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 정부가 중국산 철강 후판에 최대 38%의 잠정 덤핑 방지 관세 부과해야 한다고 예비 판정하자 철강업계는 "국내 산업의 보호 필요성이 입증된 조치"라며 반겼다. 그동안 철강사들은 세계 경기 불황 속에서 전방 산업의 부진과 중국산 저가 제품 공세로 대대적인 감산에 들어가는 등 부침을 겪어왔다. 하지만 이번 조치가 수익성 개선의 단초가 될 것이란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한 철강업계 관계자는 산업통상자원부 무역위원회가 20일 중국산 후판에 대해 27.91%~38.02% 잠정 덤핑 방지 관세 부과를 기획재정부 장관에 건의하기로 결정한 직후 본지와 통화에서 "국내 철강시장의 실질적인 피해가 확인된 상황"이라며 "가격이 싼다는 이유로 중국산을 쓰던 수요기업들이 국산을 쓰겠다며 다시 주문을 돌릴 가능성이 생겼다"고 말했다.
두께 6㎜ 이상으로 두꺼운 철판인 후판은 국내 유통량의 절반 이상이 선박 제조용으로 활용되고 나머지는 교량과 플랜트 등 건설 자재로 주로 쓰인다. 중국산 후판 공급과잉으로 국내 시장에 저가재가 범람하면서 후판 가격을 같이 떨어뜨려 국내 업계는 악화 기로를 걸어야 했다. 일부 철강사의 경우는 수익성 악화가 지속되자 후판 공장 문을 닫는 등 생산을 줄이기도 했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국내 후판 수요는 780만t으로, 이 가운데 중국산 후판 물량은 138만t(스테인리스 후판 포함)에 달했다. 중국산 공세는 2022년 81만t에서 2023년 130만t으로 60.5% 늘어나는 등 매년 증가 추세를 보여왔다. 특히 중국산 후판 가격은 국산에 비해 30%가량 저렴해 국내 건설·조선업계에서 찾는 비중이 높았다.
철강업계는 잠정 과세 부과의 필요성을 어필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철강에 25% 관세를 부과하기로 하면서 미국 수출길이 좁아진 중국산 물량이 더 싸게 한국 시장으로 쏟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현재 세계적인 보호무역 주의가 국가별로 강화되고 있는 가운데 보호장치가 없는 우리나라로 후판 제품의 유입은 당분간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며 "잠정 부과는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라고 했다.
우리나라의 덤핑 방지 관세 부과 체계는 산업부 무역위가 조사를 거쳐 건의하고, 기재부가 이를 집행하는 체계로 되어 있다. 덤핑 방지 관세는 외국 기업이 자국 판매 가격보다 낮은 가격에 해당하는 덤핑으로 상품을 수출했을 때, 해당 수출품에 추가 관세 격인 반덤핑 관세를 부과해 국내 산업을 보호하는 조치다. 기재부가 이날 무역위 건의를 받아들일지 여부는 1달 안으로 결정된다.
철강업계에선 그동안 관세 부과뿐만 아니라 관세율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가격이 30%가량 차이 나는 상황에서 10% 관세를 매긴다면 큰 의미가 없다는 얘기였다. 업계에서는 향후 기재부가 무역위가 건의한 최대 38% 관세 부과하기로 결정하길 기대하고 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최대 38%로 결정된다면 상당히 강한 조치로 해석할 수 있다"며 "후판 가격을 합리적으로 조정할 수 있게 되면서 중국산을 쓰던 수요기업과의 협상력 또한 올라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고 했다.
다만 최근 '슈퍼사이클'을 맞은 조선업계에서는 이번 조치에 대해 우려를 내비치고 있다. 지난해 중국 조선소의 글로벌 수주 점유율이 71%로, 한국을 크게 앞선 상황에서 자칫 재도약을 시도하는 한국 조선업계가 또다시 발목을 잡힐 수 있다는 얘기다. 한 조선업체 관계자는 "후판은 선박 제조원가의 20%를 차지하고 있어 수익성과 직결된다"며 "반덤핑 관세로 중장기적으로 후판 가격 상승이 예상되며 이는 중국과 경쟁해야 하는 국내 조선사들의 원가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성필 기자 gatozz@asiae.co.kr오지은 기자 joy@asiae.co.kr
최신순
추천순
답글순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