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 홈플러스가 유동성 위기로 기습적인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하면서 이에 따른 후폭풍이 거세게 일고 있다. 올해 1,2월 판매대금 정산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협력사들이 줄줄이 납품을 중단하고 나섰고, 제휴처 상품권 사용을 막으면서 정상적인 영업이 어려워질 조짐이다. 유통업계에서는 대규모 셀러(판매자) 이탈을 불러온 티몬·위메프(티메프) 사태에 빗대 오프라인발(發) 제2의 티메프 상황을 점치고 있다.
홈플러스 노동조합 측은 이번 사태가 소유주인 사모펀드(PEF) MBK파트너스의 무리한 차입 경영으로 불거진 문제라며 김병주 MBK 회장을 비롯한 대주주의 책임을 촉구했다. 노동자의 임금과 고용 보호를 위한 정치권의 관심도 호소했다.
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LG전자는 이날 홈플러스에 납품하는 제품의 출하를 일시 정지한 상태다. LG전자 관계자는 "리스크 대응 차원에서 출하를 일시 정지했다"며 "다만 고객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판매) 정상화 방안 등을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홈플러스에 가전과 휴대폰 등을 납품해온 삼성전자도 지난 4일 회생절차 개시 이후 홈플러스 매장에 제품 공급을 지속할지 내부 검토 중이다. 이미 홈플러스 구성원들 사이에서는 삼성과 LG가 매장에서 제품을 철수한다는 소문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식품업계도 홈플러스와의 거래를 중단하고 있다. 롯데칠성음료와 롯데웰푸드, 동서식품, 삼양식품 등이 이 같은 결정을 내렸고, CJ제일제당과 농심, 대상, 오뚜기 등은 아직 납품을 중단하지 않았지만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홈플러스 측은 "법원이 회생절차 개시를 결정하면서 ‘협력업체와의 일반 상거래 채권은 100% 변제된다’고 명시했으나 불확실한 상황에 대한 우려로 (일부 협력업체가) 다소 민감하게 반응한 것으로 보인다"며 "해당 협력사들과 충분한 소통을 통해 해결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진화에 나섰다.
당장 이날부터 일반 상거래 채권에 대한 지급을 재개했다. 앞서 서울회생법원이 홈플러스에 대한 회생절차 개시를 결정하면서 모든 채권에 대한 지급이 일시 중지된 바 있다. 홈플러스 측은 "현재기준 가용 현금 잔고가 3090억원이고, 3월 영업활동을 통한 순현금 유입액은 3000억원 수준으로 예상돼 총 가용자금은 6000억원을 상회한다"며 "이날부터 일반 상거래 채권에 대한 지급을 재개해 순차적으로 전액 변제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홈플러스는 회생철자 신청 직전 기업어음(CP)과 전자단기사채를 발행해 투자자들에게 손실을 입혔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CP는 운영자금 확보를 위해 평소 매달 25일을 포함해 정기적으로 발행해왔던 것"이라며 "회생절차는 신용등급 하락으로 긴급하게 신청된 건으로 이를 염두에 두고 발행에 나선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앞서 홈플러스는 지난달 21일 CP 50억원과 전자단기사채 20억원을 발행한 사실이 드러나 비판이 일었다. 한국예탁결제원 증권정보포털에 따르면 홈플러스의 CP와 전자단기사채 발행 잔액은 지난 4일 기준 1880억원 규모로 파악됐다. 기존 발행된 CP와 전단채는 증권사를 통해 리테일 투자자들에게 판매된 것으로 보인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CP와 전단채를 매수한 투자자가 손실을 볼 가능성을 제기했다.
현장 혼란이 가중되는 가운데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마트산업노동조합(마트노조)과 홈플러스지부 조합원으로 구성된 20여명은 이날 MBK 사무실이 있는 서울 광화문 D타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홈플러스 회생은 MBK가 책임져라’ ‘홈플러스 거덜낸 악질 투자기본 MBK 규탄한다’는 내용의 피켓을 들고 대주주의 책임을 촉구했다.
홈플러스 노동자들은 회생절차 개시 이후 구조조정 우려로 인해 불안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미 홈플러스 상품권 제휴업체가 사용 중단을 결정해 휴지조각이 되고, LG전자와 식품업계 등 홈플러스로 납품하던 일부 업체가 상품 공급을 중단하기로 한 상황에서 법인카드 사용도 막혔다는 소식이 들려 직원들은 일자리뿐만 아니라 퇴직금까지 걱정하는 상황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마트노조는 홈플러스의 대주주인 MBK파트너스가 매각차익을 키우기 위해 기습 기업회생 절차에 들어갔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강우철 마트노조 위원장은 "MBK는 홈플러스 인수 후 지난 10년 간 기업 경쟁력보다 자본회수에 혈안이었다"며 "자본회수를 위해 자산을 매각 처분함으로써 홈플러스의 경쟁력을 떨어뜨렸고, 매출 최상위권 매장마저 부동산 가치가 높다는 이유로 팔아치웠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발생할 수 있는 잠재적 금융이슈에 대한 선제적 조치라는 이유로 기업회생을 신청한 것부터가 정상적이지 않다"며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통해 홈플러스를 폐기처분하려 한다면 엄청난 파국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 위원장은 "한국 최고의 부자, 14조원의 재산을 가졌다는 김병주 MBK 회장은 양심이 있다면 자산을 출원해서라도 책임을 다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광창 서비스연맹 위원장도 "이번 회생절차 신청이 홈플러스를 살리고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불가피한 결정이었다는 MBK의 입장을 전혀 신뢰하지 않는다"며 "일반적으로 회생을 신청한 기업들은 오너가 사재를 털어넣어서라도 소생시키려 하는데, MBK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고 비판했다.
노조원들은 과거 대우조선해양과 쌍용자동차 사례를 언급하며 회생절차가 시작되면 고정비용 절감을 명분으로 심각한 구조조정이 동반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회생 과정에서 매장 폐점, 자산 매각, 대량 해고 등이 현실화될 경우 수만명의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
강 위원장은 "홈플러스는 임직원만 2만명"이라며 "협력업체와 입점업체까지 10만명에 이르는 노동자의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MBK가 결국 대대적인 구조조정의 칼을 들이밀 것으로 보고 있는데, 이는 엄청난 파국으로 치닫게 될 것"이라며 "MBK는 홈플러스를 죽이는 그 어떤 구조조정의 시도도 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들은 기자회견 이후 MBK에 대한 항의방문을 진행하고, 향후 사태 해결을 위한 투쟁도 계속한다는 방침이다. 노동자의 고용안정을 위한 정치권의 관심도 촉구했다. 김 위원장은 "정치가 나서서 피해자가 더 늘어나는 것을 막아야 우리의 공동체를 건강하게 지킬 수 있다"며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와 극심한 노동강도에 시달리며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임금과 고용은 철저히 지켜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홈플러스 노조는 오는 18일 각 점포 대의원을 대상으로 한 대의원 대회를 개최한다.
김흥순 기자 sport@asiae.co.kr이민지 기자 ming@asiae.co.kr한예주 기자 dpwngk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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