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의 평균 관세가 미국의 4배에 달한다며 상호주의를 내세워 압박에 나섰다. 이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대부분의 대미 관세가 이미 철폐된 현실을 무시하고 실제 한미 교역에 적용되지 않는 수치를 언급한 것이다. 반도체 보조금 철폐와 방위비 재협상을 노린 '트럼프식 압박'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6일 외교가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외교·통상 측면에서 상대국에 대한 우위를 점하기 위한 '과장 화법'을 즐겨 사용해왔다. 전날 미 의회 상·하원 합동 연설에서 나온 발언이 전형적인 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의 평균 관세율은 (미국보다) 4배 더 높다"며 "그런데도 우리는 한국에 군사적으로나 여러 방식으로 많은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관세가 미국의 4배라는 구체적인 근거는 제시하지 못했다. 그가 언급한 '평균'이라는 표현에서 맹점이 드러난다. 한국과 미국은 2012년 FTA 체결로 대부분의 교역 품목에 '상호 무관세'가 적용된다. 2022년 3월 발표된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자료에 따르면 당시 수출입 품목을 기준으로 한미 양국 모두 98% 이상 관세 철폐를 완료했다.
업계와 학계에선 '평균 4배'라는 억지가 세계무역기구(WTO) 양허세율(Final bound)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양허세율은 법적으로 지켜야 하는 세율의 상한선을 뜻하고, 최혜국 대우 실행세율(MFN applied)은 WTO 회원국을 대상으로 적용되는 세율을 의미한다.
즉 양허세율 범주 내에서 최혜국 대우 실행세율에 맞는 관세가 교역국에 부과되는 것인데, 이 기준에 따라 전체 수출입 품목을 '단순 평균'으로 내면 2023년 기준 한국의 관세율은 13.4%, 미국의 관세율은 3.3%로 정확히 '평균 4배'에 수렴한다.
한국의 관세율이 상대적으로 높게 책정된 건 농산물 수입에 대한 방어적 관세가 반영된 영향이다. 그러나 FTA가 체결된 한국과 미국은 서로 0%에 가까운 세율이 부과되고 있어 이런 수치가 아예 적용되지 않는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간 경제 문제에 있어서는 때때로 '동맹이 적국보다 미국에 더 해롭다'는 식의 주장을 펼쳤다. '관세 4배' 주장이 향후 반도체지원법(CSA) 폐지나 방위비 재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포석이란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무엇보다 다음 달 2일 예고된 '상호관세 발효'에서 한국이 고율 관세 부과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된다.
개별 기업 차원에서 미 행정부의 방침에 제동을 걸기 어려운 만큼 정부의 대처가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출 기업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다각도로 소통에 나서야 할 필요가 있다. 한아름 한국무역협회 수석연구원은 "한국은 FTA를 통해 미국에 대한 관세 장벽을 낮춰왔고, 서비스 및 규제 완화 측면에서도 미국의 요구에 따라 비관세 장벽을 상당히 많이 낮췄다"며 "우리나라의 대미 수출이 수치상 높게 잡히는 것 역시 한국 기업들이 그만큼 미국에 투자를 많이 했고 중간재 등이 반영된 수치라는 점을 효율적으로 어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산업통상자원부 당국자는 "최혜국 대우 실행세율은 양자 협정이 없는 WTO 회원국에 적용되는 것으로, FTA 협정세율이 적용되는 한국과 미국에는 무관한 개념"이라며 "정부는 향후 미국과의 다양한 협의 채널을 통해 이런 내용을 적극적으로 설명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장희준 기자 jun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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