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0
5
0
IT
[아경와인셀라]빗물이 빚어낸 최고의 선물…소노마의 피노누아
    입력 2025.03.07 07:10
    0

[ 아시아경제 ]

편집자주하늘 아래 같은 와인은 없습니다. 매년 같은 땅에서 자란 포도를 이용해 같은 방식으로 양조하고 숙성하더라도 매번 다른 결과물과 마주하게 됩니다. 와인은 인간과 자연이 어우러져 만들어지는 '우연의 술'입니다. 단 한 번의 강렬한 기억만 남긴 채 말없이 사라지는 와인은 하나같이 흥미로운 사연을 품고 있습니다. '아경와인셀라'는 저마다 다른 사정에 따라 빚어지고 익어가는 와인 이야기를 하나하나 꺼내 들려 드립니다.
레인의 설립자 단테와 카를로 몬다비(Dante & Carlo Mondavi) 형제가 소노마 코스트에서 태평양을 바라보고 있다.

"와인은 태초에 비에서 비롯되었습니다.(Wine was rain first.)"

하늘에서 땅으로 빗방울이 낙하한다. 빗방울은 포도밭에 축축이 젖어 들고, 포도나무는 땅속으로 스며든 빗방울을 찬찬히 끌어안아 온몸으로 밀어 올린다. 그렇게 빗방울은 열매로 종국에는 와인으로 거듭난다.

'레인(RAEN)'은 우리가 먹고 마시는 모든 것의 기원이 자연에 있다는 당연한 진리를 주지하기 위해 '비(rain)'에서 착안해 지은 이름이다. 레인은 'Research in Agriculture and Enology Naturally'의 줄임말로 '자연 그대로의 농법과 와인 양조학의 연구'라는 뜻을 담았다. 여기에는 '좋은 와인은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길러내는 것'이라는 이들의 자연주의적 철학이 담겨 있다. 실제로 레인은 자신들을 와인메이커가 아닌 '와인그로워(Winegrowers)'라고 칭하며 유기농법과 생물역학농법, 재생농법 등으로 포도밭을 경작하고 운영한다.

레인은 2013년 단테와 카를로 몬다비(Dante & Carlo Mondavi) 형제가 미국 캘리포니아 소노마 코스트(Sonoma Coast)에 문을 연 비교적 신생 와이너리다. 이름에서 드러난듯 형제는 미국 와인업계에서 가장 유명한 몬다비 가문의 사람들이다. 이들의 할아버지가 나파 밸리(Napa Valley)를 개척한 미국 와인의 전설 로버트 몬다비(Robert Mondavi)이고, 그의 아들이자 '컨티뉴엄 에스테이트(Continuum Estate)'를 설립한 팀 몬다비(Tim Mondavi)가 이들의 아버지다. 형제는 1996년부터 로버트 몬다비, 오퍼스 원(Opus One) 와이너리 등에서 포도 재배와 와인 양조를 배우며 와인 전문가로 성장했다.

(왼쪽부터)설립자 단테 몬다비(Dante Mondavi) 와인메이커 멜라니 매킨타이어(Melanie McIntyre), 카를로 몬다비(Carlo Mondavi).
4세대 몬다비 패밀리의 자연주의 와이너리

형제에게 가장 큰 영감을 준 인물도 역시 할아버지와 아버지다. 특히 아버지인 팀 몬다비는 캘리포니아에서 피노누아(Pinot Noir) 품종을 발전시킨 선구자 중 한 명으로, 프랑스 부르고뉴 와인에 대한 존경심을 토대로 이를 넘어서는 미국 피노누아 와인 생산에 평생 힘을 쏟은 인물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유기농 농업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철학적 멘토다.

선대의 자연주의 철학을 계승한 레인의 대표적인 농법이 영속농업(Permaculture)이다. 영속농업은 현세대를 넘어 다음 세대까지 고려한 일종의 지속가능한 농업으로 자연의 순환 시스템을 모방해 스스로 유지되는 생태계를 조성하는 방식이다. 최소한의 자원으로 최대의 생산성을 실현하며, 환경 보호까지 달성할 수 있어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미래 농업 대책으로 주목받고 있다. 화학비료나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자연적으로 토양의 건강을 유지하는 무화학 처리 원칙 등이 대표적인 실천 방식이다. 작물에 질병이 발생하더라도 농약 등 적극적인 조치를 통해 해법을 찾기보다는 작물이 스트레스를 겪으며 자연 안에서 스스로가 방법을 찾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다.

피복작물(Cover Crop)이 함께 공존하는 레인의 포도밭 전경.

영속농업을 비롯해 유기농법, 생물역학농법, 재생농법 등 레인이 추구하는 친환경 농법을 구체화한 활동이 2016년 시작한 '모나크 챌린지(The Monarch Challenge)'다. 형제가 어린 시절만 해도 캘리포니아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었지만 이제는 멸종위기종이 된 제왕나비(Monarch Butterfly)에서 이름을 따온 모나크 챌린지는 포도 재배에 있어 화학 비료와 유기 합성 농약을 사용해 작물을 재배하는 관행농업을 배척하는 일종의 자연주의 운동이다.

카를로 몬다비는 "관행농업의 영향은 제왕나비를 넘어 인간의 건강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대표적으로 제초제는 농업에 있어 매우 중요한 토양구조를 파괴하고, 결국엔 우리의 제품과 뒷마당까지 침해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제초제 사용을 중단하는 건 토양과 인간의 건강을 증진하고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라며 "레인은 더 높은 환경 기준으로 와이너리를 운영해 생물다양성을 보호하고, 농업의 미래를 이끈다는 비전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한다.

레인의 포도밭 전경.
서늘한 소노마 코스트…섬세하고 우아한 피노누아로

소노마 카운티(Sonoma County)는 샌프란시스코 바로 북쪽에 태평양을 접하고 있는 지역이다. 캘리포니아 최대 와인 산지 중 하나로 동쪽에 마주한 나파 밸리보다 훨씬 넓은 재배 면적을 보유하고 있다. 면적이 크다는 것은 산과 강, 평원과 계곡 등 다양한 지형을 토대로 각기 다른 기후와 토양을 갖고 있다는 의미로 재배 환경 역시 나파 밸리보다 다양하다.

레인은 소노마 카운티의 19개 AVA(American Viticultural Area·미국 포도재배지역) 가운데 소노마 코스트 지역에서 포도밭을 운영하고 있다. 소노마 코스트는 소노마 카운티 내 최대 AVA로 면적이 총 20만헥타르(ha)에 달한다. 1987년 소노마 코스트가 처음 AVA로 지정될 당시만 하더라도 업계에선 반대의 목소리가 컸다. 해당 지역의 토지가 너무 광활하고 이질적이어서 떼루아에 공통점이 없다는 이유였다. 무엇보다 소노마 코스트는 서부 해안지대에 위치한 만큼 포도를 재배하기에 너무 추울 뿐 아니라 안개가 많이 끼고 바람이 심하다는 인식이 강했다.

캘리포니아 소노마 코스트의 레인 포도밭 지도.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일부 와이너리가 서늘한 기후에 적합한 피노누아와 샤르도네(Chardonnay)를 성공적으로 길러내며 양질의 와인을 선보이기 시작했고, 지금은 두 품종을 중심으로 부르고뉴에 필적하는 섬세하고 우아한 캐릭터의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소노마 코스트가 이런 명성을 쌓는 데 레인도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레인은 현재 약 25에이커(약 3만600평)의 밭에서 포도를 경작하고 있다. 형제는 이 소규모 최상급 부지를 찾기 위해 무려 10년을 돌아다녔다. 10년을 헤맨 끝에 선택한 레인의 밭은 소노마 코스트 서쪽에 북에서 남으로 세 곳에 나뉘어 분포한다.

가장 북쪽의 '포트 로스 씨뷰(Fort Ross-Seaview)' 포도밭은 4.8에이커 규모로 태평양에서 3km 떨어진 해발고도 300m 인근에 펼쳐져 있다. 포트 로스 씨뷰는 고도가 높고 바다와 가까워 낮 기온의 편차가 매우 크다. 38도(℃)까지 올라가는 곳이 있는 반면 해안의 안개가 낀 곳은 한기가 느껴질 정도로 춥다. 시원한 해안과 가까워서 포도가 성장기 동안 성숙하기 어려운 환경이 조성되지만 포도나무가 안개선 바로 위에 절묘하게 자리 잡아 늦여름 태양의 따뜻함이 열매가 천천히 익도록 도와준다.

레인의 '프리스톤 옥시덴탈(Freestone Occidental)' 포도밭 전경.

중간 지점인 '프리스톤 옥시덴탈(Freestone Occidental)' 포도밭은 레인의 본거지로 여겨지는 땅이다. 프리스톤과 옥시덴탈 마을 사이에 있는 보데가 만(Bodega Bay) 바로 동쪽에 자리한 이 부지는 1.8에이커 규모의 작은 땅으로 서향으로 배치돼 레인의 포도밭 중 낮 기온이 가장 낮다. 삼나무와 잡초로 둘러싸여 있으며, 여름에는 이른 아침에 포도원을 삼키는 태평양 안개가 찾아와 과일을 시원한 바다 안개로 덮는다. 안개는 늦은 아침에 물러나 포도 열매를 오후 햇볕과 따뜻함으로 적셔 놀라운 균형과 깊이의 와인을 만들어내는 데 일조한다.

이곳에서 자란 포도로 만든 와인이 바로 레인의 플래그십 와인 '레인 프리스톤 옥시덴탈 피노 누아 보데가 빈야드(RAEN Freestone Occidental Pinot Noir Bodega Vineyard)'다. 블랙 체리와 야생 딸기, 장미 꽃잎, 홍차, 젖은 돌과 흙, 이국적 스파이스 등이 잔을 채우고 입 안에선 좋은 구조감을 주는 산도에 매끈한 타닌, 검고 붉은 야생 베리, 미네랄 등이 조화를 이루며 여운을 남기는 와인이다. 보데가 빈야드는 레인의 포도밭 중 가장 서늘한 곳에서 재배한 포도로 만들어진다. 높은 고도에 해안가 영향을 받아 완숙에 시간이 걸리지만 그만큼 집중력이 있는 와인이 된다.

가장 남쪽에 있는 '소노마 코스트 로열 세인트 로버트(Sonoma Coast Royal St. Robert)' 포도밭은 15에이커 규모로 해발고도 200m에 있다. 이곳에서 자란 포도는 시원한 태평양과 해안 바람을 맞아 와인에 풍부한 미네랄 캐릭터를 부여하는 것이 특징이다.

레인의 플래그십 와인 '레인 프리스톤 옥시덴탈 피노 누아 보데가 빈야드(RAEN Freestone Occidental Pinot Noir Bodega Vineyard)'.
양조 개입 최소화…야생효모로 발효

레인은 캘리포니아 컬트 와인답게 소규모 포도밭에서 한정된 양만 생산한다. 피노 누아 3종과 샤르도네 2종까지 총 다섯 가지의 와인을 생산하고 있는데, 최고급 포도밭에서 엄선한 품종과 클론으로 해당 떼루아에서 선보일 수 있는 최적의 품질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레인은 자연주의를 전면에 내세운 와이너리답게 와인 양조에서도 사람의 개입을 최소화한다. 포도는 전부 손으로 수확하는데, 포도밭에서 1차, 양조장에서 2차 선별작업을 거친 뒤 야생 효모를 사용해 발효를 진행한다.

피노 누아는 포도 열매와 줄기를 함께 사용하는 전송이 발효(Whole Bunch Fermentation) 방식을 이용한다. 포도송이채 넣고 발효를 하면 으깨지지 않은 열매 안의 효소 발효가 진행돼 와인에 개성 있는 아로마를 부여할 수 있다. 여기에 줄기의 페놀 화합물은 와인의 타닌 구조감에 영향을 미치는데, 오크통 숙성에서 얻을 수 있는 타닌보다 섬세하고 은은한 타닌 구조감을 얻을 수 있다. 아울러 발효가 진행되는 줄기는 포도즙의 색을 흡수해 더 맑고 투명한 색감을 갖게 된다. 발효 후에는 4년 건조한 프랑스산 오크통(새 오크통 비율은 10%)에서 12~15개월간 숙성해 마무리한다.

'레인 소노마 코스트 로열 세인트 로버트 뀌베(RAEN Sonoma Coast Royal St. Robert Cuvee)'은 할아버지인 로버트 몬다비에게 헌정하는 와인이다. 레인 설립 10주년을 맞은 2023년에는 와인 스펙테이터(Wine Spectator) 톱100 가운데 4위에 오르기도 했다. 으깬 야생 열매와 검은 체리, 장미 꽃잎, 해안 이끼의 매혹적인 향으로 시작해 홍차, 베르가못, 숲 바닥 향으로 이어진다. 강렬한 붉은색과 검은색 과일 핵심은 꽃과 차의 향과 섬세하게 얽히고 이국적인 향신료와 결합돼 긴 여운과 함께 마무리된다.

레인의 주품종 피노 누아(Pinot Noir)
레인은 포도 열매와 줄기를 함께 사용하는 전송이 발효(Whole Bunch Fermentation) 방식을 이용한다.

레인에서 샤르도네의 비중은 10% 안팎으로 상대적으로 적다. 샤르도네는 알코올 발효 이후 전부 젖산 발효(Malolactic Fermentation)를 진행한다. 젖산 발효는 시큼한 사과산(Malic Acid)을 부드러운 젖산(Lactic Acid)으로 바꾸는 과정으로, 이를 통해 와인에 있는 날카로운 산도를 부드럽게 다듬는 역할을 해 더욱 부드럽고 풍성한 미감을 선사하게 한다. 젖산 발효를 거친 와인은 오크 영향이 많이 희석된 중고 오크통에 10개월간 숙성해 완성한다.

샤르도네 대표 제품인 '레인 포트 로스 씨뷰 샤르도네(RAEN Fort Ross-Seaview Charles Ranch Vineyard Chardonnay)'는 험준한 포트 로스 씨뷰의 언덕 부지에서 자란 포도를 사용한다. 배수가 잘되고 바위가 많은 토양 위에 자리 잡고 있다 보니 수확량이 자연스럽게 낮아져 포도알마다 놀라운 깊이와 농축도, 미네랄을 품게 된다. 와인은 젖은 바위와 카모마일, 살구 향으로 시작해 백도와 레몬, 으깬 조개, 약간의 바닷소금과 함께 미네랄리티가 지속된다. 다양한 향은 깊은 풍미와 어우러지며 경쾌하지만 우아하게 마무리된다.

레인(RAEN)의 와인 전 라인업.
구은모 기자 gooeunmo@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와인
    #피노누아
    #노마
    #레인
    #포도밭
    #코스트
    #발효
    #net
    #와이
    #농업
포인트 뉴스 모아보기
트렌드 뉴스 모아보기
이 기사, 어떠셨나요?
  • 기뻐요
  • 기뻐요
  • 0
  • 응원해요
  • 응원해요
  • 0
  • 실망이에요
  • 실망이에요
  • 0
  • 슬퍼요
  • 슬퍼요
  • 0
댓글
정보작성하신 댓글이 타인의 명예훼손, 모욕, 성희롱, 허위사실 유포 등에 해당할 경우 법적 책임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최신순
    추천순
    답글순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IT 주요뉴스
  • 1
  • '샤오미 15 울트라·샤오미 패드 7' 국내 출시
    EBN뉴스센터
    0
  • '샤오미 15 울트라·샤오미 패드 7' 국내 출시
  • 2
  • 글로벌 팬덤 솔루션 '비스테이지'…가수 권진아 멤버십 모집
    아시아경제
    0
  • 글로벌 팬덤 솔루션 '비스테이지'…가수 권진아 멤버십 모집
  • 3
  • "화재대피용 생명구조마스크 롯데마트서 판매 개시"
    아시아경제
    0
  • "화재대피용 생명구조마스크 롯데마트서 판매 개시"
  • 4
  • LG전자, 6G 기술 리더십 입증…‘3GPP’ 의장단 배출
    EBN뉴스센터
    0
  • LG전자, 6G 기술 리더십 입증…‘3GPP’ 의장단 배출
  • 5
  • 삼성전자 "수율 확보 총력전"…TSMC 질주 속 파운드리 시험대
    EBN뉴스센터
    0
  • 삼성전자 "수율 확보 총력전"…TSMC 질주 속 파운드리 시험대
  • 6
  • "먹는 대로 변하는 춘식이"…카카오프렌즈, 신상 테마 '맛삼춘' 굿즈 
    EBN뉴스센터
    0
  • "먹는 대로 변하는 춘식이"…카카오프렌즈, 신상 테마 '맛삼춘' 굿즈 
  • 7
  • "마지막 출근…넌 해고야" 머스크와 설전 벌인 美 상원의원 테슬라 처분
    아시아경제
    0
  • "마지막 출근…넌 해고야" 머스크와 설전 벌인 美 상원의원 테슬라 처분
  • 8
  • NHN, ‘다키스트 데이즈’ 글로벌 테스트 107개 국가와 함께 성료…OBT 4월 말 확정
    중앙이코노미뉴스
    0
  • NHN, ‘다키스트 데이즈’ 글로벌 테스트 107개 국가와 함께 성료…OBT 4월 말 확정
  • 9
  • 엔비디아, 오픈AI까지 총출동…韓 'AI 글로벌 컨퍼런스' 열린다
    아시아경제
    0
  • 엔비디아, 오픈AI까지 총출동…韓 'AI 글로벌 컨퍼런스' 열린다
  • 10
  • 대한전선, '40조 규모' 英 HVDC 프레임워크 계약 체결
    아시아경제
    0
  • 대한전선, '40조 규모' 英 HVDC 프레임워크 계약 체결
트렌드 뉴스
    최신뉴스
    인기뉴스
닫기
  • 뉴스
  • 투표
  • 게임
  • 이벤트