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 "맥캘란 12년 구형 27만(원). 수량 많이 있습니다. 박스 단위도 가능합니다."
한국의 '주세(酒稅) 폭탄'을 피해 해외에서 저렴하게 사들여온 주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불법 재판매되면서 국내 주류 시장 질서를 훼손하고 있다. 일본여행에서 주류를 쓸어온 이른바 '위스키 원정대' 등이 시세차익을 노리고 주류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중고거래에 나서면서 주류 애호가들의 정보 공유의 장이 국내 주류시장 제도의 빈틈을 학습하는 공간으로 변질되고 있는 것이다.
주류 재판매 채널로 가장 많이 이용되는 곳은 SNS다. 대표적인 곳이 '텔레그램'으로, 다양한 주류 중고거래 채널이 개설돼 재판매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일례로 가입자가 900명 이상인 한 채널에선 판매 제품의 목록과 사진 등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거래되는 제품의 종류와 가격 등을 한눈에 둘러볼 수 있다. 박스 단위로 거래가 이뤄질 만큼 수량이 충분히 확보됐다는 점을 보여주는 판매자 글부터 구매자들도 특정 제품과 가격 등 구매조건 등을 알려 거래를 제시하는 모습도 확인됐다.
또 다른 SNS 플랫폼인 '디스코드'에선 가입자 1000명이 넘는 채널도 버젓이 운영되며 재판매 거래가 성행하고 있었다. 이곳에선 위스키 외에도 마오타이·수정방 등 중국 유명 백주를 비롯해 국내시장에 정식으로 수입되지 않은 한정판 제품도 판매가 이뤄졌다. 해당 채널은 거래가 완료된 후에도 구매 방식과 후기 등을 게재하도록 유도해 지속적으로 거래가 활성화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해당 채널들은 주기적인 폐쇄와 플랫폼 갈아타기로 보안을 유지했고, 다양한 방식의 인증 절차를 통해 회원의 진위여부를 가렸다.
이 밖에 최근 몇 년 새 이용자가 크게 늘어난 주류 스마트오더 애플리케이션(앱)에서도 주류전문 소매점(리커숍) 운영자들이 단골고객 등에게 다이렉트메시지(DM)를 보내 싼 가격으로 거래를 유도하거나 시음권·바이알 등을 내세운 소량 판매도 이뤄지고 있다. 업체 측은 모니터링을 실시하고 있지만 적발이 쉽지는 않다는 입장이다. 오프라인 채널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해 서울 시내 편의점에서도 정식 수입되지 않은 위스키의 재판매가 적발돼 국세청이 조사에 나서기도 했다.
현재 해외 여행자는 총 2ℓ 이하, 400달러 미만에 한해 2병까지 주류를 면세로 들여올 수 있다. 이 기준을 초과할 경우 자진신고해야 한다. 면세 한도를 초과하는 주류의 경우 현지 구입 가격 기준으로 세금이 매겨지는데, 국가 간 주세 차이로 인해 저렴한 가격에 술을 산 뒤 축소 신고까지 가능하면서 시세차익을 노린 재판매에 활용되는 모습이다.
이는 주류 해외직구 통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주류 제품의 해외직구는 2019년 29억원에서 2022년 344억원으로 12배가량 증가했다. 특히 위스키의 경우 국내 수입금액 중 해외직구의 비중이 가장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품목으로 2022년 기준 7만4950건의 직구가 이뤄졌다. 전년 대비 7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2019년(786건)과 비교하면 95배 수준이다.
직구 금액은 2019년 1억2000만원에서 96억7000만원으로 증가했다. 규모 면에서는 와인이 가장 많았는데, 2019년 25억원 수준이던 직구액은 2022년 213억원으로 3년 새 9배 가까이 늘었다. 코로나19 대유행을 거치면서 '홈술' 문화가 확산된 영향인데, SNS를 통한 재판매가 활발하게 이뤄지면서 해외직구 수요가 급증했다는 분석이다. 주류 업계에선 현지에서 직접 구입해 들어오는 물량이 직구보다 많고, 매년 물량도 늘어나고 있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여행객과 직구를 통한 주류 수입이 전체 수입액의 15% 이상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주류 재판매는 관세법과 주류면허법을 비롯해 식품위생법, 수입식품특별법, 식품표시광고법 등 관련 법률을 위반하는 위법 행위다. 우리나라에서 주류는 국세청에서 발급하는 판매 면허를 받아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허가 없이 판매가 이뤄지면 모두 불법이다. 주류 면세 한도에 맞춰 구입한 제품이나 면세 한도를 넘어 세금을 내고 들여온 제품도 예외가 아니다. '자가 소비'라는 면세 목적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주류 재판매를 실정법상 위법으로 규정하고 엄격하게 막고 있는 것은 재판매가 국내 주류시장의 투명성과 안전성을 훼손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국내로 정식 수입되는 주류 제품에는 RFID(Radio Frequency IDentification·무선주파수인식기술) 태그가 부착돼 있다. RFID 태그는 불법 주류의 유통을 막고 정확한 세금 징수를 위해 제조부터 판매까지 주류의 유통 전 과정을 실시간으로 국세청이 추적할 수 있도록 만든 태그다. 이는 제품의 품질을 보증하고, 정식 유통경로에 있는 수입·도매·소매 업체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반면 짝퉁 주류의 경우 단순히 가짜 술 구매로 인한 개인의 금전적 손해와 정부의 조세 손실을 넘어 소비자 건강에도 큰 위협으로 작용할 수 있다. 정확한 식품 검사 여부 등이 확인되지 않아 출처가 불분명한 주류는 유해 성분으로 인해 실명이나 사망 등 소비자 건강에 치명적인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이 같은 제품은 하자로 인해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제대로 된 피해 구제를 받기도 쉽지 않다.
해외여행이나 직구를 통한 주류 구매는 내수 경기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해외에서 구매하는 주류 제품 대부분이 국내에서도 충분히 구매할 수 있지만 가격 차이로 인해 해외로 소비가 이전되면서 국내 가정·유흥용 주류시장의 소비 감소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농림축산식품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외식산업경기동향지수는 71.52로 직전 분기 대비 4.52포인트 하락했는데, 특히 주점업은 65.40으로 업종별 가장 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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