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세계 각국을 상대로 관세도입을 예고하며 글로벌 공급망 교란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정부가 해외에서 5억달러(약 7130억원) 규모의 '공급망 외화채권' 발행에 나선다. 정부가 공급망 채권이라는 이름으로 해외에서 자금 조달에 나서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부의 신용도를 바탕으로 한 정부보증채로 발행되는 사실상 첫 외화채권이다. 통상 환경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공급망 수요국인 우리나라의 공급망을 안정화하고 위기 대응력을 높이는 데 필요한 달러 유동성 확보 재원으로 쓰일 것으로 보인다.
25일 관계 부처 등에 따르면 정부는 만기 10년물 이하의 달러표시 공급망 기금 채권을 5억달러 규모로 발행한다. 발행 주체는 수출입은행으로, 발행 시점은 2분기를 목표로 한다. 공급망 채권은 미국·유럽·중동·아시아 등 전 세계 금융시장에서 해외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발행된다. 이를 위해 JP모건 등 해외 기관 총 3곳을 발행 주관사로 선정했다. 채권 발행으로 유입될 자금은 국내 기업들의 공급망 사업 관련 대출 자금 지원에 쓰일 예정이다. 반도체나 이차전지 소재 등 정부가 정한 경제안보핵심 품목을 확보하고 수입처를 다변화하려는 기업이 지원 대상이다. 정부 관계자는 "발행 여건에 따라 구체적인 발행 시점은 유동적이지만 첫 발행 시기는 늦어도 상반기 중으로 예상한다"며 "올해 발행 결과를 보고 1년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발행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수출입은행은 해외 투자자들과의 접점을 늘리며 발행 성공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수출입은행 자금시장단은 앞서 지난해 11월 말 영국 런던을 돌며 유럽계 투자자들과 만났고 12월 비상계엄 사태 직후에는 홍콩과 싱가포르에서 글로벌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투자설명회(IR)를 열었다. 조인선 수출입은행 자금시장단 공급망기금자금팀장은 "12월 계엄 사태 직후 대외신인도에 대한 우려 제기에도 불구하고 해외 투자자들의 관심이 높았다"며 "사실상 정부보증 외화채의 첫 데뷔라는 점에서 해외 기관투자가들의 관심이 특별히 높았던 것 같다"고 전했다.
공급망 채권은 대한민국 정부가 원리금 상환을 보증하는 정부보증채로 발행된다. 과거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하나은행의 정부보증채 발행이 한 차례 있었지만 당시엔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민간이 발행 주체였던 만큼 사실상 이번이 첫 정부보증 외화채 발행 시도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최근 원화표시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을 발행할 당시에도 외국 중앙은행들이 높은 관심을 보이는 등 발행 여건도 물꼬를 터놓은 상황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정부 신용도를 바탕으로 하는 공급망 기금 채권은 투자처로서 외평채와 비슷한 기능을 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한국 정부의 신용등급은 10개 투자등급 중 세 번째로 높은 'Aa2(무디스 기준)'다.
정부 입장에서도 공급망 기금 채권 발행은 달러 유동성 조달의 기능을 하게 된다. 트럼프발(發) 관세전쟁으로 한국 경제의 하방 압력이 커진 데다 주력 수출품목의 둔화 우려까지 겹치면서 첨단 산업 지원에 속도를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국의 대중 수출 의존도(19.5%·2024년 말 기준)가 20%에 달하면서 거미줄처럼 얽힌 한중 산업구조에서 관세 후폭풍이 어떤 파급 효과를 낼지 예측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2017년 이후 미·중 간 무역전쟁이 본격화하고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에 따른 중국발 공급망 교란을 겪으면서 한국은 글로벌 공급망이 끊기는 뼈아픈 경험을 했다. 국내 수출기업 한 관계자는 "트럼프 2기 신정부 출범으로 공급망 패권을 쥔 중국과 이 같은 중국의 독점 허물기에 속도를 낼 미국과의 패권 전쟁이 가속화하는 상황에서 수요국인 한국의 타격은 불가피한 상황"이라며 "(기금 채권 발행으로) 조달된 자금이 수출기업들의 공급망 다변화와 기술 개발 등에 마중물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세종=조유진 기자 tin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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