힘쓰고 있죠.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감각과민과 관련한 사업이 주목받지 못하고 있지만, 사실 세계적으로 오감이 편안한 장소 만들기에 대한 관심은 높아지고 있습니다. 미국 월마트는 지난해 11월부터 '센서리 프렌들리 아워'를 도입해 매일 조명을 끄고 광고하는 TV 화면을 정지하는 시간대를 만들었죠. 일본에서도 야마다전기 등에서 월 2회 매장 내 배경음악을 끄고 부분 소등하는 '콰이어트 아워'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카토씨의 비즈니스가 참 기발하고도 신기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카토씨는 홈페이지 소개에서 "저는 아이디어, 인맥, 자금 등 여러 가지가 부족하니 힘을 보태주세요"라며 "나의 한 걸음으로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의 생활을 조금이라도 쾌적하게 할 수 있다면, 한 걸음 두 걸음이라도 앞으로 나아가고 싶습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벌써 미래가 기대되는 사업가네요.
전진영 기자 jintonic@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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