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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관세폭탄]②"韓 온실가스 감축목표 美 보다 높아"‥규제의 '관세화'
    입력 2025.02.17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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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시아경제 ]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가 관세 압박을 통해 한국 정부에 환경 및 화학물질 규제 완화 등 산업 정책 변화를 구체적으로 요구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국내 업계뿐 아니라 관계 당국도 대응에 고심하고 있다. 특히 한국의 배출권 거래제(K-ETS), RE100(재생에너지 100%) 정책, 화평법(화학물질 등록·평가법) 등이 미국 기업에 불리하게 작용한다는 점을 문제 삼을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선제적인 규제 완화 카드도 거론될 전망이다.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가 언급한 가장 대표적인 규제는 높은 수준의 온실가스 배출량이다. 한국은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온실가스 배출량을 40% 감축하는 목표를 설정했는데, 이는 미국의 감축 목표(30~35%)보다 높다. 미국 기업들은 이런 규제가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특히 배출권 거래제(K-ETS)와 관련해 미국 측은 외국 기업이 국내 기업보다 불리한 조건을 적용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국내에 생산시설을 보유한 현대제철, 포스코 등 철강 기업은 정부로부터 일정 부분 무상 배출권을 할당받는다. 반면 미국계 철강업체인 누코(Nucor)나 US스틸 같은 기업들은 한국 내 생산시설이 없다는 이유로 무상 배출권 할당 대상에서 제외된다. 같은 철강 제품을 한국에서 판매할 때 국내 기업 보다 높은 탄소 배출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만큼, 이를 관세로 매겨 미국으로 수출하는 우리 기업들에 부과할 수 있는 것이다.

RE100 정책도 미국 기업들의 불만이 제기되는 분야다. 애플, 마이크로소프트(MS), 테슬라 등 RE100을 채택한 미국 기업들은 한국에서 신재생에너지 공급이 부족해 목표 달성이 어렵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구글과 MS는 데이터센터 운영에 필요한 대규모 전력을 재생에너지로 충당해야 하지만 한국에선 신재생에너지 발전량이 한정돼 한전이 공급하는 전력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PPA(전력구매계약)를 통한 직접 재생에너지 구매가 어려운 점을 문제 삼으며 한국 정부가 관련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화평법도 미국 기업들이 개선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은 분야다. 듀폰, 다우, 3M 등 글로벌 화학 기업들은 화평법이 화학물질 등록 절차를 지나치게 까다롭게 만든다고 지적한다. 특히 외국 기업에 국내 대리인 지정 의무를 부과하는 점은 부담이라는 입장이다. 예를 들어 한국 시장에 진출한 미국 화학 기업들은 자사 제품을 유통하기 위해 별도의 대리인을 지정해야 하고 등록 과정에서 기밀 정보(원료 배합비, 제조 공정 등)를 정부에 제공해야 한다. 이에 따라 한국에서 제품을 출시하기 위해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며 기업 기밀 유출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 기업들은 미국의 요구를 그대로 수용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배출권 거래제와 관련해 국내 기업들은 이미 감축 목표 달성을 위해 상당한 비용과 노력을 투입하고 있는 만큼 미국 기업들에만 예외를 적용하는 건 형평성에 맞지 않다고 본다. RE100 정책 역시 특정 국가의 요구만 반영할 수 없는 사안이라는 의견이 많다. 화평법 개정에 대해선 기업 기밀 보호 강화를 위한 조치는 가능하지만, 대리인 지정 의무 폐지는 소비자 및 환경 안전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는 점에서 유지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화학업계 관계자는 "RE100과 탄소배출 규제는 글로벌 트렌드에 맞춘 정책"이라며 "미국이 이를 문제 삼아 완화를 요구하는 건 국제 무역 환경을 고려했을 때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미국 기업에만 예외를 적용하면 국내 기업들에 불리한 조치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비관세장벽 철폐 요구가 구체화하면 철강업계에도 상당한 부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압박이 현실화할 경우 우리 정부 입장에선 일부 규제 완화를 검토할 가능성이 있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압박에 대응하려면 국제 협력을 강화하고 형평성 논리를 활용하며 협상 카드를 적절히 조율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EU·일본과 협력해 한국의 환경 정책이 글로벌 기준과 조화를 이루고 있음을 강조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정부도 의중 파악에 나섰다. 환경부 당국자는 "배출권 거래제 등은 유럽에서 훨씬 앞서가고 있으며 한국 역시 글로벌 트렌드에 맞게 가고 있다"며 "수입차 기준도 한국이 까다롭다지만 미국의 특정 주(州)는 훨씬 엄격한 기준을 세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현재로선 부처별·품목별로 개별 메시지를 내기보다 미국의 진의를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며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통상 당국을 중심으로 긴밀히 협의하겠다"고 말했다.

조성필 기자 gatozz@asiae.co.kr박준이 기자 giver@asiae.co.kr장희준 기자 junh@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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