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 중국산 열연 후판에 대해 최고 38%의 반덤핑 관세 부과가 필요하다고 예비판정한 산업통상자원부 무역위원회가 이르면 다음 주 중국산과 일본산 열연강판에 대해서도 반덤핑 조사에 착수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산 후판처럼 저가 공급에 따른 국내 철강 산업 피해 여부를 살펴보겠다는 것이다. 다만 중국산 후판 관세 부과 결정에 환영 의사를 밝힌 것과 달리 국내 철강사들은 강판 조사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있어 배경에 관심이 모아진다. 일각에선 철강업계 내 이견으로 조사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21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국내 강판 생산기업인 현대제철은 지난해 12월 중국과 일본이 열연강판을 비정상적으로 싼값에 공급하고 있다며 무역위에 제소했다. 하지만 또 다른 메이커인 포스코는 현대제철과 달리 중립적인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포스코 입장이 관심을 끄는 건 반대할 경우 현대제철의 제소와 관계없이 조사가 종결되는 구조 때문이다. 조사는 예비조사와 본조사로 나뉘어 진행된다. 예비조사 단계에서 무역위는 공급사들의 50% 이상 동의를 구한다. 현재 국내 열연강판 메이커는 현대제철과 포스코 두개사다. 한쪽이 반대하면 조사를 할 수 없는 이유다. 결국 열연강판의 반덤핑 규제의 키는 포스코가 쥐는 것이다. 포스코 관계자는 "조사 착수 발표 시점까지 밝힐 입장은 없다"고 말을 아꼈다.
포스코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건 거래처와 관계 때문으로 풀이된다. 현대제철은 현대차·기아라는 거대 고객사를 확보한 반면 포스코는 일본 수출 비중이 20%에 달한다. 일본산 열연강판 반덤핑 규제에 직접적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 영업이익률도 차이가 있다. 포스코는 지난해 영업이익률이 3.92%였던 반면 현대제철은 1.4%에 그쳤다.
열연강판은 쇳물로 만든 평평한 판재인 반제품(슬라브)을 높은 온도로 가열해 3㎜ 두께로 가공한 강판을 말한다. 냉연강판을 비롯해 도금강판, 컬러강판, 강관 등 대다수 판재류의 기초 철강재로 쓰인다. 국내에서는 포스코와 현대제철 등 고로사가 생산하고 동국제강과 세아제강 등 후공정 업체가 가공해 제품을 팔고 있다.
업계에선 포스코와 현대제철이 연간 생산하는 열연강판 물량이 약 3000t으로 추정한다. 포스코와 현대제철은 이 가운데 70% 이상을 자체 사용하고 나머지를 후공정 업체에 넘기는 구조다.
현대제철은 후공정 업체에 넘기는 열연강판(t당 80만원 초반)이 저가 일본산·중국산(70만원 중후반)과 가격 경쟁력에서 밀리는 만큼 규제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회사 관계자는 "후공정 업체와 상생해야 하는 것은 알지만 일본과 중국에서 너무 싸게 들어오니 시장이 교란되고 업황이 점점 악화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포스코 뿐 아니라 후공정 철강 업체들의 반발도 변수다. ‘반(反)현대제철’을 기치로 연합 전선을 구축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업계 관계자는 "수출을 위해선 구매처 다변화를 통해 잘 협상해야 한다"며 "트럼프발 관세 부과로 가격 경쟁력을 갖춘 제품 중심으로 수출을 더 늘려야 할 처지인데, 중국과 일본산 열연강판에 반덤핑 조사를 한다는 건 2차 전지 회사가 리튬 수입을 안 하겠다는 얘기와 같다"고 말했다.
현대제철의 제소가 세계적 흐름과 동떨어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유럽연합(EU)는 2011년 가공 열연강판인 컬러강판에 대해 먼저 관세를 부과했고 2021년 도금강판에 이어 지난해 6월에 이르러서야 열연강판에 대해 반덤핑 규제를 시작했다. 기초소재부터 반덤핑 규제를 하게 된다면 원재룟값 상승으로 제품의 가격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조성필 기자 gatozz@asiae.co.kr오지은 기자 jo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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